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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특징

풍산개 바로알기[1부]-고구려의 개들

 

 

 

 

 

 

[풍산개에 대한 오해와 편견]

 

풍산개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너무 많아 이 글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많는 분들이 '풍산개는 털이 길고 덩치가 작고 백구이다'고 단편적으로 알고들 계시는데, 제가 그동안 풍산개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공부를 해보니 그것은 잘못된 정보에 따른 오해와 편견입니다.

 

그동안 제가 알아본 바로는 '풍산개도 진돗개와 거의 똑같은 생김새의 우리나라의 토종개이고 풍산개가 진돗개보다 덩치가  더 클 뿐이다. 그리고 풍산개도 진돗개와 마찬가지로 백구가 주류였던 것이 아니라  황구 재구 검둥이 호구 같은 유색견들이 주류였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남한)에서 풍산개에 대하여 오해와 편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 북한에서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준 네마리2001년 김대중 대통령 평양 방문 시 북한에서 선물한 두 마리의 풍산개들이 낳은 후손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북한 정부에서 1999년과 2001년에 공식으로 보내준 6마리의 풍산개 백구들이 과천서울대공원에서 새끼를 낳았는데, 진돗개 정도의 털을 가진 강아지들도 3분의 1 정도 나왔지만 3분의 2 정도의 개들이 장모의 긴 털로 태어났고 성장을 해서도 '풍산개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던 마니아들의 기대와는 달리' 덩치가 너무 작았으니까요.  

 

그리고 전국의 동물원에서 공매로 풍산개를 분양받아 키우게 된 사람들의 가정에서 태어난 일명 '원종 풍산개'들이 낳은 강아지들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도  '풍산개는 털이 길고 덩치가 작고 백구이다'고 잘못 알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북한 당국과 남한 동물원들의 권위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 출신 풍산개들만 순수 혈통으로 인정하면서, 새로 개발 중에 있었던 풍산개들 중에서 품질이 아주 떨어지는 기이한 개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터넷카페를 만들어 '북한 정부에서 공식으로 인정하는 그 개들만 순수 혈통의 원종 풍산개로 인정해야 한다!' 하면서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려다 보니....... 풍산개의 실체를 알고 싶어하시는 많은 분들께 오히려 그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여러분들께서 그동안 풍산개에 대해 얼마나 잘못 알고 계셨는지

사진으로 보여드리면서 설명드릴 터이니...

여러분들 스스로 풍산개에 대한 안목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풍산개는 옛날부터 전래되어 온 토종개이다]

 

아래 사진들은 2015년 5월에 방송된 북한방송 56분짜리 [조선의 국견 풍산개]에서 캡처한 것들입니다.

 

 

처: http://v.youku.com/v_show/id_XOTU4NjAxNzA0.html?from=y1.7-2

 

