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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개들 자료

북한에서 원종 풍산개와 잡종 풍산개의 구분

원문출처: 통일신문

http://www.unityinfo.co.kr/sub_read.html?uid=24739

2018/02/01 [14:52]

기사작성: 김형수 객원기자

 

 

 

 [광덕 풍산개 종견장(4)- 고난의 행군시기]

 

인공수정실에 동결 보존하던 우량종 정자들

녹아서 죽고사료먹지 못해 영양실조 걸려

 

 

북한에서 풍산개는 원종과 잡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종은 풍산개의 고유한 우량종들을 야생화 시켜 보존해 온 품종이다. 잡종은 북한에서 군견으로 키우던 세퍼트와 다른 유명한 사냥개들을 풍산개와 교배시켜 얻은 품종들이었다.

 

 

1998년 방영북한방송 [풍산개]

1999년 북에서 보내준 4마리와 2000년 김대중대통령 평양방문 때 보내준 2마리가 커서,

그 여섯마리가 교배하여 낳은 자견들 중 70%나 장애 기형견들이 나온 이유는

풍산개의 관상용 백구화 과정에서 위 에스타르다 종 같은 외래종들과 교배를 한 때문이었다.

 

이 개들의 후손들이 1999년 남북 야생동물교류사업 때 풍산개 강아지들 4마리가 내려왔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 평양 방문 당시 두 마리의 강아지들이 내려왔던 것인데,

그래서 그 6마리의 강아지들이 낳은 자견들이 70%나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 개들이 바로 여기서 김형수 객원기자가 밝히고 있는 잡종이었던 것이다.

 

 

 

1997년 방영북한방송 [동물들의 싸움] 중에서 [사냥개와 멧돼지]

여기에 나오는 개들이 바로 김형수 객원기자가 밝히고 있는

"원종풍산개의 고유한 우량종들을 야생화 시켜 보존해 온 품종"원종인 것이다.

 

 

 

 

원종과 잡종 엄격히 격리시켜 키워

 

양강도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에는 인공부화실이 있는데 여기에서 풍산개의 원종과 잡종을 만들어 냈다. 원종은 풍산개 목장의 사무실에서 내중저수지 쪽으로 향하는 낡은 건물이었다. 잡종견은 그와 반대편인 내중리 소학교(초등학교) 쪽에 위치, 1980년대에 지은 3동의 건물이다.

 

 

광덕리풍산개종견장은

원종과 잡종을 엄격히 격리시켜 키웠다.

 

먹이는 하루에 두 번 아미산 총국이 직접 공급하는 사료를 주었는데 주로 새벽시간과 야밤에 주곤 하였다. 사료는 물고기 뼈와 가축의 내장으로 만들어 소시지와 비슷했다. 한 주일에 한 번씩은 살아있는 닭과 토끼를 먹이로 주었는데 이는 풍산개와 풍산개 잡종견들의 야생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품을 들여 보존해 온 풍산개종견장은 1990년 초 동유럽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동유럽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주의 시장이 와해되면서 풍산개는 물론 평양과 각 도 동물원들에서 육식동물들에게 공급하던 사료가 바닥났다. 풍산개종견장도 기존보다 질이 낮은 사료가 들어왔고 살아있는 닭과 토끼는 공급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풍산개는 우량종 육성보다 품종보존에 더 치우치게 되었다. 하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는 시작에 불과했다.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은 광덕풍산개종견장을 한순간에 풍비박산 냈다.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경제가 1990년대 중반 김일성이 급사되면서 악화되었다고 하는데 실은 1980년대에부터 북한의 경제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해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린 1989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했다. 동유럽붕괴와 체제경쟁을 위한 재정남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과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 선전에 북한의 재정이 모조리 탕진됐다. 이런 가운데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가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89년 중국 밀수꾼들 풍산개 원종 물색

 

고난의 행군은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 특수기관들과 호위사령부 소속의 아미산총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속에서도 풍산개종견장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애초 양강도 주민들은 풍산개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북한의 다른 지역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양강도의 주민들도 식용견만 키웠던 탓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고장에 풍산개종견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양강도 주민들이 풍산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중국정부는 1983년부터 심전특구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하던 생산책임제’, 이른바 개혁개방을 전국에 일반화했다. 이때부터 중국에 가족, 친척을 둔 사람들이 서로가 오가며 만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 북한에서 쇠절구와 국수분틀이 밀수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고 대신 중국산 담배와 신발이 북한에 들어왔다.

