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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특징

호랑이 잡는 풍산개

원문 저자 : 한성열(사단법인 한국토종연구회 이사, 진도개 삽살이 연구가)

고분 및 위성지도 설명 : 풍산개 복실이 주인장

 

촬영날짜 : 2004. 3. 19

(이 글의 원저자 한성열님께서는 이 글을 2004년도에 작성하신 것 같습니다.)

 

 

 

 

 

 

[한국의 토종백과①] 호랑이 잡는 풍산개

 

 

풍산개라이카와 더불어 유일하게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맹수 사냥개이다. 또한 이 개의 조상은 북만주 흑룡강 주변으로부터 동서남북으로 진출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스피츠 견종의 분포를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풍산개, 진돗개는 만주 한반도에 토착화되었던 북방개의 후손일 것으로 추정된다.

 

 

 

 

풍산개의 조상은 역사적으로 선사 이래 만주 한반도에 존재하였던 견종으로 북한의 여러 패총과 고구려 고분벽화, 동래패총, 김해패총 등에서 개의 뼈가 발굴되면서 확인된 것이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는 호랑이를 쫓는 사냥개가 나오는데, 저 개들이 우리가 지금 말하는 풍산개였을 것이다. 풍산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개가 아니라 예로부터 전해져 온 개이니까. 이 벽화로 고구려 시대부터 호랑이를 잡는 사냥개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무용총은 압록강변 광개토대왕비 북서쪽으로 1Km 정도 지점에 있는데, 3백년대 말에서 4백년대 초에 만들어진 고분이다.

 

 

 

무용총에는 집안 마당에도 개가 한 마리 보인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개들은 사냥을 나가서는 사냥개가 되고, 집안에서는 집을 지키는 번견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 안악고분에도 부엌과 고기 창고 앞에 있는 개 두 마리가 나온다. 이 상황은 사냥하여 온 노루와 사슴과 멧돼지의 몸통은 훈제를 하고 그 내장은 부엌에서 바로 삶고 있는 모습 같다. 거기에 두 마리의 개들이, 한 마리는 부엌에서 여자들이 던져주는 내장 덩어리를 받아먹고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한 마리는 고기창고에서 훈제되고 있는 고기들에 침을 흘리고 있는 모습 같다. 저 개들도 집안에서는 집을 지키는 번견이었지만 사냥터에 가서는 틀림없이 사냥개가 되었을 것이다. 고구려는 수렵사회였으니까. 이 안악고분은 357년 경에 만들어진 무덤이라고 하는데, 위에 무용총과 제작 연도가 비슷하다.

 

 

 풍산개는 예로부터 전해내려온 토종개로 범잡는 개로 유명했고, 무용총 수렵도에서 명적을 쏘는 무사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을 하고 있는 사냥개 그림으로 보아 고구려 당시부터 이미 호랑이 잡는 개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안악고분에도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부엌과 고기창고 앞에서 껄떡거리는 두 마리의 개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볼 때, 고구려 시대에는 이미 풍산개가 고구려 각처에 보급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리와 가장 많이 닮은 크고 작은 스피츠 견종은 외모적으로는 다양성이 있으나 정방형의 체구와 똑바로 선 귀, 역삼각형의 머리 형태, 등위로 힘 있게 말린 꼬리 등 역동적인 모습을 가지며 수렵을 돕고 인간을 보호하는 반려자이며 영원한 동반자이다. 존재가치, 즉 빛나는 한국토종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많은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풍산개는 함경남도 즉 개마고원 일대 토착민들과 오랫동안 갈아 살아오며 그들을 보호하고 한편으로는 타고난 사냥능력을 발휘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주인을 위해 봉사해온 충직한 개 로서, 현재 북한 당국이 보호 육성하여 유능한 군견으로 실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풍산개의 명맥을 다소나마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로, 갈채를 보낸다.

 

 

 

이 지도는 광개토왕 당시 고구려 영토와 비슷하다.

 

지금도 남북한 휴전선에는 군견들이 많이 있는데, 남한 쪽에는 세파트가 있는 반면 북한 쪽에는 세파트도 있고 풍산개가 군견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하니까, 고구려에서도 영토방위에 개들을 군견으로 보냈을 것이다. 지금이야 전방에 가도 전깃불이 들어와 가로등을 밝히고 있는데, 그 옛날에 캄캄한 밤에 국경을 지키는 경계근무를 설 때 개들이 얼마나 필요했겠는가? 개마고원에서 키워진 군견들이 고구려 국경선 각 지역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개마고원은 [개마]와 [고원]의 합성어이다.  개마는 말에게 갑옷을 입힌다는 뜻으로 말을 군마로 양성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고구려는 3대왕인 대무신왕 때 개마국을 정복하여 그 왕을 죽이고 백성들을 위로하면서 약탈은 하지 않고 군현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개마고원에 개마국이 있었으니까 개마고원은 그 이전부터 군마를 양성하는 군사 병참도시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산속에 숨어 살던 고구려는 만주벌판 북쪽에 있는 부여까지 쫓아가 부여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이고.

