원작 출처 : 김왕석의 [사냥꾼이야기]
[풍산개와 불곰]
나라를 일본놈들에게 빼앗겼다는 말들이 퍼져 있었으니
아마도 1904년쯤 되던 해였다.
함경도 [무산] 첩첩산중에 있는 주막에 늙은 사냥꾼이 한사람 머물고 있었다. 무산의 윤원술 포수와 함께 사냥을 했던 송봉수라는 영감이었다. 무산의 윤포수는 그 주막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포수였는데 송영감은 그의 몰이꾼이었다.
윤포수가 젊은 몰이꾼들과는 달리 대접을 해주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는 예사 몰이꾼이 아닌 것 같았다. 윤포수 일행은 그 산막에 머물면서 큰 불곰 한 마리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이틀 전에 돌아갔다.
그런데 송영감은 계속 혼자 주막에 머물고 있었다. 주막에는 다른 손들이 없었으니 송영감은 큰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막집 주인 함흥댁은 좀 귀찮아진 것 같았다. 함흥댁은 귀양살이를 하던 어느 양반의 측실이었다는데 그런 산중에서 살고 있는데도 언제나 머리가 반들거리고 옷맵시가 단정한 여인이었다. 함흥댁은 노파 한사람을 데리고 그곳에서 사냥꾼들에게 방을 빌려주고 밥도 해주면서 살고 있었는데 혼자 남아있는 영감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손님은 손님이니 쫓아낼 수는 없었다. 별 볼일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남아 있을까.
송영감은 밥만 먹으면 명태대가리나 고기를 갖고 뒷마당으로 갔다. 뒷마당에는 뒷다리 하나가 잘린 병신 개가 있었다. 그 개는 뒷다리의 무릎 밑부터 잘려 나무막대를 대고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송영감은 그 개와 놀고 있었다. 어떻게 구슬려 놓았던지 그 사나운 개가 영감의 손을 핥아주고 있었다. 이상한 영감이었다. 함흥댁은 그날 아침 밥상을 갖다 주면서 슬그머니 말을 끄집어냈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만날 약속이라도 하셨수?"
그러나 약속이 없으면 나가라고 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송영감은 엉뚱한 말을 했다.
"저 개는 왜 병신이 되었소?"
"몇 년 전에 범에게 물렸지요. [풍산]에서 왔다는 포수양반들이 저런 개 서너 마리를 데리고 곰 사냥을 하다가 범과 부딪쳤는데 그때 개들이 범에게 덤벼들다가 저 꼴이 되었지요."
그때 그 개는 다리가 잘렸을 뿐만 아니라 등껍질이 보자기만큼이나 벗겨져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한다. 포수들은 그 개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는데 함흥댁이 말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내가 저 개를 기르고 있지요. 병신인데도 사납지요. 음식을 훔쳐 먹으려는 삵이나 족제비 따위는 얼씬도 못해요."
"저 개를 나에게 팔 수 없겠소. 섭섭지 않게 돈을 드릴테니...."
"안돼요."
"황소 한 마리 값을 드리겠소."
이 영감, 개에 미친 사람이구만.... 함흥댁은 반색을 내지 않으려고 짐짓 쌀쌀한 얼굴을 만들었다. 마침 주막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함흥댁은 다음날 아침 송영감이 데리고 온 개를 보고 놀랐다. 엄청나게 큰 개였고 바위와 똑같이 생긴 개였다. 그러나 늙은 개였다. 열 살이 넘은 늙은 암캐였으며 수컷을 받을 것 같지 않았다.
"개가 너무 늙은 것 같은데요."
"그렇게 늙지 않았소. 사람으로 치면 쉰 살 쯤 되었는데 아직 수컷을 마다 하지 않소. 새끼도 낳을 수 있고...."
이런 망칙한 영감 봤나.... 꼭 쉰이 된 함흥댁이 낯을 붉혔다. 그러나 듣기 싫지 않았다. 그렇고 말고 아직 쉰인데.... 송영감은 뒷마당에 말뚝을 하나 더 박아놓고 거기에 자기가 데리고 온 암캐 요녀의 목줄을 묶어 놓았다. 암수캐는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바위의 눈빛이 달라졌다. 갑자기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늙은 암캐 요녀도 그랬고....
"아니 왜 저렇게 묶어놓기만 하고 접을 붙이지 않아요?"
그날 밤 함흥댁이 물어봤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만나자마자 금방 접을 붙겠소."
함흥댁은 자기의 성급함이 부끄러워졌다. 송영감은 다음날도 접을 붙이지 않았다. 그는 요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요녀는 발정을 하고 있었다. 음부가 부풀어오르고 분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머나 저 암캐는 아직도 그게 나오는구만."
함흥댁은 감탄했다. 종이로 닦으니까 피가 묻어나 왔다. 그러나 하루쯤 더 기다려야만 했다. 암컷의 몸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바위란 놈이 날뛰고 있었다. 사타구니에는 붉은 막대기가 뻣뻣했다. 그놈은 욕정을 참지 못해 비통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강력한 암내가 그놈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날밤 바위가 끙끙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 함흥댁은 화가 났다. 왜 저 영감은 접을 붙이지 않고 있지. 암캐도 저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송영감은 서둘지 않았다. 그는 새벽에 냇가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있었다.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얼음을 깬 물로 목덜미까지 씻고 있었다. 환갑이 다 됐다는데 젊은이처럼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함흥댁은 못 볼 것을 본 듯 얼른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함흥댁은 명태국에 방금 닭장에서 꺼내 온 달걀을 깨 넣고 밥상을 들고 들어갔다.
"영감님 어디서 살고 있지요."
"여기보다 더 깊은 산중에서 저 개와 함께 사냥을 하면서 살고 있지요."
송영감은 외롭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병신개는 겨우 일어나 암캐에게 걸어갔다. 그놈의 사타구니에는 뻣뻣한 것이 서 있었다. 병신개는 개들의 예의에 따라 암캐 주위를 몇 바퀴 돌아가 혀로 암캐의 몸을 핥아주었다. 암캐도 분명히 그 사랑의 호소를 받아들여 눈을 스르르 감고 뒷다리를 벌리고 꼬리를 옆으로 치웠다. 늙은 암캐 요녀는 아직도 수컷을 받아들일 욕정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병신 수캐가 문제였다. 수캐는 암캐의 뒤로 돌아가 앞발을 암캐의 어깨에 걸치려고 했으나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나무막대기 뒷발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일어나, 일어나서 다시 해봐."
