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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탄풍산개농장

풍산개 혈통에 대한 정론직필

 

 

 

 

 

 

 

[풍산개 혈통에 대하여]

 

6년 전인 2012년 9월 6일에 방송된 아래 뉴스로 국민들이 '남한에서 분양되고 있는 풍산개들이 대부분 가짜다!'고 인식하게 되어 풍산개업계가 도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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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earch.daum.net/search?w=tot&DA=YZR&t__nil_searchbox=btn&sug=&sugo=&q=%ED%92%8D%EC%82%B0%EA%B0%9C%ED%98%88%ED%86%B5+

 

 

그리고 인터넷 일부 풍산개 카페에서도 이 뉴스를 근거로 지금까지도 '남한에 있는 풍산개들은, 1999년 남북야생교류사업에 북한에서 보내준 4마리의 풍산개 강아지들과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 받아온 우리와 두리라는 풍산개들과, 그 외 북한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내준 몇 마리의 풍산개들의 후손들을 제외하고 모두 가짜이다. 남한의 풍산개들은 1%만 순종 원종이고 나머지 99%는 개꾼 개장사들이 만들어낸 가짜 풍산개들로, 가짜 풍산개를 가지고 사기를 치고 있다.' 주장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진실을 모른 채 그렇게 믿고 있어서... 지금 풍산개 사육농가는 사실상 풍지박산이 나버린 상태에서 재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풍산개 혈통에 관한

 위 2012년 SBS뉴스의 문제가 뭐냐 하면-

 

여기서 말하는 "국가 공인 연구기관"이란 과천서울대공원이고

 

여기서 말하는 "순종 풍산개 30마리"1999년 남북야생동물교류사업 때 북한이 보내준 4마리의 풍산개 강아지들과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온 2마리의 풍산개들과, 그 6마리의 개들이 커서 서로 교배하여 낳은 '35마리의 개들 중에서 강아지 단계를 충분히 벗어난' 20마리를 뜻하는데,

 

과천서울대공원에서는-

 

북한에서 정식으로 보내준 6마리(=1999년 4마리+2000년 2마리)의 개들의 사육을 맡아 키우면서 서로 교배시켜, 35마리의 강아지들을 낳게 하여 또 키우게 됐는데, 그 개들이 북한의 선전에 나오는 풍산개들과 너무 달라서,

 

2003년 2월 24일

북한에서 보내준 6마리(1999년 4마리+2000년 2마리)와 그 개들이 교배하여 낳은 35마리의 개들 중에서 강아지 단계를 벗어난 20마리를 포함한 26마리에 대하여 [풍산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정확한 실태조사 결과-

 

70%나 되는 개들이 이빨 갯수가 부족하거나 부정교합으로 정상적인 치아를 가진 개들은 30%에 불과한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고, 한쪽 귀는 서고 한쪽 귀는 누운 비대칭 개들이 많았고, 북한방송의 진돗개 타입과는 완전히 다른 털복숭이 개들까지 많았고, 전통적으로 알려진 풍산개와는 달리 체격도 작고 다리가 짧은 발바리 형태의 개들이 많아서....

 

과천서울대공원에서는 대외적인 조사결과 발표에서는 "외모, 신체치수를 중심으로"라고 발표를 하였지만, 실제로는 북한 정부에서 정식으로 보내준 풍산개들이 유전적 결함이 많은 개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천서울대공원 풍산개의 실태조사(2003.2.24)

        http://pungsangae.tistory.com/158

 

 

 

 

그런데도, SBS의 이 뉴스는

2003년 2월 24일 있었던 [풍산개 실태조사 결과]를 덮어둔 상태에서

그 조사기관이었던 과천서울대공원을 국가공인 연구기관이라고 가린 채-

 

70%나 유전적 결함을 갖고 있던 대공원 혈통의 개들을 순종 풍산개 30마리라고 규정!