 

고서에 보면, [개마국]이 만주벌판 서쪽과 동쪽에 두 군데 있었는데, 동명성와의 손자이자 유리왕의 아들인 고구려 3대 대무신왕이 정복한 [개마국]은 백두산 남쪽 지금의 개마고원 일대에 있던 개마국이다. 그리고 이때 개마국 할 때  은 현대에서 말하는 것처럼 거대한 나라가 아니라 산맥이나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지역을 뜻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고구려 시조 고주몽이 만주벌판 북쪽 부여에서 도망쳐 남으로 내려와 백두산 서쪽 산골짜기인 졸본(지금의 환인) 지역으로 숨어들어 오녀산성을 쌓고, 동명성왕의 아들 유리왕이 졸본에서 압록강가로 수도를 옮겨 국내성을 쌓았는데, 유리왕의 아들 대무신왕이 [개마국]을 정복하고 그 이후에 부여는 고구려에 통합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고구려 시대 이전에 이미 백두산 동남쪽에는 군마를 양성하는 병참 도시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고조선에는 대흥안령 쪽에도 군마를 양성하는 [서개마국]이 있었고 동쪽에는 백두산 남쪽에 군마를 양성하는 [동개마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조선은 기마민족들이 세운 나라이다. 그들은 유목민이자 수렵민족이었는데, 그렇다면 개마국이 생겨날 당시에 말과 함께 그들이 키우던 사냥개들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두산 남쪽의 개마고원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실상 완전히 고립되어, 거기에 살던 개들은 그 환경에 토착화되었을 것인데, 고구려 대무신왕 때 이미 개마국을 정복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으니까, 풍산개는 그 역사가 최소한 2천 년은 넘을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러면서 풍산개는 그 2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구려-발해-여진-금-원-청-조선을 거치면서, 사냥개와 번견으로 특화됐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에는 집을 지키고 겨울에는 사냥에 동원되었은 것인데, 풍산개는 사냥개로서도 발전되었지만,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산속 마을에서 집을 지키는 번견으로서의 역할 또한 대단히 중요했을 것이란 것도 알아야 한다.

 

 

 

풍산개는 정해진 견종이라기보다는 개마고원 일대에서 고립되어 육성된 개로써 1950년경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북한 당국이 보호 육성하고 있는 일부의 개를 제외하고는 자연 번식되어 잡종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증거로 현재 북한 인민군에 실전 배치된 풍산개의 40~50%가 귀가 뉘인 개로 관측되며, 이러한 사실은 고유 북방견(스피츠) 시각에서 보면 풍산개의 존재는 상당한 혼란을 가져온다.

 

현재 풍산개를 연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피츠 견종의 견해에 집착하여, 우리나라에 길러지는 일부의 개를 제외하고는 귀가 뉘인 개가 대부분인데도 그 이유에 대하여는 자세한 연구가 미흡한 채, 시비만 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천연기념물 편람에 실린 풍산개 사진은 귀가 뉘인 상태로 실려 있고, 진돗개 연구가 임병철은 ‘풍산개는 힘이 세고 귀가 내려가 있으며 사냥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유력한 사냥꾼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고 하였으며, 풍산개 발전에 사재를 털어 힘쓰고 연구하는 박승영, 송재경씨도 “풍산개의 본질은 귀가 서고 뉘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품과 습성이다”라고 이야기 하며, 북한의 기록을 보면 풍산지역에 토종개와 승냥이의 혼혈로부터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1993년경 도입된 남한의 풍산개중 95%이상은 귀가 뉘인 개로 마스티프의 혼혈여부를 알아볼 필요가 있고, 귀가 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대부분이 인위적인 방법과 일본개 등의 혼혈로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본인(한성열: 사단법인 한국토종연구회 이사)의 견해로는 풍산개의 습성으로 봐서 라이카의 후손으로, 정확한 경로는 모르겠으나, 만주를 거쳐 개마고원 일대로 유입되어 상당부분 잡종화가 진행되어 고립된 견종으로 인식되며 고정된 견종으로 보기엔 의문이 따르고 풍산지역에 길러졌던 대부분의 개(사냥)를 통칭하여 풍산개라 부른 것으로 결론지어 진다.

 

이 시점에서 진정한 한국토종 풍산개의 유전적 고정을 위하여 가일층의 노력이 필요하며, 전설처럼 살아있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용맹과 기개가 있는 이 땅의 토종개로 발굴하여 세계에 당당한 견종으로 보호 육성될 수 있도록, 토종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아낌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하겠다.

 

 

 

 

 

※ 라이카: 몽고 계통의 종족이 맹수 사냥을 목적으로 키우고 있는 개로 존재만 확인될 뿐 그 존재 일체는 러시아 당국에서 철저히 보호하고 있음.

 

 

원문출처: http://www.genebank.go.kr/PN/book10_view.bo?index=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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