함흥댁이 악을 쓰고 있었고 수캐는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암캐는 끈기 있게 기다려주고 있었으나 수캐는 자꾸만 쓰러졌다. 송영감은 개들을 떼어놓았다. 병신개는 눈에 불을 켜고 송영감에게 덤벼들었다. 송영감은 병신개를 묶었다. 송영감은 굵은 통나무를 잘라 받침대를 만들었다. 짝짓기를 하는 동안 수캐의 뒷다리를 받쳐줄 도구였다.
"자 그렇게 구경만 하지 말고 날 도와주시오."
함흥댁은 어쩌다가 외간남자와 함께 그런 망칙스러운 일을 하게 됐는지를 한탄했으나 그래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함흥댁은 송영감이 시키는 대로 수캐의 앞다리들을 잡아 암캐의 등위에 걸쳐 주었다. 송영감은 통나무 받침대에 손바닥을 얹어 수캐의 잘린 뒷발을 받쳐주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암캐의 뒷다리를 잡아주고 있었다. 수캐는 성급하게 설치고 있었다. 몸의 중심이 잡히자 그놈은 덮어놓고 허리운동을 했다. 수캐가 그렇게 설치는 바람에 그놈의 뒷다리를 받쳐주고 있던 송영감의 손이 흔들려 통나무받침대가 쓰러졌다. 그러나 송영감은 단념하지 않았다. 함흥댁도 역시 그랬고.... 그들은 다시 수캐의 상반신을 암캐 등에 올려놓았다. 수캐는 또 허리 운동을 했으나 엉뚱한 곳을 찌르고 있었다.
"이 바보야. 거기가 아니야. 그 밑이야 밑."
함흥댁이 소리를 지르다가 그만 지쳤다.
"안돼. 안돼 이 병신개는 못해."
"그렇지 않아. 할 수 있어."
송영감은 이번엔 수캐의 뿌리를 쥐고 목표물을 찾아주었다. 개의 뿌리는 서너 시간 동안이나 팽창되어 있었는데도 여전히 뻣뻣했다. 개의 성기에는 뼈로 된 심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암캐가 낑하고 비명을 질렀다. 몸이 뚫린 것이다. 암수는 결합되었다. 송영감은 통나무받침대 위에 얹어놓은 손바닥으로 수캐의 뒷발을 받쳐주었다. 개가 맹렬한 허리 운동을 했기 때문에 손에 시퍼런 멍이 들었으나 송영감은 끝까지 받쳐주었다. 수캐는 불과 5~6초 동안 허리운동을 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그리고 몸을 비틀어 암캐로부터 떨어져 나가려고 했다.
"이놈아, 겨우 붙여 놓았는데 왜 빠져나가려고 해. 이 병신아."
함흥댁이 고함을 질렀으나 그건 함흥댁이 잘못 알았던 것이다. 수캐는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몸을 돌려 머리가 반대쪽이 되었을 뿐 엉덩이는 붙어 있었다. 개는 그런 방법으로 짝짓기를 했다. 암캐는 그런 상태로 있으면서 수캐를 놓아주지 않았다. 약 10분후 개들이 떨어졌을 때는 송영감도 함흥댁도 기진맥진했다.
"됐소. 이젠 끝났소."
송영감의 말에 함흥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언제나 기름이 반지르르하던 함흥댁의 머리카락이 수세미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함흥댁은 송영감을 노려보고 있었다. 함흥댁의 눈에는 야릇한 광채가 있었다. 송영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흥댁을 번쩍 안고 방으로 데리고 갔다. 암수의 격렬했던 짝짓기는 그들에게도 야릇한 욕정을 불러 일으켰다. 개들의 욕정이 이 사람들에게 옮겨졌다. 함흥댁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10년 동안이나 남자를 마다했던 여인이었건만, 함흥댁은 젊은 사람 못지않은 송영감 기력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자기의 몸에 아직도 뜨거운 정염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
다음날 아침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함흥댁은 닭 한 마리를 잡아 아침상을 차렸다. 함흥댁은 곱게 머리를 다듬고 수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 암캐가 새끼를 낳을까요?"
"아직은 모르지만 열흘쯤 되면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개를 여기에 두세요. 눈도 내리고 있으니 영감도 푹 쉬고요."
송영감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기다려 줄 사람도 없는 산중 오두막에 꼭 돌아 가야할 일도 없었다. 송영감은 하루를 두고 다시 개들에게 짝짓기를 시켰다. 이번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일이 이루어졌다. 사람들처럼 개들도 정이 붙은 것 같았다. 암캐는 수캐의 집에 들어가 함께 살고 있었다. 외로웠던 그 개들도 이젠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송영감은 암캐를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암캐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암캐는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입덧인 것 같았다. 젖꼭지 주위의 털도 빠지고 있었고 젖꼭지도 불그스레했다. 역시 임신의 징후였다. 암캐가 새끼를 밴 것 같다는 말에 함흥댁은 그럴 수 없이 기뻐했다. 변한 것은 암캐뿐만이 아니었다. 함흥댁도 달라지고 있었다. 갓 시집 온 새색시 처럼 들떠 있었다.
함흥댁은 안방의 도배를 다시 하고 이불과 요도 깨끗이 빨았다. 그리고 송영감을 불러들였다. 이젠 송영감은 남이 아니었다. 송영감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상팔자가 되었으나 그렇다고 여편네 치마 밑에서 살 영감이 아니었다. 그는 [갑산]의 산골 사람이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아는 사냥꾼이었다. 송영감은 그곳을 찾아오는 포수들의 사냥 안내를 하며 범도 잡았고 멧돼지도 잡았다. 송포수는 제 밥벌이를 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쉬움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총을 갖고 있는 포수들 밑에서 안내나 몰이를 할 것이 아니라 혼자서 사냥을 하겠다는 소망이었다. 그러려면 자기를 도와줄 조수가 필요했다. 사냥개였다. 송영감은 정성껏 개들을 돌봐주었다. 암캐 요녀는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는데 송영감의 꿈도 그만큼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요녀는 예정일이 지나도 기별이 없어 송영감을 애태우고 있었는데
송영감은 어느날 밤 꿈을 꾸었다. 꿈에 용이 나타나 덤벼들었다.
