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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이야기

사냥개 훈련

원문출처 : 김왕석의 [수렵야화]

 

 

 

 

 

[사냥개 훈련]

 

 

강원도 평창 서쪽에 있는 산간마을에 사는 손노인은

사냥개 사육사로서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다.

 

강원도뿐만 아니라 한성의 사냥꾼들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포수는 서른 두 살 때 어렵게 풍산개 두 마리를 입수하여 그 훈련을 손노인에게 맡기려고 했다. 김포수는 손노인이 살고 있다는 마을을 찾아가 주막에서 손노인의 집을 물었으나 주막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시무룩한 표정들이었다.

 

"손노인을 모르십니까. 여기서 물으면 다 알 거라고 하던데 …"

 

주막집 주인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알기는 알지요. 그러나 그 노인에게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거요.”

“그건 왜요 ?""그 노인은 늘 술만 마시고, 술만 마셨다고 하면 주먹을 휘두르지요. 상대를 가리지 않아요. 개하고는 상대하지만…”

 

김포수는 뭔가 일이 어렵게 됐다고 직감했으나 거기까지 와서 그대로 되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김포수는 술주정을 받을 각오를 하고 독한 술 한 병을 사들고 손노인을 찾아갔다. 손노인이 살고 있는 오두막은 험준한 산들 사이를 깊숙이 들어간 계곡에 있었는데 집주위에는 높은 돌담이 쌓여 있었다.

 

김포수가 열려 있는 통나무 문으로 들어서니까 개 한 마리가 마당에 누워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입이권미(立耳卷尾 : 귀가 서고 꼬리가 말려있는)의 대형 백구였으며 풍산개와 비슷했으나 어딘지 잡피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 개는 낮선 사람을 보고도 그저 한 두 번 짖다가 귀찮다는 듯이 다시 누워 버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몸 전체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의 상처투성이였고 꼬리의 끝도 잘려 있었다. 서너 평쯤 되는 초가집에는 분명 인기척이 느껴졌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김포수는 몇 번이나 소리를 질러 주인을 찾았으나 전혀 대꾸가 없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 것일까?

 

김포수가 반쯤 열려 있는 방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한 명 누워 있었다.

 

“손포수이십니까?”

“이 집에 손가 놈 말고 다른 놈이 또 있었던가?”

 

듣던 대로의 기인(奇人)이었기에 김포수도 배짱을 부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저는 포수마을에서 왔습니다.”

“포수마을 ? 거기엔 털보영감이 살고 있지!”

“네, 제가 바로 그 털보영감의 자식이올시다.”

 

그 말에 손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갖고 온 것이 뭐지 ? 이리 내놔!”

 

손 노인은 우선 술을 병째로 꿀컥꿀컥 마시더니 방바닥에서 말리고 있던 노루고기를 안주로 씹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어? 설마 저 개를 팔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재떨이가 날아올 것 같았다.

 

“저도 저런 개를 기르고 있어요. 죽은 장노인의 개였지요.”

“장가 놈의 개를…. 그 개 같으면 풍산개일 텐데….”

 

손노인이 부엌으로 나가더니 사발 하나를 가져다가 김포수에게 내밀었다.마시라는 말인 것 같아 김포수는 사양하지 않았다.

 

“그 개는 다리가 부러졌죠. 그래서 그 개의 새끼 두 마리를 얻었는데 아직 어리죠.”

“몇달 됐어 ?”

“여섯 달째 됩니다.”

“그래서.”

“전 그 새끼들을 훌륭한 사냥개로 만들고 싶은데 저는 개를 길들일 줄 모릅니다.”

“포수마을에는 그런 놈이 없지. 강원도 내에서도 없고…”

“그래서 어르신네를 찾아 뵙습니다.”

“싫어.”

 

더 이상 두말 못하게 만드는 거절이었다.

 

김포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술잔을 손노인에게 넘겨주고 술을 철철 넘게 따라 주었다. 손노인은 그건 마다하지 않고 죽 들이키더니 다시 잔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도대체 포수마을 놈들은 개도 없이 사냥을 어떻게 하지?”