풍산개 농장들이 사기꾼들인 것처럼 단정할 수 있는 무책임한 뉴스를 내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뉴스 이후로 남한에서 풍산개를 전문으로 사육하고 있던 농가는 사실상 파탄나고 말았고, 지금도 인터넷에서 [풍산개 혈통]을 검색하면 이 SBS 뉴스가 진실인 것처럼 풍산개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이 뉴스를 본 이후로 남한의 풍산개들은 거의 대부분 가짜라고 믿게 되었는데, 필자가 2014년 4월 10일 풍산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그 이후로 풍산개 관련 자료들을 가능한 모두 수집하여 분석하여 보니 이 뉴스는 너무나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그동안 순종이라고 믿어왔던 '1999년 야생교류사업 때 풍산개 강아지들 4마리와 김대중 대통령 당시 보내준 2마리 등' 북한 당국에서 정식으로 보내준 풍산개들이 오히려 잡종이었고, 1993년 11월과 1994년 가을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이전에 민간에서 데려온 강아지들이 진짜 순종 원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에서 남한에 공식으로 보내준 풍산개 강아지들은 관상용 풍산개를 개발하고 있던 [평양 중앙동물원] 출신의 풍산개들이고, 민간에서 데려온 강아지들은 풍산개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도록 철저히 관리 보존되고 있던 백두산 남쪽 개마고원 풍산군 광덕리에 있는 [광덕풍산개종견장] 출신의 풍산개들인데, 그래서 평양중앙동물원 출신의 풍산개 후손들과 [광덕풍산개종견장] 출신의 풍산개들을 유전자 비교하면.... 그 유전자 검사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토종개인 풍산개를

한 번 키워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께!

 

지금은 북한보다 남한에 훨씬 좋은 풍산개들이 많이 있고! 1998년 이후 북한에서도 급격한 풍산개의 백구화 정책과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개마고원 광덕리의 풍산개 사육장의 개들조차 약골이 된 데 반하여.... 1993년 11월 6일 이후 남한으로 내려온 풍산개들은 정말로 훌륭한 풍산개들로 관리되어, 북한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남한에서나마 정말로 좋은 원종의 풍산개들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

 

필자가 [풍산개의 혈통] [순종] [원종] [잡종]에 대하여 한 번 정리를 해두고자 합니다.

 

 

 

[개의 순종과 잡종]

 

풍산개뿐만 아니라 진돗개도 혈통에 관한 논쟁이 있고,

모든 개들이 순종이냐 잡종이냐 논쟁이 있는데...

 

개들의 혈통에 대하여, 국견협회의 우무종 회장은 '5대까지 그 개들의 외모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혈통서가 있는 상태에서, 거기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이 커서 또 자기 선대의 개들을 닮았다면 그 개들은 [순종]이라고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풍산개의 원종과 잡종]

 

통일신문의 김형수 객원기자는 탈북민으로, 올해 2018년 초 통일신문에 "[북한실체를 밝힌다] 광덕풍산개종견장"란 제목으로 풍산개에 관하여 기사를 5회나 연재하였는데, 김형수 기자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풍산개의 원종과 잡종을 구분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풍산개는 원종잡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종은 풍산개의 고유한 우량종들을 야생화 시켜 보존해 온 품종이다. 잡종은 북한에서 군견으로 키우던 세퍼트와 다른 유명한 사냥개들을 풍산개와 교배시켜 얻은 품종들이었다."

 

원문출처: 통일신문

http://www.unityinfo.co.kr/sub_read.html?uid=24739

2018/02/01 [14:52]  기사작성: 김형수 객원기자

 

 

 


 

[북한에서 표방하는 풍산개]

 

북한우표에 나오는 풍산개 모습들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풍산개를 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6년 북한방송 최고의 풍산개를 가리는 경연대회인데,

모두 진돗개하고 구분하기 힘든 풍산개들입니다. 

 

 

북한방송 [풍산개 강아지 고르기] 안내입니다.

강아지들의 선대견들을 닮아 진돗개 강아지들하고 구분이 어려운 어렵습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에서 남한에 정식으로 보내준 풍산개들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에 받아온 강아지들인

우리와 두리가 4년 정도 성장했을 때 모습입니다.