송영감은 옆에서 자고 있던 함흥댁이 놀라 일어날 정도의 고함을 질렀다. 송영감은 어떤 예감이 들어 개집으로 가봤다. 요녀는 눈에 불을 켜고 으르렁거렸으나 가까이 오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걸 알고 조용해졌다. 어미개의 배 밑에 새끼들이 있었다. 딱 두 마리였는데 그게 갓난 새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컸다. 특히 수놈은 유난히 크고 넓적한 발바닥을 갖고 있었다. 강아지의 발바닥이 넓다는 건 그놈이 아주 큰 개가 된다는 징후였다.
송영감은 수컷을 용돌이, 암컷을 용순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들은 유별난 강아지들이었다. 보통 강아지는 보름이 지나야만 눈을 뜨는 법인데 용돌이는 12일만에, 용순이는 13일만에 눈을 떴다. 강아지들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마당으로 기어나가 눈 속에 뒹굴면서 장난을 쳤다. 거친 장난이었으며 제대로 나지도 않은 이빨로 물어뜯기도 했다. 함흥댁이 용순이의 귀가 찢어졌다고 알려 주어도 송영감은 강아지들의 거친 장난을 말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장난을 통해 적과 싸우는 법을 배우는 법이었다.
송영감은
강아지들이 4개월이 되자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송영감은 자기의 방식대로 훈련을 시켰다. 송영감은 기본훈련으로 개들에게 두 가지의 명령을 알아듣게 만들었다. '좋아'와 '안돼'였다. 개들은 주인의 소리와 몸짓 표정 등으로 그 명령을 알아듣고 '안돼'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하던 일을 딱 멈췄다. 그리고 주인이 '좋아'라고 칭찬해주는 행동을 했다.
기본훈련이 끝나자 사냥개로서의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그 훈련은 개에 따라서 방법이 달랐다. 훈련을 받는 개가 사냥개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는 개냐 아니면 그런 혈통이 없는 잡견이냐에 따라서 훈련을 달리 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송영감은 풍산개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는 개에게만 집착했다. 훈련을 받는 개가 잡견일 경우에는 훈련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처음부터 짐승을 사냥하는 법을 하나 하나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용돌이와 용순이처럼 그 어미 아비로부터 사냥개의 혈통을 이어받은 개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이미 사냥개의 소질을 갖추고 있었으며 송영감은 그 우수한 소질을 키워주기만 했다. 송영감은 '좋아'를 연발하면서 칭찬만 해주었다. 그 개들은 강아지 때부터 멧돼지와 노루의 시체를 보자 맹렬히 짖으면서 덤벼들었다. 그들은 멧돼지와 노루가 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범의 시체를 봤을 때도 으르렁거렸으나 함부로 덤벼들지는 않았다. 그게 매우 위험한 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개들은 6개월이 되자 집안에서의 훈련을 끝냈다. 보통 사냥개라면 1년이 걸리는 과정이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개들의 어미인 요녀였다. 송영감이 젊은 개들에게 실지 사냥훈련을 시키려고 산으로 데리고 나가자 요녀가 나섰다. 늙은 요녀는 그때까지는 사냥을 하지 않았는데 새끼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자 딴 개처럼 뛰고 있었다.
요녀는 새끼들을 훈련시키려고 옛날의 기력을 되찾은 것 같았다. 요녀는 새끼들에게 짐승들의 냄새를 찾아내는 방법과 짐승들을 추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송영감이 덫에 걸려 앞다리 하나가 부러진 멧돼지를 풀어놓자 요녀는 새끼들에게 멧돼지와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요녀는 멧돼지와 정면대결을 하지 않고 그 송곳니를 피해 옆으로 돌아가면서 다리와 엉덩이 등을 공격해 보였다. 그리고 멧돼지를 지치게 만든 다음 귀밑을 꽉 물고 늘어지면서 멧돼지의 몸을 비틀어 쓰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싸움에서 멋모르고 덤벼들던 용돌이는 멧돼지의 송곳니에 받혀 부상을 입었으나 그로써 그놈은 어미가 멧돼지와 정면대결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었다.
송영감도 달라졌다. 그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창과 칼을 끄집어내 퍼렇게 날을 세웠다. 그리고 그것들을 들고 산에서 뛰어다녔다. 영감은 펄펄날 듯했다. 함흥댁도 살맛이 났다. 함흥댁은 장롱 속에 숨겨 두었던 돈뭉치를 끄집어 내 영감에게 총을 한 자루 사라고 권했으나 송영감은 총은 필요 없다고 거부했다. 사냥이란 창과 개와 함께 해야만 멋이 있고 신바람이 난다는 말이었다. 총을 쏘아 짐승을 잡는 건 참된 사냥이 아니며 그런 짓을 하면 짐승의 씨가 마른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송영감과 그의 개들은
실지 사냥훈련이 끝나자 신바람나는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핏줄이 같은 세 마리의 개들은 치밀한 협동작전을 펴고 있었다. 세 마리의 개들은 사냥감을 선정할 때까지는 함께 행동했다. 어미는 그때까지는 새끼들이 앞서지 못하게 했다. 어미는 어떤 짐승의 냄새를 맡으면 그게 어떤 짐승인지를 알아내고 사냥을 할 것인지 아닌지 판단했다. 토끼나 족제비 같은 것은 아예 무시했고, 여우나 오소리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늑대나 시라소니도 피했고 범 표범의 냄새를 맡았을 때는 송영감을 기다렸다. 송영감과 상의하려는 것이었는데 송영감은 젊은 개들이 맹수사냥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런 위험한 맹수들과는 싸우지 않기로 했다.
사냥감이 선정되면 개들은 추적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늙은 어미는 뒤로 처졌다. 힘이 넘쳐흐르는 용돌이와 용순이들이 쏜살같이 사냥감을 추적했다. 그들은 빨랐다. 풍산개는 산악지대에서 자란 개들이기 때문에 멧돼지 따위는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고, 그렇게 발이 빠른 사슴이나 노루도 따라갈 수 있었다. 용돌이는 사슴이나 노루가 도망가고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 잠복을 하고 있었고, 용순이는 사슴이나 노루를 추격했다. 용순이는 일부러 천천히 추격을 했기 때문에 사슴과 노루들도 전속력을 내지 않았다.
