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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특징

얀코프스키의 사냥개들은 풍산개들?

 

[일제시대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풍산개]

 

 

우리나라의 풍산개와 진돗개는, 일제시대인 1937년 경성제국대학 모리 교수의 조사 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한반도 남쪽의 진돗개는 1938년 천연기념물 제58호로 지정되고, 한반도 북쪽의 풍산개는 1942.6.15.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930년대의 풍산개 사진과 진돗개 사진이 소장되어 있는데, 아래 풍산개 사진들과 진돗개 사진들은 모리 교수의 한반도 개 조사 당시 찍은 사진들로 보이며, 모리 교수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찍었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사진들이 그 당시 풍산개와 진돗개의 표준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30년대에 촬영된 풍산개 사진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사료 속의 풍산개, 2007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건판전"에서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30년대에 찍은 진돗개 사진들

 

 위 사진들을 보면, 풍산개가 194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 표준이 백구가 아닌 검둥이였고, 진돗개도 백구(또는 황구)뿐만 아니라 네눈박이가 주종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러시아 국적을 가진 폴란드 귀족 출신인

얀코프스키 일가가 러시아의 압박을 피하여

조선 땅 지금의 함경북도 청진에 들어와 사업을 하였는데-

 

겨울이면 사냥을 사업으로 하여 본사업보다 월등한 수익을 올리면서 살았다고 하는데, 얀코프스키 일가는 그 당시 조선인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난 사냥총을 가지고 백두산 남쪽은 물론이고 백두산 북서쪽인 만주까지 진출하여 어마어마한 사냥을 하였는데, 그 사냥 수확물들이 지금도 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래 [얀코프스키의 사냥개들]이란 글은

000라고 유명해기지를 싫어하는 블로거가 쓴 글인데

여기에 얀코프스키의 사진들이 많이 있어서... 그 글 내용과 사진들을 복사하여 왔습니다.

 

 

 

 

 

 

 

 

 

[얀코프스키의 사냥개들]

글쓴이 : 알려지기를 싫어하는 사람

 

 

얀코프스키 일가는 아버지(미하일 얀코프스키)-아들(유리 게오르그 얀코프스키)-손자(발레리 얀코프스키) 3대가 이름난 사냥꾼이며 1922년 한국으로 망명해서 1945년 북한에 입성한 소련군에게 압송될 때까지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았으며 특히 미하일 얀코프스키는 한국인들에게서 "네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사냥의 명수였다고 합니다.

 

분명 이상오씨얀코프스키 일가가 "많은" 풍산개를 이용해 호랑이나 곰 사냥을 했다고 증언했으니 그들이 남긴 자료에서 풍산개의 옛 모습에 대한 힌트를 찾는것이 크게 잘못된 방향은 아닐 것 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얀코프스키 일가의 사진 자료를 일부 공개합니다. 


쓸데없는 시비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이 사진속의 개들이 진짜 풍산개이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풍산개라고 팔리고 있는 개들은 가짜다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어쩌면 얀코프스키 일가가 원래 연해주에서 사냥하던 시절부터 키우던 사냥개를 데리고 한국으로 망명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풍산개를 사냥에 사용했다는 이상오씨 증언의 진위를 떠나서 정말로 풍산개가 개마고원 일대에서 맹수 사냥개로 그 명성을 떨쳤다면 얀코프스키가 자신들의 사냥에 풍산개를 사용하지 않았을리가 없습니다.

 

함경도에 살며 20여년을 사냥했던 그들이 단 하나의 풍산개도 키우지 않았다면 그건 풍산개의 명성이 헛것이며 외국인 사냥꾼의 냉정한 시각으로는 사냥개로서 실격이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 속의 개들이 모두 풍산개는 아닐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중에 분명 과거 개마고원 일대에서 맹수를 사냥했다는 우리의 풍산개가 숨어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아래 사진들은

"얀코프스키 일가가 한국에서 망명 생활 하던 시절 사진 속의 개들 (1922 1945)"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들은 개가 찍혀있지는 않지만

얀코프스키 일가가 한국에서 남긴 각종 사냥 관련 사진 자료입니다.

 

1920년대에서 1940년대 한반도 북방에 살았던

지금은 사라져버린 여러 야생동물들의 모습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맺음]

 

그럼 이제 위의 사진 자료들을 가지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30년대 풍산개들 사진과 얀코프스키 일가의 3대에 걸친 사냥개들을 비교해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고구려 시대의 벽화에 나오는

개들하고도 비교해보지요.

 

아래 무용총 벽화에는 검둥이도 보이고 누렁이 같은 놈도 보입니다.

이 무용총은 그 당시의 풍속을 아주 사실대로 그려놓은 사실화에 가까운데, 무용총에 이 그름을 그릴 당시에도 고구려 사회에는 검둥이뿐만 아니라 누렁이 같은 개들이 주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안악3호분 벽화에도

 

사냥 후에 집에 돌아온 사냥개 두 마리가 고기를 끓이면서 잔치를 준비하는 부엌 앞에서 껄떡거리면서 던져주는 고기를 얻어먹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이 그림도 그 당시에 풍속을 그린 사실화에 가까운데, 이 사냥개들은 검둥이가 아닙니다. 황구나 재구 정도 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무용총과 안악고분의 위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지금의 풍산과 멀리 떨어진 고구려 국내성 무용총에서도 검둥이와 누렁이들이 보이고, 안악 고분에서도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사냥개 두 마리가 보이고, 북한에서도 풍산개는 고구려 시대 이전부터 전래되어 오는 개라고 하고, 고구려 당시에도 사냥개들은 검둥이 뿐만 아니라 재구나 누렁이 같은 개들도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니까,

 

얀코프스키 일가가 1922년부터 45년까지 터를 잡고 22년 동안 3대가 같이 살았던 함경북도 청진에도 검둥이 뿐만 아니라 재구나 누렁이 같은 풍산개들도 같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얀코프스키는 사냥할 때 선도견으로는 독일포인터를 앞세웠다고 하는데, 얀코프스키의 검둥이들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풍산개하고 닮은 것 같기도 하네요.

 

 

 

 사진 클릭하면 훨씬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