위 북한방송에서는 한반도에서는 구석기 후기부터 늑대를 길들여 수렵과 경비에 활동했다고 하면서, 무용총 수렵도 속 사냥개를 증거로 풍산개가 지금의 털과 체형을 갖추게 된 것은 고구려 시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무용총은 압록강 서쪽 국내성 근처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고분인데 무용하는 그림이 많다고 하여 무용총이라고 하고,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 시대에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를 하였으니까, 무용총은 장수왕 시대 이전에 형성된 무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마고원 아래 개마국(蓋馬國)이라고 하는 소국은 동명성왕의 손자이자 유리왕의 아들인 대무신왕 때 정복을 하였으니까 개마국 안에 풍산은 무용총이 만들어지던 저 시기엔 이미 고구려의 땅이었고, 개마(蓋馬) 말에게 갑옷을 입힌다는 뜻으로 개마고원은 고구려시대 이전부터 군마를 양성하는 병참기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서에 보면 고구려의 3대 왕인 대무신왕이 개마국을 정벌할 때 백두산 아래 개마국은 [동개마국]이라고 하여 서개마국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만주 평야에 정권을 잡았던 고조선이 백두산 동남쪽으로는 [동개마국]이라는 병참기지를 두었고 서쪽의 흥안령 산맥 어디 쯤에는 [서개마국]이라는 병참기지를 두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이 중원으로부터나 몽골 초원의 침략자들로부터 머나먼 거리의 산맥 속 백두산 아래 고원에서 말을 키우고 있으면 적한테 빼앗길 위험이 없어서 지금의 개마고원 일대에 군마를 양성하는 제후국을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풍산개를 연구하다보니, 고구려 시대 초창기 이전에 이미 백두산 아래 독립국가 형태의 [개마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자체가 놀랍습니다. 이 당시에 國(나라 국)자는 지금처럼 거대한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산맥이나 강으로 둘러쌓인 채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는 특정한 지역을 의미하는 정도였는데, 그런 나라가 고구려 초창기에 백두산맥 속에 있었다는 것은 그 개마국에서는 군마를 양성하여 만주평원의 정치세력에게 팔아서 경제를 유지했다는 것으로, 백두산 아래 개마국은 고조선 시대부터 지금의 개마고원에서 군마를 양성하여 만주평야에 내다 팔면서 소국이지만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시대 이전부터 개마고원 아래에 있었던 개들은 그때 이미 말을 지키는 경비견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말을 키우는 사람들은 양도 같이 키우는 사람들이니까,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이 개마국을 정복하기 전에 백두산 아래 개마국(개마고원)에서는 거기에 있었던 개들이 말과 양을 호랑이나 표범 곰 삵괭이 늑대 같은 맹수들로부터 같이 지켰냈다는 것도 알 수 있고요!

 

그리고 대무신왕 이후에도 개마고원은 계속하여 말을 키우는 병참기지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만주평원을 거쳐오는 침략자들이 개마고원까지 도달하기에는 그 산맥이 너무너무 먼 거리였고, 그 덕분에 말을 키워도 적에게 빼앗길 염려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고구려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개마]라는 이금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유일 것이고요.

 

아래 사진은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인 적석요 분포도인데, 적석요는 고구려의 독창적인 무덤 양식으로 압록강 변을 따라 백두산 아래 개마고원 근처까지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용총 속에 수렵도 부분은 혹시 개마고원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들이 아주 작게 그려진 것이 고원 위에 구릉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니까요.

 

 

 

[무용총 수렵도 속 개들]

 

이 수렵도에 보면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청년들이 동계 군사훈련을 겸함 집단 사냥을 하는데, 무사들과 같이 호랑이와 범을 쫓고 있는 사냥개 검둥이 한 마리가 보입니다.

 

 

이 사실적인 풍속도로 우리는 고구려 시대에 이미 호랑이를 잡는 사냥개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 위에 무사들이 화살을 모두 명적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냥이 군사훈련을 겸한 집단사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맞춰서 맹수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놀라게 하여 도망치게 하여 몰이 후에 한꺼번에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이것이 단순한 사냥이 아니라 군사훈련을 겸한 사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추운 지방에서 눈이 쌓이지 않은 모습으로 보아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하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소가 끄는 두 대의 수레를 대기시켜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냥감들을 싣고 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겨울철 식량 확보를 위한 월동준비로 고구려 사회가 사냥한 야생동물들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삼았던 수렵사회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이 모습은

집단 사냥이 끝나고 [동맹] 같은 축제가 시작되는 모습이겠지요.

 

대가에 말을 타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앞에 개 한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이놈은 검둥이는 아니고 누렁이 정도 되겠군요. 말타고 들어오는 사람이 주인 같으면 반가워서 설레발을 떨 것인데 무심하게 있는 것으로 보아 말타고 들어오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손님 같고, 고구려의 번견들이 지금의 풍산개들처럼 사람에 대해서 대범하다는 것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의 풍산개들이 지금의 체모를 갖추게 된 것은 고구려 시기입니다."라고 했던 북한방송을 염두하면서 이 사실적인 무용총 풍속화 속에 개들을 볼 때 백구도 아니고 장모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악3호 고분 속 개들]

 

황해도 안악군의 안악3호분 벽화에도 개 두 마리가 나오는데, 부엌과 고기창고 앞에서 개 두 마리가 껄떡거리고 있습니다.