용순이는 용돌이가 목을 잡았다고 생각하면 비로소 빠른 걸음으로 사슴이나 노루를 몰았다. 용돌이가 잠복하고 있는 곳으로.... 그건 멋진 사냥이었다. 잠복하고 있던 용돌이는 사슴이나 노루가 1m이내의 거리까지 오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숲속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용돌이는 사슴이나 노루가 몸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 개는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면서 짓눌렀다. 노루는 그 일격에 치명타를 입고 쓰러졌으나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슴은 그대로 도망갔다. 하지만 일단 사냥감을 물고 늘어진 용돌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질질끌려 가면서도 사슴을 놓아주지 않았고, 그 사이에 용순이가 달려와 사슴의 뒷다리를 물어 쓰러뜨렸다.
어미인 요녀는 맨 나중에 오는 송영감에게 개들이 가는 방향을 가리켜 주면서 새끼들이 있는 현장에 도착했는데, 사냥감이 노루나 사슴일 경우에는 이미 사냥이 끝난 후가 된다. 따라서 어미가 할 일은 흥분한 새끼들이 잡은 짐승의 시체를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말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멧돼지인 경우는 사냥방법이 달라진다. 특히 그 곳에 서식하는 멧돼지는 몸무게가 30관(120kg), 아주 큰 놈은 70관(280kg)이나 되는 거물들이었으며 함부로 덤벼들다간 큰일난다. 멋모르고 덤벼들다가 멧돼지의 송곳니에 희생되는 사냥개들이 많았다. 그래서 사냥개들은 자기들만으로 멧돼지를 잡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작은 멧돼지는 몰라도 큰 놈은 뒤따라오는 어미와 송영감의 도움을 얻어 잡았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송영감이 올 때까지 멧돼지를 붙들어 두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앞길을 막든가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용돌이는 멧돼지의 앞길을 막았고 그놈이 위험해지면 용순이가 뒤에서 공격을 했다. 멧돼지는 그런 개들과 싸우다가 지쳤는데 그때 어미가 나타나 멧돼지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노련한 요녀는 주로 멧돼지의 무릎을 공격했다. 무릎은 멧돼지의 취약점이었으며 거기에 상처를 입으면 멧돼지는 잘 도망가지 못했고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해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치명타는 역시 송영감이었다. 총을 갖고 있는 포수같으면 멧돼지와 개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으면 총을 쏘지 못했으나 창을 갖고 있는 송영감은 개들과 합세하여 싸웠다. 송영감은 바싹 멧돼지에게 붙어 창으로 어김없이 멧돼지의 심장을 찔렀다. 개들은 송영감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송영감을 보호했다. 멧돼지가 송영감에게 덤벼들면 그걸 막았고 때로는 방패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송영감과 그의 개들이 추적하는 멧돼지는 거의가 잡혔다.
송영감과 개들은
많은 멧돼지와 노루를 잡았다.
총으로 사냥을 하는 포수들은 눈이 내려야만 발자국을 추적할 수 있었는데, 송영감은 언제나 짐승을 잡을 수 있었다. 개들은 발자국이 아니라 냄새로 짐승을 추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함흥댁의 주막도 유명해졌다. 그 주막에 가면 언제나 짐승고기를 먹을 수 있었기에 사냥꾼이 아닌 사람들도 몰려들었다. 멧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도 찾아왔고 멧돼지고기를 사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노루와 멧돼지의 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루나 멧돼지의 피는 강장제였는데 함흥댁의 주막에 가면 그걸 마실 수 있었다.
용돌이가 생후 1년쯤 되었을 때 용돌이의 아버지인 병신개 바위는 역시 운동부족으로 너무 살이 쪄, 심장병으로 죽었으나 그는 훌륭한 후손을 남겨 놓았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훌륭한 사냥개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돌이가 생후 1년반쯤 되었을 때 큰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 송영감은 멧돼지를 쫓고 있었는데,
어느 구릉 위에서 개들이 노루 추적을 중단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그곳에 길이가 한 자나 될 것 같은 불곰의 발자국이 있었다.
아직 2월말이었는데 겨울잠을 자던 곰이 벌써 나온 것 같았다. 송영감은 용돌이와 용순이가 곰과 싸우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으나 그 곰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겨울잠을 자고 갓 나온 곰이란 힘이 없다. 겨우내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자고 있었으니 체중이 3분의 1이나 줄고 중병을 앓고 나온 것처럼 쇠약하다. 산골마을의 속담에 '구멍나온 곰처럼 빌빌거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한 판 벌일 만했다. 송영감은 용돌이의 엉덩이를 툭 치면서 소리질렀다.
"가. 가서 곰을 잡아."
용돌이와 용순이가 산이 떠나가도록 짖어대면서 달려갔다. 요녀는 뭔가 주저하는 태도였으나 그래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송영감은 짐을 던져버리고 창날을 감싸고 있던 가죽주머니를 벗겼다. 창날이 햇빛을 받아 번쩍이고 있었다. 송영감은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게 된 큰 사냥이었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불곰이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영감은 산을 하나 넘어서면서 그 불곰을 볼 수 있었다. 놈은 봄빛을 받고 황금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70관(약280kg) 정도의 큰 불곰이었는데 송영감은 그놈의 몸놀림을 보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잠에서 갓 나온 곰은 빌빌한다지만, 그놈은 그렇지 않았다. 잠자리에서 갓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해는 유난히 겨울이 짧았으므로 곰은 열흘쯤 전에 나와 먹이를 먹고 원기를 회복한 것 같았다. 송영감은 곰이 쇠약해 있을 것이라는 자기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으나 때가 늦었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이미 곰과 대결하고 있었다. 곰은 바위산 중복에서 아래쪽에 있는 개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곰은 유리한 지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좌우로 벌어져 곰이 바른쪽의 용돌이에게 덤벼들면 왼쪽의 용순이가 곰의 측면을 공격했고 곰이 몸을 돌려 용순를 공격하면 바른쪽의 용돌이가 바싹 붙어 공격을 했다. 어미인 요녀는 있는 힘을 다해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불리한 지세인데도 개들은 적절한 방법으로 잘 싸우고 있었다. 역시 그들은 풍산개의 핏줄을 이어받고 있는 훌륭한 사냥개들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요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정면에서 곰을 위협했다. 그리고 송영감은 돌아서 바위산 위쪽으로 나갔다. 그로써 사람과 개들은 곰을 포위한 셈이었다. 곰이 포효했다. 놈은 치고 빠지는 개들의 전법에 걸려 분노하고 있었다. 곰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덤벼들던 용돌이를 노리고 덮쳐들었다. 곰은 단숨에 용돌이를 때려잡으려고 덤벼들었으나 용돌이는 등을 돌려 도망가지 않았다. 용돌이는 뒷걸음질치면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그 사이에 위쪽에 있던 송영감과 왼쪽에 있던 용순이가 곰에게 덤벼들었다. 곰은 갑자기 되돌아섰다. 가장 위험한 적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해치우려고 결심한 것 같았다. 송영감은 두 손으로 창을 쥐고 곰이 덤벼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덤벼라 이놈, 덤벼."