 

아차 이제부터 술주정이 시작되는구나.

 

“개는 없지만 사람이 개처럼 뛰지요. 개처럼 냄새도 맡고.”

 

주객은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고 독주만 마시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김포수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장을 보러 갔던 손노인 아들 부부가 돌아와 김칫국을 끓여 내놓았다. 김포수가 그 김칫국을 마시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손노인이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털도 뽑지 않은 돼지 뒷다리 하나를 몽땅 주고 있었다.

 

“좋은 개입니다. 우리 집 강아지도 저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손노인이 휙 하고 되돌아서 김포수를 노려봤다.

 

“그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개 한 마리를 길들여 사냥개를 만드는 데는 반 년이 걸리고 그동안에 개가 죽을지도 몰라. 열 마리를 훈련시키면 반년 후에 살아남는 개는 고작 한두 마리 정도이지. 나머지는 죽거나 불구가 돼.”

“그래도 훈련을 시키고 싶습니다. 풍산개가 똥개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그 말이 손노인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와.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 가서 데리고 와. 그러나 훈련을 받다가 죽을지도 몰라. 세 마리 중에 두 마리는 죽는 법이니까. 그리고 개들뿐만 아니라 개 주인이나 내가 죽을지도 몰라.”

“개 주인이요 ?”

“개뿐만 아니라 그 개를 부릴 주인도 훈련을 받아야 해.”

 

김포수는 비로소 개를 훈련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중대한 일인지를 알았다.

 

 

 

 

김포수는 그 길로 포수마을로 달려가

사흘 후에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돌아왔다.

 

두 마리의 풍산개는 수컷은 바우, 암컷은 화순이라고 불렀는데 모두가 당당한 체격들이었다. 전신이 순백색이었고 눈과 콧등만 검었다. 몸무게가 벌써 10관(약 38 Kg)이나 되는 개였다. 김포수가 되돌아왔을 때 손노인은 없었고 아들 부부들만이 있었다. 아들 부부들은 김포수에게 손노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손포수님은 어디로 가셨지요 ?”

“그 어른이 어디로 간다고 말을 남기는 분입니까.”

 

 

 

손노인은 그로부터 사흘 후에 돌아왔는데

네 마리의 개를 데리고 왔다.

 

모두가 생후 여섯 달 전후의 개들이었다. 그중 한 마리는 풍산개, 한 마리는 진도개 같았으나 나머지 두 마리는 잡견인 것 같았다.손노인은 어느 마을에 어떤 개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을들을 찾아가서 쓸만한 개들을 물색했다는 것이다.

 

“난 개들의 핏줄은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아. 좋은 핏줄의 개들에게도 못난 놈들이 많고 보잘것 없는 잡견 중에서도 훌륭한 놈들이 있지. 저기 저 얼룩 잡견은 이웃집 염소를 물어 죽였다고 해서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 옆에 묶여 있던 것을 내가 사왔지 ! 내가 간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개장국이 될 신세였어. 좋은 사냥개란 뭣보다도 용감해야 해!! 겁이 많은 개, 수줍은 개, 신경질적인 개는 사냥개가 못돼!! 사람이건 개건 간에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기분이 틀어지면 덤벼들겠다는 기백이 있어야 해.”

 

김포수는 그 말을 듣고 비로소 그가 데리고 온 네 마리의 개들이 모두 그런 기백을 가진 개라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놈들이었으며 끌려온 주제에 그집 주인격인 풍산개에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손노인은 잡피가 좀 섞인 그 풍산개를 청룡이라고 불렀는데 그놈은 이미 멧돼지를 수십 마리, 곰을 여덟 마리, 표범을 두 마리나 잡은 개였다.

 

청룡은 방금 주인이 데리고 온 풋나기 개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품을 하고 있었으나 건방진 개 한 마리가 바로 옆에까지 다가와서 귀찮게 도전을 하자 앞발로 가볍게 후려쳐 버릇을 고쳐 주었다.

 

“자, 이놈들 조용해.”