 

중국인들이 밀수 통로를 이용해 살아있는 짐승을 처음으로 요구한 것은 당시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해리서(뉴트리아)였다. 뉴트리아 새끼 한 마리면 중국인들은 노루의 태를 가지고 만든 보약인 녹태고2통씩 주었다. 12개의 환으로 포장된 녹태고한통은 중국인민폐로 22위안, 당시 중국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과 맞먹었다. 그런데 이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값을 주겠다는 동물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양강도 김형권군 광덕리에서 키우던 풍산개원종이었다.

 

1989년 중국의 밀수꾼들은 풍산개 원종을 대대적으로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먼저 제시한 가격이 중국인민폐 8백 위안이었다. 당시 양강도 혜산시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 길림성 장백현 경찰들의 평균 월급이 3백 위안이었다.

 

그때 밀수꾼들이 수소문으로 알아 낸 것이 풍산개의 종견장이 김형권군 광덕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광덕풍산개종견장은 아미산총국 산하로 김정일의 재산에 속해있었다. 경비도 삼엄해 누구도 접근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만약 풍산개에 손을 대면 이는 김정일의 재산을 훔친 것으로 돼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정치범수용소 행을 면치 못하게 돼 있었다. 이렇게 삼엄한 광덕풍산개종견장도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죽던 고난의 행군을 비켜가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시작우량종 관리 유지 못해

 

고난의 행군직전이었던 1993년 여름 이곳 풍산개종견장에서는 원종과 잡종을 비롯해 약 3백여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정전에 대비해 인공수정실과 새끼 보육실에 전기를 공급할 디젤발전기까지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풍산개를 지키던 8호안전부 경비대의 식량공급이 중단됐다. 아미산총국은 풍산개의 먹이보장을 위해 8호 작업반에 소속돼 있던 사냥꾼들을 동원해 산토끼와 산비둘기를 잡아 사료를 보충하도록 했다.

 

여기다 계속되는 정전으로 디젤발전기를 돌릴 수가 없었다. 양강도 소재지인 혜산시에서 풍산군까지 360(90km)인데 그곳까지 실어 나를 기름도 없었다. 고장이나 보수를 위해 불가피하게 발전기를 멈춰야 할 시간이 많았다.

 

결국 인공수정실에서 동결 보존하던 우량종 풍산개의 정자들이 모두 녹아 죽었고, 사료를 공급받지 못한 풍산개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광경까지 벌어졌다. 배급을 못 받는 경비대원들은 출근을 못했다.

 

오히려 돈을 받고 팔기 위해 경비대원들이 몰래 우량종 풍산개의 새끼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풍산개종견장의 간부들과 수의사들은 광견병이 돌아 땅에 매장한 것으로 기록하고 풍산개들 중에서 우량종들을 몰래 빼내 밀수꾼들에게 넘겼다.

 

 

1993년 11월 6일 최초로 남한에 들어온 풍산개들 

 고난의 행군이 1994년 가을부터 일어났다고 하니까

그 1년 전에 남한에 들어온 이 개들은 그 이전에 들어온 강아지들로

김형수 객원기자의 판단에 의하면 이 개들이 진짜 원종의 풍산개들인 것이다.

북한 당국에 허락없이 데려온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 데려왔으니까 남한에서라도 지금까지 좋은 풍산개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이 개들이 바로 만만상사의 개들로

[울산코리아풍산개 농장] [철원 고려풍산개] [신동탄풍산개농장]의 개들이다.

 

 

1998년에 당시에 종견장에 남은 풍산개는 모두 합쳐 24마리였다고 한다. 그중에 순혈종은 3마리만 남고 나머지 21마리는 근친교배나 다른 사냥개들과 교배시킨 저질형 잡종들이다. 남아있는 순혈종 세 마리를 번식시켜도 근친교배밖에 되지 않아 우량종을 얻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인공수정실에 동결 보존하던 정자들도 모두 훼손돼 풍산개의 우량종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광덕 풍산개 종견장(5,)-김정일의 풍산개선물]

 

원문출처: 통일신문

http://www.unityinfo.co.kr/sub_read.html?uid=24554&section=sc6

기사입력 2018/02/08 [16:04]

기사작성: 김형수 객원기자

 

 

원종은 경제가 불안해지던 1980년 말부터

국경 통해 중국으로 몰래 팔려나가기 시작

 

 

1990년대 중반부터 겪었던 고난의 행군으로 하여 북한은 풍산개의 우량종들을 거의 잃고 말았다. 북한주민들은 김정일이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풍산개를 선물로 준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다.