송영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곰은 그 소리에 주춤했다. 비단 곰뿐만 아니라 짐승이란 어떤 강한 자극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하고 있던 동작을 멈추는 법이었다. 그때도 곰은 송 영감이 지르는 고함소리를 듣고 공격을 잠시 중단하고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살폈다. 상황을 더 잘 살펴보려고 곰은 두 발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그 때 송 영감이 뛰어들면서 창으로 곰의 가슴팍을 찔렀다. 송 영감은 혼신의 힘으로 찔렀으나 손으로 전달되는 반응으로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칵하는 소리가 났다. 창끝이 곰의 갈비뼈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그 창끝은 곰의 두꺼운 지방층을 뚫고 갈비 사이로 들어가 심장에 닿게 되어 있었다. 창이 갈비뼈에 닿았을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그걸 스쳐 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창끝이 갈비뼈를 스쳐 나가지 않았다. 워낙 큰 곰이었기에 갈비뼈에 부딪쳐 멈췄다. 아차....
송 영감은 창을 다시 빼려고 하다가 창을 놓아버렸다. 창을 빼려다가 도리어 곰을 앞으로 잡아당겨 불러들일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송 영감은 뒤로 물러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았으나 칼로 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곰은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놈은 창을 부러뜨리고 송영감을 붙잡으려고 덤벼들었다. 위기였다. 송 영감은 칼로 곰을 막지 못하겠다는 걸 알고 싸움에서 졌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그때 용돌이가 곰에게 덤벼들었다. 용돌이는 아래쪽에서 곰과 대치하고 있었으나 송 영감이 곰과 싸우고 있는 사이에 곰의 측면으로 올라왔다. 송 영감이나 어미개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용돌이는 어느 새 그런 싸움 기술을 배운 것 같았다. 용돌이는 측면에서 곰에게 덮쳐들었다. 송 영감에게 덤벼들려던 곰의 다리를 꽉 물고 늘어졌다. 그런 공격은 곰에게 큰 충격을 주지 못했으나 그래도 곰을 비틀거리게는 만들었다. 몸의 중심을 잃은 곰은 옆으로 돌아 뒷다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는 용돌이를 앞발로 후려쳤다. 그 앞발에 맞으면 개는 치명상을 입는다. 곰의 앞발은 어깨의 근육덩이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을 받고 있었으며 그 앞발에 제대로 맞으면 소나 말은 목뼈가 부러진다.
하지만 용돌이는 그 앞발에 맞지 않았다. 재빨리 물고 있던 곰의 뒷다리를 놓아주고 뒤로 몸을 피했다. 곰의 앞발은 허공을 쳤을 뿐이었다. 거기까지는 사냥개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보여준 용돌이의 반격은 어느 사냥개도 할 수 없는 싸움의 기술이었다. 용돌이는 아슬아슬하게 곰의 앞발을 피한 다음 허공을 친 곰을 다시 역습 했다. 방어를 하면서 적을 받아치는 숙련된 전법이었다. 용돌이는 이번엔 허공을 친 곰의 앞발을 물었다. 앞발의 뼈가 부러지라고 힘껏 물었다. 풍산개는 다른 사냥개들과 다르게 강한 턱을 갖고 있었다. 그 턱에서 나오는 강한 힘으로 곰은 충격을 받았다. 곰은 고통에 고함을 질렀다. 곰은 앞발을 물고 있는 개를 뿌리쳤으나 용돌이는 그 힘에 휘둘리면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기가 막히는 개였다. 전신이 투혼으로 뭉쳐 있는 사냥개였다.
송영감도 힘을 냈다. 그는 칼로 용돌이와 싸우고 있는 곰의 목을 후려쳤다. 칼은 깊숙히 곰의 몸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피가 솟아올랐다. 동맥이 끊어진 것이다. 용돌이는 곰에게서 떨어져 다시 공격을 했으나 곰은 전의를 상실했다. 곰은 등을 돌려 계곡 아래쪽으로 도망갔다. 개들이 추격을 하려고 했으나 송영감이 고함을 질렀다.
"안돼. 안돼."
개들은 추격을 중지했다. 개들은 그렇게 흥분하고 있었으나 주인의 절대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 곰은 더이상 추격할 필요가 없었다. 그놈은 중상을 입고 있었다. 내버려두어도 죽을 것이었고 죽지 않더라도 멀리 도망갈 수 없었다. 노련한 사냥꾼인 송영감은 싸움을 다음날로 미루었다. 시간이 갈수록 곰은 더 쇠약해질 것이었으며 다음날 다시 공격을 해도 늦지 않았다. 송영감은 설치는 개들을 달래면서 그날 밤 야영을 했다. 다음날 아침 송영감과 개들은 다시 곰을 추적했다. 송영감이 예상했던 대로 곰은 핏줄을 그어가면서 도망가다가 계곡의 바위틈에 웅크리고 있었다.
곰은 개들을 보자 일어났으나 놈에게는 이미 힘이 없었다. 세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었고, 송영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다. 개들은 그 사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곰이 어떤 짐승이며 그들과 어떻게 싸워야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송영감은 그 해에 세 마리의 곰을 더 잡았다. 곰사냥 경험을 얻은 개들은 다른 짐승사냥을 하다가도 곰의 냄새를 맡으면 곰을 추적했다. 그런 곰사냥을 하다가 어미개인 요녀는 곰에 어깨를 물렸으나 목숨은 건졌다. 요녀는 그 후에는 사냥을 못하게 되었으나 두 마리의 새끼들은 이미 어미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두 마리의 개들은 어미 없이도 곰을 잡았다.