 

 

과천서울대공원에서 2003.2.24. [풍산개실태조사] 후 그 중에서

유전적 결함이 적은 놈들로 광주우치동물원과 대구달성공원에 보내어,

그 개들이 낳은 자견들입니다.

 

 

북한에서 보내준 6마리와 그 자견들이 낳은 강아지들은

이렇게 딱 한 번만 분양하고 더 이상 분양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부에서 보내준 6마리와, 그 개들이 커서 서로 교배하여 낳은 35마리의

과천서울대공원 혈통의 개들은 풍산개로서 유전적 결함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자견 배출을 못하게 한 상태에서... 토종개인 풍산개의 발전을 위해 자연도태 시킨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2012년 SBS의 풍산개 혈통 관련

이 뉴스가 얼마나 잘못된 뉴스인지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백두산 동남쪽 개마고원 아래 해발 1,200미터 풍산 광덕리에 있는 [광덕풍산개종견장]에서 데리고 온 강아지들의 후손들하고, 70%나 유전적 결함이 나온 개들하고 어떻게 유전자가 같거나 비슷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에서 정식으로 보내준 6마리가 낳은 강아지들은 북한우표나 북한방송에 나오는 풍산개들하고는 너무나 다른 이상한 개들이 너무너무 많이 나오고 말았는데, 과천서울대공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30마리의 개들 유전자하고 풍산 광덕 종견장에서 데리고 온 개들하고는 유전자가 30%만 같고 70%가 다르다고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과천서울대공원 41마리의 개들의 유전자는

이런 개들이 낳은 자견들의 유전자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개들은 개마고원 안에 풍산군 광덕리 종견 사육장에서 온 개들의 후손이라, 유전자 결함이 70%나 나타났던 과천서울대공원의 풍산개들과 유전자가 일치하거나 비슷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북한우표에 나오는 표준의 풍산개들도 보셨고, 북한방송에 나오는 최고의 풍산개들도 보셨으니까, 남한에 와서 종견으로 육성된 이 개들이 바로 북한에서 표방하는 그런 풍산개라는 사실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몇 몇 풍산개 카페들에서는 70%나 유전자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서울대공원 혈통 개들의 후손들 몇 마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북한에서 정식으로 보내준 6마리와 그 외 기업인들이 선물받아온 낱마리의 개들이 낳은 후손들만이 순종 원종 풍산개로 전국에서 1%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 99%의 개들은 개꾼(사기꾼) 개장수들이 만들어낸 가짜 풍산개'라고 여론을 호도하면서.... 멍청한 짓들을 하고 있는데.... 서류상 혈통을 중시하는 것이 가상하면서도 그 서류들은 유전적 결함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필자는 근래에야, 과천서울대공원과 광주우치동물원과 대구달성공원에서 북한에서 정식으로 보내준 개들의 후손들을 딱 한 번만 일반에 분양하고 더 이상은 새끼를 못 낳게 하여 자연도태시킨 것은 1993년 11월 6일 이후 민간에서 데려온 풍산개들 중에 이미 저렇게 좋은 풍산개 종견들을 육성해낸 사실을 확인한 상태에서, 토종개인 풍산개 발전을 위해서 유전자 결함이 많은 자견들의 유출을 막은 때문이었다!'고 판단하게 되었는데....... 이 부분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북한 광덕풍산개종견장의 원종 풍산개 관리 육성]

 

2015년 북한방송 [조선의 국견 풍산개]에서 캡처한 영상들입니다.

백두산 동남쪽 풍산 광덕리에 [광덕풍산개종견장]의 모습이 보입니다.

 

 

 

북한에서는 1975년 [광덕풍산개종견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그 다음해인 1976년엔 개마고원 일대에 있던 좋은 풍산개들을 광덕리로 보내주어, 그 이후 철저히 관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4년 가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광덕풍산개종견장]에는 그동안 육성한 최상급 종견들이 300마리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1976년부터 1994년까지 18년 동안 300마리 정도에 이르는 최상급 종견들을 육성해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994년 [고난의 행군] 이후로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죽을 때 풍산 광덕종견사육장도 더 이상의 종견관리를 못하게 되고 말았다고 하는데, 1998년에 가서는 최상급 종견을 고작 3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다음은 통일뉴스의 김형수 기자의 기사입니다.