 

손노인은 넓은 마당에 여섯 개의 굵은 말뚝을 박아놓고 거기에 자기가 데리고 온 네 마리 개와 김포수가 데리고 온 바우와 화순이를 매어 두었다. 손노인은 다음날부터 어린 개들에게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개들에게 뭣보다도 먼저 ‘그것은 안된다!’ ‘그것은 좋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손노인은 눈을 부릅 뜬 성난 얼굴로 머리를 크게 좌우로 흔들면서 ‘안돼!’라고 소리쳤고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면서 ‘좋아!’ 라고 소리쳤다. 어린 개들은 그 몸짓과 소리의 음향으로 주인의 의사를 알아들었는데 그게 사람과 개의 의사가 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수단이었다.

 

오래도록 그런 수단으로 주인인 손노인과 의사를 통해 온 청룡의 경우에는 ‘안돼’ ‘좋아’라는 말이 필요 없이 머리의 움직임으로 그게 통하고 있었고 다른 명령들도 거의 몸짓으로 통하고 있었다. ‘추적을 해’ 하며 앞으로 개를 내밀면서 엉덩이를 툭 쳤고, ‘덤벼’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덤비는 시늉을 했고 ‘조용히 해’는 살그머니 앉으면서 손을 아래위로 서서히 흔들었다.

 

손노인과 청룡의 몸짓 대화의 예외가 되는 것은 호각이었다. 청룡이 너무 멀리 짐승을 추격했을 때는 손노인은 호각을 불어 청룡을 불러들였다

 

손노인의 사냥개 훈련은 가혹했다. 그는 사슴 가죽으로 만든 긴 매를 갖고 개들이 명령을 어겼을 때는 사정없이 후려쳤다. 개들의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 어린 개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여 주인의 명령을 이해 못했으나 영도견인 청룡이 하는 것을 보고 차츰 그 뜻을 알아들었으며 나중에는 영도견인 청룡이 없어도 단독으로 주인의 명령을 이해했다.

 

손노인은 근 한 달 동안이나 집에서만 그런 훈련을 시켰다. 개들은 전신이 상처투성이에다 뼈와 근육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훈련 한 달이 되던 날에 최초의 희생이 생겼다. 잡견 한 마리가 손노인의 매질에 견디지 못하고 이빨을 내밀면서 손노인에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손노인은 자기에게 덤벼드는 잡견을 몽둥이로 힘껏 후려쳤는데 그 때문에 그 잡견은 죽어 버렸다. 대가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개는 눈이 뒤집어져 거품을 품더니 얼마 후에 숨이 끊어져 버렸다. 손노인은 그 잡견이 죽는 것을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초훈련은 2개월 만에 끝났고 다음부터는 실습이 시작되었다.

 

손노인은 개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영도견인 청룡만 풀어놓고 다른 개들에게는 목줄을 걸어 김포수가 끌고 가도록 했다.

 

청룡은 사람들을 전혀 무시하고 제멋대로 이산 저산을 돌아다니더니 그날 하오 늦게 산 너머에서 요란스럽게 짖고 있었다.

 

“멧돼지를 찾아냈어. 사람들이 갈 때까지 붙들어 놓고 있을 거야. 내가 먼저 갈 테니까 김포수는 개들을 데리고 천천히 오게.”

 

김포수는 다섯 마리의 개들을 끌고 약 한 시간 후에 현장에 도착했다. 청룡이 30관(약 110 Kg) 정도의 중돼지 한 마리와 싸우고 있었고 손노인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청룡은 훌륭한 사냥개였다. 온순했고 어찌 보면 게으르게 보였던 개였지만 사냥터에 나서자 전혀 다른 개가 되었다. 눈빛이 달라졌고 온몸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거동이 민첩했다.