그런데 그들의 사냥터가 되어 있는
[무산]과 서쪽 백두산 남쪽 함경산맥 사이에 있는 세모꼴 원시림에
서식하는 짐승은 멧돼지나 곰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더 무서운 맹수들이 있었다. 그곳에는 범과 표범이 있었다.
범과 표범, 특히 표범은 개들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표범들은 개고기를 유난히 좋아했으며,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마을에 들어와 개를 잡아먹었다. 양 돼지 닭 등을 놓아두고 개들만을 노렸다. 그래서 무산의 산골마을에서는 개들을 사육하지 못했다. 사육해봐야 표범의 밥이 되기 때문이었다.
표범은 사냥개들도 잡아먹었다. 제 발로 산에 올라온 사냥개를 표범들이 살려둘 리가 없었다. 그곳에서 꿩사냥을 하던 일본인 사냥꾼은 전 해 초겨울에 두 마리의 사냥개 모두를 잃은 일이 있었다. 사실 표범은 개가 싸우기에는 매우 거북한 상대였다. 힘이나 민첩성 등에서 표범은 개보다 앞섰고 표범에게는 갈고리 같은 발톱이 있었다. 그 발톱으로 할퀴면 개도 배가 찢어졌다. 개의 발은 달리는 데만 사용되었지 무기가 되지 못했다. 송영감은 그걸 알고 표범이나 범은 사냥감에서 제외시켰다.
개들이 표범의 냄새를 맡아도 송영감은 추적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냥터에서 철수했다. 개들도 그걸 알고 표범은 피해 다녔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개들은 표범을 피했지만 표범이 개들을 피하지 않았다.
용돌이가 태어난 지 3년째 되는 어느 가을에
표범 한 마리가 함흥댁 주막 돌담을 타 넘고 개들을 습격했다.
그때 송영감은 반가운 사냥친구를 만나 술을 지나치게 마셔 마당에 묶어 놓았던 개들의 목줄을 풀어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송영감은 표범의 냄새를 맡은 개들이 짖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담을 타넘은 표범은 쉽게 개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목줄이 말뚝에 묶여있는 개들은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당했다.
표범은 늙은 요녀에게 덤벼들었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자기들의 어미가 표범에게 죽는 것을 비통한 소리를 지르면서 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 개들의 고함소리를 듣고 함흥댁이 일어나 송영감을 깨웠다. 송영감은 벽에 걸려있던 창을 들고 마당으로 뛰어나갔고 표범은 그걸 보고 담을 타넘고 달아났다. 그러나 요녀는 이미 목줄이 끊어져 죽어 있었다. 송영감은 그걸 보고 통곡했다. 15년 동안이나 함께 살아온 벗이 자기의 실수로 죽은 것이었다. 송영감은 요녀의 시체를 안고 꼭 복수를 해주겠다고 맹세했다.
다음날 새벽 송영감은 개들에게 쇠붙이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뾰족뾰족한 쇠 돌기물이 박혀있는 두꺼운 가죽목걸이였는데 그건 범이나 표범 따위의 날카로운 이빨로부터 개의 목을 보호해 주었다. 송영감 자신도 왼팔에 두꺼운 삼베를 둘둘 감았다. 그것을 표범의 아가리 안으로 밀어 넣어 방패로 쓰려는 것이었다. 송영감은 곰사냥 때와는 달리 두개의 창을 갖고 가기로 했다. 던지는 창과 찌르는 창이었다. 몸놀림이 빠른 표범과 싸우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고 창을 던져야만 했다.
송영감과 개들은 다음날 아침 표범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요녀를 죽였던 표범도 피를 흘리면서 앞발 하나를 잘 쓰지 못하고 있었다. 요녀는 비록 늙어서 사냥을 못하는 상황에 있었으나 그래도 그냥 죽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중략>
송 영감은 용돌이를 윤 포수에게 팔지는 않았으나
빌려주는데는 동의했다.
윤 포수는 오래도록 도움을 받았던 어른이었으므로 그런 간청까지 거절할 수 없었다. 또한 환갑이 넘은 송 영감은 젊은 개의 왕성한 엽욕을 만족시켜 줄 수도 없었다. 용돌이는 하루라도 사냥을 못하게 되면 끙끙거렸으나, 창을 들고 개와 함께 뛰어야 할 송 영감은 힘에 부쳤다. 사냥개로서의 용돌이의 능력을 발휘시켜 주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윤 포수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윤 포수는 당대의 명포수였고 개 사육가였다.
윤 포수는 용돌이와 용순이를 데리고 사냥을 시작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에서 재훈련을 시켜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개들이 총소리에 놀라지 않게 만들어야만 했다. 윤 포수는 그 점을 우려했다. 사실 훌륭한 사냥소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총소리에 놀라 실격하는 개들이 많았다. 용돌이는 그동안 창 사냥만을 했으므로 총소리에 놀랄 것이고 총 사냥에 익숙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윤 포수의 기우에 불과했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3, 4일 동안 총소리를 들으니 이내 익숙해졌다. 함께 사냥을 하는 짝인 사람이 쏘는 총은 자기들에게는 위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용돌이는 타고난 사냥개였다. 그 개는 총과 창의 차이도 알아차리고 총사냥에 익숙해졌다. 총은 창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였고 그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면 여하한 맹수도 쓰러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따라서 총을 갖고 있는 윤 포수와 함께 사냥을 할 때는 짐승들을 붙들어 주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용돌이가 윤 포수와의 총 사냥에 익숙해졌을 때,
무산 곤봉산 기슭 도토리 마을 등지에 큰 일이 일어났다.
곤봉산은 높이가 2,000m나 되는 험산이었고, 불곰들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해 10월 초부터 큰 불곰 한 마리가 마을을 덮치고 있었다. 한 달 동안에 네 사람이 죽었고, 소 네 마리도 끌려갔다. 그곳 포수들과 산림서나 경찰지서 직원들이 나섰으나 도리어 산림청 직원한 사람이 곰에게 물려죽었다. 그러나 산림서나 경찰지서는 10월이 지나면 식인곰 소동은 끝날 것으로 알고 있었다.