 

 

중국서 더 인기언론서 존재가치 소개

 

1980년대 북한의 노동신문은 미국 사냥개 품종과 싸워 이긴 풍산개 수라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북한은 이 개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1980년대 북한 당국이 만든 기록영화(다큐) ‘동물들의 싸움에서는 풍산개들이 무리를 지어 2kg이나 되는 큰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내기도 하였다.

 

그때까지 북한의 주민들은 풍산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러한 풍산개는 오히려 북한보다 중국에서 더 널리 알려졌다.

 

중국의 언론들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출판하는 연변일보연변청년등 신문과 잡지들은 1980년대부터 풍산개에 대해 널리 소개하며 그 존재의 가치를 소개했다.

 

고난의 행군시기는 북·중 사이에 밀수가 가장 왕성하던 시기였다. 당시 중국의 애견인들 사이에서 우량종 풍산개에 대한 수효가 많았다. 풍산개의 우량종 새끼 한 마리의 가격이 중국 인민폐로 1천 위안을 부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중국에 있는 가족, 친척들을 방문하는 북한의 여행자들과 중국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장사꾼들은 거액을 부르며 풍산개를 수소문했다. 이렇게 되자 여태껏 그 존재에 관심도 없던 북한주민들도 풍산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풍산개의 원종은 북한의 경제가 불안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국경을 통해 몰래 중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풍산개의 새끼는 8호 안전부에서 경비를 서는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이 아니면 얻을 방법이 없었다.

 

광덕풍산개종견장에서 키우던 풍산개의 종자가 어떻게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외부로 새어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내용이 없다. 분명한 것은 현지 종견장의 간부들과 경비병들이 서로가 협조해야만 종자를 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리하고, 충성심 높아 몸값 천정부지

 

밀수꾼들을 통해 중국에 반입된 풍산개들은 애견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영리함에 있어서 어떤 품종도 따라 올수 없었다.

 

한번 정한 목표는 절대 놓치지 않는데다 자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풍산개의 몸값은 천정부지였다.

 

풍산개가 한창 밀수되던 1990년대 중국의 사냥꾼들과 애견인들 사이에서는 풍산개 세 마리만 있으면 호랑이를 만나도 무섭지 않다는 이야기가 당당하게 흘러 나왔을 정도였다니 그 인기를 실감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중형견으로 몸집은 작지만 용감하고 민첩한 풍산개의 인기는 중국을 통해 대한민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풍산개를 반입하기 위한 노력도 활발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광덕풍산개종견장에는 300여 마리가 넘는 풍산개들이 있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직원들이 몰래 빼내 밀수꾼들에게 팔아넘기기까지 하면서 1998년에 풍산개는 잡종견까지 다 합쳐서 겨우 21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북한에서 밀수꾼들에 의해 중국으로 넘겨진 풍산개들의 실체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여러 언론들에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풍산개의 원종이 중국을 거쳐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 온 해가 1993년이다. 1993116일자 동아일보 29면에 북한명견 풍산개 한국에 온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당시 동아일보는 북한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견 풍산개가 암수를 다 합쳐 27마리가 들어온다고 보도 했다.

 

또 이 풍산개들은 생후 2~3개월밖에 안된 어린 종자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드나들며 곡물수입을 하던 애견가 김만수라는 분이 중국 천진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 천인호의 특등실에 태워 한국의 인천항으로 들여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동아일보일제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풍산군일대에서 널리 길러져 풍산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개들은 지금 민간에서 사육이 금지될 정도로 북한당국의 특별대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평양방문 때 선물

 

구입경로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쌍마관광 김만수 대표의 부탁으로 199210월 하순에 중국 조선족 이모씨가 풍산개 종견장에 가서 당시 300여 마리밖에 없었던 풍산개 중에서 이 개들을 구입하여 중국에 들여왔다고 구체적으로 실었다.

 

 

 

 

애견가 김만수씨 27마리 수입

 

북한이 자랑하는 세계적 명견 풍산개가 한국에 온다.