 

청룡은 무서운 살기를 풍기면서 멧돼지를 압도하고 있었으나 성급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멧돼지가 정면공격을 해 오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덤벼들어 멧돼지의 뒷다리를 물어뜯었다. 청룡은 계속 그 뒷다리만을 공격했기 때문에 상처가 점점 벌어져 멧돼지는 그 다리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손노인은 벌써 그 멧돼지를 죽일 수 있었으나 젊은 개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개들은 청룡이 멧돼지와 싸우는 광경을 보더니 미친 듯이 날뛰면서 짖고 있었다. 그들의 몸 속에서 잠자고 있던 살육의 본능, 사냥의 본능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러나 김포수는 그들의 목줄을 콱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손노인은 한참 후에 창을 들고 일어났다. 그는 창으로 멧돼지의 목덜미를 찔러 쓰러뜨렸다. 그리고 멧돼지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더니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젊은 개들은 좀 전에 본 참혹한 광경에 질렸던지 선뜻 내장을 먹지 않았으나 영도견인 청룡이 그걸 먹는 걸 보고 비로소 내장에 입을 댔다.

 

손노인은 첫날에는 젊은 개들에게 멧돼지 사냥의 구경만 시켰으나 다음 훈련 때는 멧돼지의 시체에 덤벼들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반쯤 죽여 놓은 멧돼지에게 덤벼들도록 했다. 청룡은 그런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젊은 개들을 독려하고 징계했다. 대장인 자기보다 앞서 가려는 건방진 놈이나 동료들보다 뒤떨어지는 비겁한 놈들은 사정없이 덤벼들어 물어뜯었다.

 

 

 

기초훈련에 2개월,

실제훈련에 2개월이 소요되었다.

 

이젠 개들도 늠름한 모습이 되고 있었다 .그날 밤 손노인은 오랜만에 술상을 차렸다.

 

“이젠 내가 해야 할 기초훈련도 끝났고 청룡이 맡았던 실제훈련도 끝났어. 그러나 훈련은 이제부터야. 저 개들 스스로가 이젠 경험을 쌓아올려야 하네. 그건 위험하지. 아주 위험해. 상대가 반죽음을 당한 큰 돼지도 아니고 힘없는 중돼지들도 아니기 때문이지. 그들은 이젠 바위처럼 억센 늙은 돼지들과 싸워야 되네.”

 

멧돼지는 맹수였으며 큰 놈은 무게가 100관(약 380 Kg)이나 나갔다. 개의 일곱 배 내지 여덟 배가 되는 무게였으며 그만치 힘도 강했다. 멧돼지는 발로 차기도 하고 입으로 물기도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송곳니였다.

저돌(猪突)이라는 말과 같이 멧돼지의 돌진은 번개처럼 빨랐다. 만약 개들이 거기에 부딪치면 즉사를 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사냥개는 그런 멧돼지의 공격을 피해야만 했고 그것을 피하면서도 멧돼지가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어야만 했다

.

“다른 일들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훈련을 시킬 수 있지만 멧돼지와 싸우는 재주만은 훈련을 시킬 수가 없어! 그 재주는 혈통으로 타고 나든가 아니면 개 스스로가 경험으로 배워야 하지!”

 

손노인은 그로부터 이틀 후에 거대한 늙은 멧돼지 발자국을 발견하고 젊은 개들을 풀어놓았다. 김포수가 데리고 온 바우가 청룡과 나란히 달려가고 있었다.

 

여섯 마리의 개들이 달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산이 떠나갈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개들이 멧돼지를 발견한 것이다. 포수들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개들은 북쪽에 있는 구릉 뒤쪽에서 짖고 있었는데 포수들이 그 구릉을 넘어섰을 때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손노인이 구입해 온 진도개였다. 아랫배가 찢겨 내장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죽은 놈은 내버려 두어! 빨리 가봐야 하네.”

 

아마도 70관(약 260 Kg)은 될 것 같은 커다란 멧돼지가 노기충천하여 개들과 싸우고 있었다. 개들 중의 한 마리는 겁을 먹은 듯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끄럽게 짖어대기만 했다. 그러나 네 마리의 개들은 멧돼지와 싸우고 있었다. 두목인 청룡이 멧돼지와 정면대결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좌우에서 멧돼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싸워라 싸워”

 

손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청룡은 그의 적을 잘 알고 있었다. 7년 동안에 수십마리의 멧돼지와 싸웠던 그는 멧돼지의 단점도 잘 알고 있었다.