늦가을 겨울잠을 앞둔 불곰들이 설치고 희생자가 나는 것은 비단 그 해 만에 있는 일이 아닌 연중 행사였으며, 그런 소동은 곰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동굴이나 토굴로 들어가 버리면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곰 피해는 11월에 들어서도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심해졌다. 곰은 이틀 전에 자기가 죽인 마을사람의 장례식이 벌어지고 있는 마을을 다시 습격하여 하룻밤 사이에 세 사람을 죽였다.
첫눈이 내렸는데도 설치고 있는 점으로 봐서 그 곰은 겨울곰이었다. 겨울이 되었는데도 동굴이나 토굴에 들어가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곰이었다. 10년마다 한번씩 그런 곰들이 있었으며, 그런 곰들이 설치는 해는 재앙의 해였다. 무산 일대 산골 마을들이 공포에 떨었다. 함경도에서는 그 겨울 곰에 500원의 현상금을 걸었으나, 아무도 나서는 포수가 없었다. 겨울 곰은 미친 곰이었으며, 그 놈은 잡아먹기 위해 사람을 덮치는 것이 아니라 살육을 즐기기 위해 덮쳤다. 그 곰은 사람만 보면 덮어놓고 덤벼들었다. 포수들이 나서면 희생자 수가 더 늘어날 뿐이었다.
무산의 경찰서장은 곰이 출몰하는 지역의 산골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유명한 윤월술 포수에게 출동요청을 했다. 그 곰과 싸울 수 있는 포수는 오직 그뿐이었다. 윤 포수는 용돌이와 용순이를 데리고 현지로 달려갔다. 늙은 송 영감도 함께 갔다. 그들이 현지에 도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죽음의 나라처럼 조용했던 산에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곰의 영토를 위압했다.
용돌이는 벌써 곰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냄새에 스며 있는 사람 냄새도 맡았다. 용돌이는 그 곰이 사람고기를 먹고 있는 식인곰이라는 걸 알아 차렸다. 용돌이는 그때 여덟 살이었다. 사냥개로서 한창 나이였으며, 이미 곰을 여섯 마리나 잡은 경험이 있었다. 용돌이는 곰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나 신중했다. 용돌이는 곰의 냄새를 선택했다. 오래된 냄새는 버리고 최근에 남겨진 짙은 냄새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용돌이는 뒤따라오는 사냥꾼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추적을 하고 있었다. 윤 포수는 그런 개를 보면서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윤 포수는 자신이 있었다. 용돌이처럼 용맹하고 침착한 사냥개가 있는 이상 그 겨울 곰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용돌이는 그날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어느 마을로 들어갔다. 곰을 추적하지 않고 왜 마을로 들어가는 것일까. 용돌이의 눈이 번쩍이고 있었다. 꼬리가 뻣뻣하게 섰고 온 몸이 굳어져 있었다. 용돌이가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그건 곰이 가까이에 있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는 언제나 틀림이 없었다.
곰은 마을 안에 있었다. 다행히 마을사람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피난해 버린 마을이었는데 사람 사냥을 일삼는 곰은 그런 마을을 점령하고 있었다. 윤 포수는 그러나 싸움은 다음 날로 미루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마을 앞산에 있는 움막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 움막은 숯을 굽는 사람의 집이었는데 주인은 없었다. 윤 포수와 송 영감은 움막집 앞에 불을 활활 피워놓고 개들의 목줄을 묶어 놓았다. 곰과 싸우지 못하도록 개들을 붙잡아 두었는데 개들이 싸우지 않으려고 해도 곰이 가만있지 않았다. 자정쯤 되었을 때 개들이 짖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목줄을 끊어질 것 같았다.
"놈이 오고 있어요."
송 영감이 속삭였다. 윤 포수는 눈을 밟고 있는 그 무거운 발짝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곰이 덤벼들면 승산이 없었다. 사람 사냥을 일삼는 식인곰은 번개처럼 빨랐으며 그걸 막을 수는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총도 창도 무용지물이었다. 윤 포수는 모닥불에 나무들을 마구 던져 넣었다. 구워 놓은 숯까지도 던져 넣어 불바다를 만들었다. 송 영감은 그 불바다를 뛰어넘고 곰에게 덤벼들려는 용돌이를 꽉 안고 있었다. 개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있었다.
"안돼, 안돼. 덤벼들면 안 돼."
곰이 다가왔다. 아주 가까이 다가왔으나 그 놈은 불빛에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 놈은 모닥불 주변을 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놈을 볼 수 없었으나 개들은 그걸 안다. 개들은 곰의 움직임에 따라 몸을 돌리면서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곰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았다. 불을 뛰어 넘어 사람들을 덮칠 것 같았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딱 멈췄다. 놈이 덤벼든다. 송 영감이 꽉 안고 있는 용돌이가 뛰어들 곰을 마주 받아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때 윤 포수가 총을 발사했다. 위협 발사였다. 총구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이고 폭음이 울려퍼졌다. 과녁도 잡지 못하고 쏜 총탄이 맞을 리가 없었지만, 그 섬광과 폭음소리는 곰을 위협했다. 용돌이와 용순이가 요란하게 짖었다. 곰이 물러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도망간 것은 아니었다. 놈은 다시 모닥불 주변을 돌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길고 긴 겨울밤이 지나가고 하얀 새벽안개가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 곰은 보이지 않았다. 눈 속에 찍혀 있는 엄청난 발자국만이 보였다. 개들도 진정되고 있었다.
"도망갔어. 놈은 도망갔어."
윤 포수가 창백한 낯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범 표범 곰 등을 수십 마리나 잡은 그 사냥꾼도 어지간히 질려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해는 보이지도 않았고 강한 바람을 탄 눈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 곰의 발자국이 지워진다. 사냥꾼들은 곰을 추적할 수 없게 되지만 사냥개들이 있으면 그럴 염려는 없다. 용돌이가 추적을 시작했다. 간밤에는 곰이 개를 사냥하려고 했지만 이젠 개가 곰을 사냥할 차례였다.
곰은 점령하고 있던 마을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놈은 바람과 눈과 추위를 막기 위해 사람들이 살고 있던 마을을 피신처로 삼고 있었다. 용돌이는 신중했다. 용돌이는 싸움을 재촉하고 있는 용순이를 꾸짖으면서 마을 앞에서 사냥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용돌이는 이젠 함부로 날뛰는 젊은 사냥개가 아니었다. 용돌이는 오랜 사냥경험으로 성숙한 사냥개가 되어 있었다.