 

암수를 합쳐 생후 2~3개월밖에 안 된 27마리의 새끼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사람은 연변 지방을 자주 드나들며 곡물수입을 하고 있는 애견가 김만수씨(38.경북 포항,만만상사 대표)

 

이들은 5일 오전 중국 천진항에서 여객선 천인호 특등실에 태워져 6일 오후 인천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일제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함경남도 풍산군 일대에서 널리 길러져 풍산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개들은 지금에 와서는 민간에서 사육이 금지될 정도로 북한 당국의 특별대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풍산개는 일제통치 기간 중 대다수가 잡종화된다다 방한화와 방한모 등에 쓰일 털을 조달할 목적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개들마저도 집단 도살하는 바람에 원산지인 북한에서조차 사실상 멸종위기를 맞았던 것.

 

김씨의 부탁으로 지난 10월 하순 동료들과 함께 북한으로 이 종견장을 찾아가 개를 구입해 가져왔던 중국의 조선족 동포 이모씨에 따르면 현재 종견장에는 암수 3백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밖에도 현재 휴전선, 해안선지역 및 중국 접경 지역 등에 수백 마리의 풍산개가 군견으로 배치돼 있다는 말을 북한 사람들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전설의 개로 불릴만큼 북한에서도 희귀한 존재인 풍산개는 호랑이나 곰을 잡는 용맹스런 사냥개로 일부 문헌에도 적혀 있다면서 "그래서 요즘 북한주민들도 풍산개라고 하면 몰라도 범잡는 개라고 하면 다 안다"고 말했다.

 

일제 때인 지난 1938년 진도개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풍산개는 진도개와 세퍼드 사이의 크기로 뛰어난 청력과 영리함, 그리고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는 치명적인 일격으로 상대방을 거꾸러뜨리는 용맹성을 갖고 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실제 풍산개 원종을 들여오기 위해

중국의 한 조선족 동포가 위험을 감수하고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까지 직접 가서 종자용 새끼들을 빼냈다는 것이다.

 

 

무산은 김왕석 선생의 [수렵야화-동물들의 왕국]에 나왔던 지역으로 두만강을 끼고 있어 백두산 일대에서

야생동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인데, 개마고원과 연변의 사이에 있다.

그리고 연변은 지금도 80만명의 조선족이 거주하는 조선족 자치주이다. 연변의 실생활은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을 통해 들여 온 풍산개는 한국의 서울시 등촌동에서 검역을 받았다. 서울 등촌동의 동물검역소에서 위생검역과 순혈종 판정을 받은 풍산개는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만만종견장에서 합법적으로 사육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어 한국에 첫 풍산개종견장이 생겨났고 여기에서 마리수가 늘게 되었다.

 

이후 풍산개들은 경기도 용인시와 강원도 양양, 전라북도 익산시 등에 마련된 종견장들에서 더 크게 확산되어 한국의 천연기념물인 진돗개와 비슷하게 가격도 하락했다. 20006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다.

 

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풍산개 한 쌍을 선물로 주었다. 김정일로선 최선을 다한 선물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처음 들여온 품종이 아니어서 상징적 의미가 컸을 뿐 실제로 대중적인 인기는 끌지 못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 받아온 두 마리의 강아지들과

그 1년 전에 남북야생동물교류 사업으로 받아온 4마리의 개들이 성장하여 낳은 강아지들 모습

 

태어난 강아지들 중 70%나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기형적인 강아지들이 태어나고 만 것이다.

 

 

성장한 우리와 두리

눈꼽이 끼고 짜리몽땅한 개들이었다.

 

 

대구 달성공원에 보내진 개들이 낳은 강아지들

토종개 풍산개라는 이름으로는 더 이상의 교배를 못하게 하여 자연도태시켜야 할 수준이었다.

 

 

광주 우치동물원에 보내진 개들이 낳은 강아지들

이 개들 역시 토종개 풍산개라는 이름으로는

더 이상의 교배를 금지시켜 자연도태시켜야 할 수준이었다.

북한 당국에서 정식으로 보내준 6마리의 개들의 후손에게서 기형아들이 너무 많이 태어나서,

서울과천대공원에서 2003년 2월 24일 실태조사를 하였는데, 기형견들이 70%나 되었다.

그래서 그 중에서 괜찮은 놈들을 키워서 분양을 하였는데...