 

멧돼지는 앞으로 돌진할 때는 무서운 속도와 힘을 갖고 있었으나 몸이 유연하지 못했다. 멧돼지가 돌진할 때는 갑자기 정지를 할 수 없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없었다.

 

청룡은 그걸 잘 알고 그것을 이용했다. 청룡은 앞길을 막아서 돌진을 유도한 다음 돌진해 오면 멧돼지의 콧등 앞에서 번개처럼 옆으로 피해 버렸다. 멧돼지는 허공을 달려온 여세로 계속 앞으로 나갔고 청룡은 그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청룡은 언제나 그렇게 싸웠고 멧돼지는 그런 헛수고를 되풀이하다가 힘이 빠져 동작이 뜨게 되면서 더 이상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청룡은 그때도 그런 작전으로 멧돼지를 지치게 만들어놓았으나 현장에 도착했던 손노인과 김포수는 멧돼지의 숨통을 거둘 마지막 조치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의 사냥은 멧돼지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젊은 개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젊은 개들은 멧돼지가 피를 흘리면서 지쳐 있는 것을 보고 사나워졌다.

 

“덤벼! 덤벼!...”

 

손노인이 미친 듯이 양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젊은 개들을 독려했다. 개들은 멧돼지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으나 멧돼지는 마지막 힘으로 개들을 뿌리쳤다. 그리고 앞을 막고 있는 바우에게 돌진했다. 바우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맞부딪쳤다가 멧돼지의 송곳니에 받혔다. 바우는 낑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다섯 자쯤이나 공중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아차 당했군!”

 

바우는 어깨에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를 입고 쓰러져 버렸다.

 

“그놈은 죽을 거야. 살아도 불구의 개가 될 것이고!”

 

손노인이 냉혹하게 소리쳤으나 김포수는 얼핏 갖고 있던 술을 상처에 퍼붓고 바우를 안고 일어났다. 그때쯤에는 청룡이 멧돼지를 쓰러뜨려 그 목줄을 끊어버리고 있었으나 김포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 길로 바우를 안고 마을로 돌아왔다.

 

김포수는 포수마을 사람들이 열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할 때 쓰는 방법으로 바우를 치료했다. 벌겋게 달군 쇠붙이로 상처를 지져 소독과 지혈을 시킨 다음 상처에 붕대를 감고 찬 물로 몸의 열을 식혀 주는 방법이었다.

다음날 아침 바우는 눈을 떴다.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으나 젊은 짐승의 질긴 생명력으로 큰 상처를 이겨냈다. 바우는 약 보름 후에는 완전히 치료되어 다시 멧돼지 사냥에 참가했다.

 

멧돼지에게 한 번 혼이 난 개는 그 다음부터는 겁을 먹고 멧돼지에게 덤벼들지 않는 법이었으나 바우는 그렇지 않았다. 바우는 용감하게 멧돼지에게 덤벼들었으나 전번의 경험을 살려 멧돼지와 정면충돌을 하지 않았다. 멧돼지의 장점을 알고 멧돼지를 경계할 줄 알았던 것이다. 손노인이 그걸 보고 말했다.

 

“저 개는 쓸만한데”

 

그는 개들을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바우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그는 사낭개의 혈통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으나 바우가 갖고 있는 풍산개의 혈통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우와 같은 혈통인 화순이도 멧돼지와 싸우는 바우를 측면에서 잘 도와주고 있었다. 손노인은 화순에 대해서도 합격점을 주었다.

 

“역시 풍산개구만…”

 

 

 

손노인이 데리고 온 개들은

두 마리는 이미 훈련 도중에 죽었고

한 마리는 너무 겁이 많은 개였기에 시장에 데리고 가서 팔아버렸다.

 

결국 그 네 마리의 개중에서 검둥이라는 개만 사냥개로서 쓸만하다는 판정을 내렸는데, 그 개는 바로 개장국이 될 직전에 구출된 잡견이었다.

 

손노인의 덕택으로 그 잡견은 무사히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고, 손노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훌륭한 개로 더욱 더 각광을 받았다. 검둥이는 그 이후 사냥개로서 톡톡히 한몫을 하여 손노인에게 보은을 한 셈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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