"좋아, 이젠 가서 놈을 잡아."
송 영감이 용돌이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사람들이 모두 피신한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곰이 돌아다니면서 안방 문까지도 부숴 놓고 있었다. 강한 눈바람이 폐허가 된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개들은 마을의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용돌이는 마을 뒤쪽에 있는 방앗간 앞에서 멈췄다. 방앗간 안에는 볏단들이 쌓여 있었다. 겨울 곰은 그곳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들은 방앗간 주변을 빙빙 돌면서 짖고 있었으나 방앗간은 조용했다. 방앗간 안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곰은 분명히 그 안에 있었다. 방앗간 안에는 무서운 살기가 떠돌고 있었다. 곰은 그 안에서 개들과 싸울 작정이었다. 용돌이가 반쯤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했으나 송 영감이 고함을 질렀다. 방앗간 안에서 곰과 싸우면 안된다. 개들이 곰과 싸울 때는 치고 빠지는 전법을 쓴다. 한 마리가 곰을 공격하다 곰이 덤벼들면 얼른 뒤로 물러나고, 그 대신 다른 개가 곰의 뒤나 옆에서 덤벼든다. 개들은 그렇게 곰을 어지럽히고 지치게 만들어 사냥꾼이 달려와 곰을 쏘아 죽일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방앗간 안에서는 그렇게 할 공간이 없었다. 황소보다도 큰곰이 공간을 꽉 메우고 있을 것이었으며, 개들이 움직일 틈이 없었다. 개들이 방앗간 안으로 들어가면 곰에게 쉽게 잡힌다. 곰은 그걸 노리고 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방앗간 안에서는 곰과 육탄전을 벌여야만 했고 그건 자살행위였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그렇게 흥분하고 있었는데도 송 영감의 말을 들었다. 그건 절대명령이었으며, 무조건 복종해야만 했다. 윤 포수는 심사숙고했다. 그 겨울 곰과의 싸움은 사냥이 아니었다. 이미 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어 놓은 식인곰을 잡는 일은 일종의 정당방위 행위였다. 그 식인곰은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잡아야만 했다. 윤 포수는 결단을 내렸다. 비정한 결단이었다.
윤 포수는 불을 피웠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방앗간으로 던져넣었다. 방앗간 안에 쌓여 있던 짚단에 불이 붙어 화염이 솟아올랐다. 곰이 포효했다. 고통과 분노에 그놈은 미친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곰은 윤 포수가 기다리고 있는 문으로 뛰어나오지 않았다. 곰은 앞발로 방앗간 뒤쪽 흙벽을 후려쳤다. 흙벽이 와르르 무너졌고 곰은 그 곳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털에 불이 붙은 곰은 뒷산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으나 개들이 그대로 두지 않았다. 용돌이가 곰의 뒷발을 물고 늘어졌다. 곰은 뒤돌아서 용돌이를 앞발로 후려쳤으나 용돌이는 재빨리 몸을 피했고 그 사이에 용순이가 또 다른 뒷발을 물고 늘어졌다. 남매간인 용돌이와 용순이의 협동작전은 정밀한 기계와 같았으며 그 작전에 걸린 겨울곰은 도망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윤포수가 달려와 개들에게 비키라고 지시했으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개들은 윤포수가 총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자 좌우로 흩어졌다. 윤포수에게 사격의 기회를 준 것이었다. 훌륭했다. 송영감과 오래도록 창사냥을 했던 개들은 이젠 총사냥에 적응 하고 있었다. 윤포수는 발포했다. 어깨에 총탄을 맞고 비틀거리는 곰의 대가리에 다시 총탄을 박아넣었다. 10m의 거리에서 강력한 라이플탄을 맞은 곰은 주저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용돌이가 주둥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짖었다. 승리의 개가였다. 보통 사냥개같으면 큰 사냥감이 쓰러지면 덤벼들어 마구 물어뜯는 법이었는데 용돌이와 용순이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자기의 투쟁본능까지도 억제할 줄 아는 침착한 사냥개들이었다.
송영감은 그후에는 사냥을 하지 않고 함흥댁과 조용히 여생을 보냈으나 용돌이와 용순이는 윤포수와 함께 사냥을 계속했다. 그들은 영국의 이든 백작이 무산에서 멧돼지 사냥을 했을 때도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든백작이 데리고 온 사냥개들은 추위에 떨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으나 용돌이와 용순이는 바위덩이 같은 멧돼지를 꼼짝도 못하게 붙들어놓고 있었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무산에서 가장 훌륭한 사냥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든 백작은 감탄하며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구입하겠다고 제의했으나 윤포수는 거절했다.
"풍산개는 조선의 동북부 산악지대에서 산출된 개들이며 그들은 그런 산악지대에서만 훌륭한 사냥을 하고 그 핏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풍산개를 영국에 데리고 가도 핏줄을 이어갈수 없을 것입니다."
이든백작은 그 말이 옳다고 말하면서 풍산개를 영국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용돌이와 용순이는 윤포수와 함께 사냥을 했던 5년 동안에 서른 마리나 되는 곰과 세 마리의 표범을 잡았다. 멧돼지나 사슴 따위는 수백 마리나 잡았을 것이었다. 그들은 무산의 산과 밀림을 지배했다. 그들이 범을 잡지 못한 이유는 범이 그들의 영토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 개들은 윤포수의 집에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윤포수는 개들이 간 곳을 짐작하고 함흥댁의 주막을 찾아갔다. 개들은 그곳에 있었다. 개들은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주인의 머리맡에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그들은 백리나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주인의 죽음을 알았던 것이다. 송영감은 그날밤 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숨을 거두었다. 윤포수에게 개들을 잘 봐달라는 유언을 남겨놓고... (끝)
저자소개 : 김왕석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상대를 중퇴했다. 대구일보, 대구매일, 서울신문, 경향신문, 신아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경제과학 심의회의 연구원, 문공부 전문위원을 지냈다. 스포츠서울에 [맹수와 명포수] 경남신문, 강원일보에 [세기의 사냥꾼], 광주일보에 [사냥꾼의 얘기], 대전일보에 [수렵야화]등을 연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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