위에 강아지들은 그 중에서도 좋은 편에 속하는 강아지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기형 많은 강아지들을 확보한 몇 몇이서 풍산개 카페를 만들어

이 개들의 혈통들만 [원종] [순종] [순혈]이라고 하고

나머지 풍산개들은 개꾼(사기꾼) 개장사들이 사기치는 가짜 풍산개라고 하였고!

 

특히, 한울풍산개의 주명이 같은 경우,

전국에 풍산개들 중에서 이런 유전적 기형을 안고 있는 개들이 낳은 1%만 [순혈] [순종] 풍산개이고

나머지 99%는 가짜 풍산개들로 그런 개들을 키워 분양하는 사람들은 개꾼(사기꾼), 개장수로 몰아서

자기들만 토종개 발전을 위한냥... 풍산개판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필자가 그동안 1997년 광덕리에서 촬영된 풍산개들이 전통 풍산개들이고

그 이전에, 1993년 직후에 남한에 들어온 풍산개들이 정말로 좋은 풍산개들이라고 그렇게 가르쳐줬는데도...

 

바람돌이하고 주명이는

지금까지, 북한에서 진짜 [원종]이라고 하는 1993년에 들어온 풍산개들은 가짜라고 하고

자기들이 확보한 위 [잡종]의 기형견들을 [원종] [순혈] [순종]이라고 무식한 소리들을 하여

진짜 원종 풍산개들을 사육하는 농장들을 망하게 하고... 자기들이 풍산개판을 주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통일신문 김형수 객원기자의 "잡종은 북한에서 군견으로 키우던 세퍼트와 다른 유명한 사냥개들을 풍산개와 교배시켜 얻은 품종들이었다."라고 하는 개들이 바로 1999년 남북교류사업 때 넘어온 4마리와 김대중 대통령 당시 2마리가 넘어온 평양중앙동물원 출신의 풍산개들로.... 풍산개카페들에서 그토록 [순혈] [원종]을 주장하고 있는 잡종의 풍산개들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풍산개 동호인 여러분께서도 확인하셨을 것이다.  

 

1999년 보내준 4리와 김대중 대통령 평양방문 시 보내준 2마리

그 여섯 마리가 교배하여 낳은 후손의 개들은

지금도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개들이 많이 보이는데,

    - 북한 기준의 원종과 달리, 짜리몽땅 비대칭 털복숭이들이 많고,

    - 강아지들이 태어났을 때, 화상 입었거나 피부가 벗겨진 것처럼 콧등의 색소가 허물어져 있고,

    - 성장과정에서 아프지 않은데도 평소에 눈물이 많이 흐르고

    - 강아지들이 45일이 지나서도 눈동자가 투명 선명하지 못하고 흐리멍텅해 보이고

    - 체형의 밸런스가 부족해보이고

    - 걸음걸이가 사뿐사뿐 하지 못하는 등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풍산개카페에서 자랑하고 있는 개들을 보면, 딱 봤을 때 어딘가 부족하고 흐리멍청 해보이는 개들이 많은데

이상과 같은 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서 두세 가지 이상 적용되면

그 개들은 지금도 '자기 부모견들이 70%나 기형을 안고 있었던' 선천적 유전적 기형(결함)을 안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개들은 토종개 발전을 위하여 가능하면 더 이상의 새끼를 못 낳게 하여 자연도태시켜야할 개들인 것이다.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의 이름은 자주단결이었지만 남쪽에 와서 수컷은 우리’, 암컷은 두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두리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보내졌고 그 다음해에 새끼를 낳았다.

 

북한의 호위사령부 아미산총국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우량종을 잃은 풍산개는 이렇게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끝]

 

 

 

 

 

 

 

 

 

지금부터는 필자인 용하 윤승환의 글입니다.

 

 

[풍산개의 원종과 잡종]

 

풍산개를 사랑하는 동호인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께서는 통일신문 김형수 객원기자님의 5회에 걸쳐 연재된 풍산개 특집 기사 덕분에, 여러분들께서 그동안 그토록 원하셨던 [원종]과 [잡종]의 개념을 정립하실 수 있게 됐다고 믿습니다.