 

 

 

고기창고를 확대해서 보면, 노루와 사슴과 멧돼지를 통째로 훈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불은 없고 연기만 나니까, 바베큐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훈제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집에는 마구간도 있는데, 말들이 여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억 앞에서 껄떡거리고 있는 개들을 확대하면 이런 모습입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 개들은 체형이 지금의 진돗개들과 비슷하고, 털도 진돗개와 같은 중장모이고, 털 색깔도 예전에 흔하디 흔했던 진돗개의 재구나 황구 정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 안악3호 고분에 나오는

[부엌-고기창고-마구간-개 두 마리]를 종합하면-

 

말을 타고 사냥해서 잡아온 노루와 사슴과 멧돼지의 내장은 바로 삶아서 요리를 하고, 내장을 빼고 다듬은 몸통들은 보관 기간을 늘리기 위해 훈제를 하는데, 날렵하고 큰 개 두 마리가 부엌 앞에서 껄떡거리자 부엌의 여자들이 개들한테도 고기 덩어리들을 던져주가 개들이 무지하게 감사하게 얻어먹고 있는 모습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개들도 마구간에서 쉬고 있는 말들처럼 사냥터에서는 자기 역할을 다 했을 것이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렇게 부엌 앞에서 당당하게 고기를 얻어먹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안악3호분 벽화에 나오는 저 개들도 평소에는 사람과 같이 생활하면서 집을 지키는 번견이자 사냥 시엔 뛰어난 사냥능력을 발휘하는 사냥개었다 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악3호분 속의 개들의 체모를 살펴봐도 백구도 아니고 장모도 아니고, 지금의 진돗개들과 거의 똑같은 개들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한 송죽리 고분 백구]

 

 

아래 그림은 2012년에 북한 송죽리 고분에서 발견된 5세기경 고구려의 사냥개 벽화입니다.

 

 

 

고구려 시대에도 백구도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벽화입니다. 이 개는 허리가 길고 귀가 누운 벅구인데, 그렇다고 털이 긴 장모종은 아닙니다.

 

백구를 그릴 때 귀를 눕혀서 그린 이유는 귀가 실제로 그렇게 생겨서 그렇게 그렸을 것인데, 지금으로부터 1,500년 경 전에 그려진 백구의 귀가 누워있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백구를 만들려는 혈통고정 과정에서 벅구가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군요.

 

 

 

 

 

[고구려의 개들은 사냥개이자 번견이었다]

 

이상으로 우리는 고구려의 풍속화들 속 개들을 보면서 '진짜 풍산개의 원종이라고 할 수 있는 고구려의 개들은 과천서울대공원 출신 풍산개들한테서 많이 나온 털이 길고 덩치가 작은 백구가 아니라 지금 진돗개 정도의 털과 체형을 가진 황구 재구 검둥이가 주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시대에도 백구가 있었는데, 백구한테서는 그때 벌써 벅구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풍산개 바로알기 1부]를 마치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풍산개의 가치를 평가할 때 유독 사냥개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냥은 겨울 한 철에 하는 것이지 사시사철 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개들이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에도 가치를 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 역할이 바로 번견이었습니다. 번견이란 집을 지키고 주인의 재산을 지켜주는 개들을 말합니다.

 

다음에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이 개마국을 정복하기 전에 이미 백두산 동남쪽에 개마국이 있었다는 것은 고조선 시대 때부터 이미 개마고원에서는 군마를 양성했다는 것 아닙니까?

 

 

개마고원은 평균 해발이 1,200미터 이상으로 그 면적이 서울시의 23배에 이르는데 고조선시대부터 말을 키우는 사람들이 개마고원에 들어와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이루었다는 것이고, 그 사람들은 양고기가 주식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풍산개의 조상들은 개마고원에서 '몽골초원에서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무서운 맹수들로부터' 말과 양을 지키는 개였다고 염두하면서 풍산개를 공부해야...... 풍산개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풍산개 바로알기 2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