 

김형수 객원기자님에 의하면 "북한에서 풍산개는 원종잡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종은 풍산개의 고유한 우량종들을 야생화 시켜 보존해 온 품종이다. 잡종은 북한에서 군견으로 키우던 세퍼트와 다른 유명한 사냥개들을 풍산개와 교배시켜 얻은 품종들이었다."고 하니까, 북한에서도 원종 풍산개는 개마고원 안에 있는 풍산 광덕리 종견장에 있었고, 994년 가을 [고난의 행군] 이전에 개들이 진짜 좋은 개들이었다고 하니까, 남한에 들어온 풍산개 중에서 [원종 풍산개]는 1993년에 광덕리 종견장에서 연변을 통하여 들어온 개들이 되는 것입니다. 김형수 기자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시고요.

 

 

 

그렇다면 남한에서 원종 풍산개는

바로 아래와 같은 풍산개들이 원종 풍산개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래의 개들이 바로 1993년 11월 포항에 있는 만만상사가

북한의 풍산 광덕리에서 연변을 통하여 남한으로 데려온 개들의 후손들입니다.


 

남양주 풍산개 차돌이와 진주

차돌이 부견 바다는 만만상사 출신 개들 중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차돌이나 진주 같은 풍산개들은 평양동물원 출신 개들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될만큼 훌륭합니다.

김형수 객원기자님 말씀대로 이런 개들이 진짜 원종의 풍산개들인 것입니다.

 

 

 

신동탄 풍산개농장 종견들

포항으로 들어온 만만상사의 개들은 [철원 코리아풍산개농장]으로 갔다가

다시 [울산코리아풍산개농장]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가 [신동탄풍산개농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울주군 진하에 있는 암컷 풍산개 산이

암컷 산이는 7~800 되는 전원주택에서 목걸이 없이 살면서

경비견과 경호견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가치로 따지면 필자의 게산으로 수 천만원이 넘어가는 개입니다.

 

 

산이 동생 청이

청이는 평창 전원주택으로 가서 산이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청이 또한 그 역할을 가치로 따지면... 필자의 계산으로 수천만원이 넘어가는 개입니다.

 

 

풍산개 태양이

울산 포항 부산 쪽에 좋은 풍산개들이 많이 있는데

만만상사의 개들이 [울산코리아풍산개농장]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울산 코리아농장 출신의 풍산개들

울산 코리아풍산개농장에는 백구 외에 황구 재구 호구 같은 강아지들도 많이 태어났는데

1997년 북한방송 [사냥개와 멧돼지] 동영상에는 유색견들도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풍산개 호반 깜돌이

남양주 차돌이 자견입니다. 아버지가 백구인데 호반이 나온 것입니다.

'1993년 만만상사에서 데려온 강아지들은 모두 백구였는데, 유색 강아지들이 나왔다고 하면 가까다'라고 주장하면 무식한 소리입니다. 그런데...풍산개 카페 중에 지금도 그런 인간들이 있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입니다..

 

 

전라북도 순창에 살고 있는 장비

그동안 필자가 봐왔던 풍산개 중에서 최고입니다.

이 정도 개이면 그 가치를 정할 수 없을 정도인데... 이런 개는,

개를 알아볼 줄 알고 토종개 발전에 애정을 가진 기업가를 만나면 억 단위도 넘어갈 수 있는 개입니다.

 

 

안성풍산개농장 종견 산이

이 개들도 1990년대 초에 남한으로 들어온 개들이라고 합니다.

마릿 수가 많이 들어왔는데, 평양중앙동물원에서 온 것이 아니라 광덕리에서 왔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들도 이제 김형수 기자님 덕분에

이런 개들이 [원종 풍산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셨을 텐데...

이런 개들은 풍산개카페에서 말하는 그런 기형을 안고 있는 [잡종]의 개들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개들 말고도 인터넷에 찾아보시면

1994년 가을 이전에 들어온 개들의 후손들 중에서

좋은 풍산개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동안 그 진짜 [원종 풍산개]들을 풍산개라고만 하여도

풍산개 카페지기들로부터 개꾼[사기꾼]이라고 공격받을까봐

대응을 아에 안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제는 북한 기준에

풍산개 카페에서 확보하고 있는 몇 마리의 개들은 [잡종]이고

1994년 가을 이전에 들어온 개들이 진짜로 좋은 [원종 풍산개]라는 사실을

충분히 아시게 됐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통일신문 김형수 객원 기자님께서

풍산개 관련하여 5회나 특집기사를 실어주신 덕분에

풍산개 동호인들의 [잡종] [원종] 판단에 큰 도움이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