사진설명은 필자의 자료분석입니다.

 

 

[광덕 풍산개 종견장]

 

북한에서 풍산개는 원종과 잡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종은 풍산개의 고유한 우량종들을 야생화 시켜 보존해 온 품종이다. 잡종은 북한에서 군견으로 키우던 세퍼트와 다른 유명한 사냥개들을 풍산개와 교배시켜 얻은 품종들이었다.

 

1998년 방영북한방송 [풍산개]

1999년 북에서 보내준 4마리와 2000년 김대중대통령 평양방문 때 보내준 2마리가 커서,

그 여섯마리가 교배하여 낳은 자견들 중 70%나 장애 기형견들이 나온 이유는

풍산개의 관상용 백구화 과정에서 

에스타르다 종 같은 외래종들과 교배를 한 때문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개들의 후손들이 1999년 남북 야생동물교류사업 때 풍산개 강아지들 4마리가 내려왔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 평양 방문 당시 두 마리의 강아지들이 내려왔던 것인데,

풍산개의 백구화 과정에서 관상용으로 개발되고 있던 개들이었고

그 이후 근친교배가 추가로 진행되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 6마리의 강아지들이 낳은 자견들이 70%나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 개들이 바로 여기서 김형수 객원기자가 밝히고 있는 잡종이었던 것이지요.

  

 

1997년 방영북한방송 [동물들의 싸움] 중에서 [사냥개와 멧돼지]

여기에 나오는 개들이 바로 김형수 객원기자가 밝히고 있는

"원종풍산개의 고유한 우량종들을 야생화 시켜 보존해 온 품종"원종인 것입니다.

  

 

원종과 잡종 엄격히 격리시켜 키워

 

양강도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에는 인공부화실이 있는데 여기에서 풍산개의 원종과 잡종을 만들어 냈다. 원종은 풍산개 목장의 사무실에서 내중저수지 쪽으로 향하는 낡은 건물이었다. 잡종견은 그와 반대편인 내중리 소학교(초등학교) 쪽에 위치, 1980년대에 지은 3동의 건물이다.

 

광덕리풍산개종견장은

원종과 잡종을 엄격히 격리시켜 키웠다.

 

먹이는 하루에 두 번 아미산 총국이 직접 공급하는 사료를 주었는데 주로 새벽시간과 야밤에 주곤 하였다. 사료는 물고기 뼈와 가축의 내장으로 만들어 소시지와 비슷했다. 한 주일에 한 번씩은 살아있는 닭과 토끼를 먹이로 주었는데 이는 풍산개와 풍산개 잡종견들의 야생성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품을 들여 보존해 온 풍산개종견장은 1990년 초 동유럽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동유럽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주의 시장이 와해되면서 풍산개는 물론 평양과 각 도 동물원들에서 육식동물들에게 공급하던 사료가 바닥났다. 풍산개종견장도 기존보다 질이 낮은 사료가 들어왔고 살아있는 닭과 토끼는 공급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풍산개는 우량종 육성보다 품종보존에 더 치우치게 되었다. 하지만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는 시작에 불과했다.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은 광덕풍산개종견장을 한순간에 풍비박산 냈다.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의 경제가 1990년대 중반 김일성이 급사되면서 악화되었다고 하는데 실은 1980년대에부터 북한의 경제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해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린 1989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했다. 동유럽붕괴와 체제경쟁을 위한 재정남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과 김일성 일가의 우상화 선전에 북한의 재정이 모조리 탕진됐다. 이런 가운데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가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89년 중국 밀수꾼들 풍산개 원종 물색

 

고난의 행군은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 특수기관들과 호위사령부 소속의 아미산총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속에서도 풍산개종견장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애초 양강도 주민들은 풍산개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북한의 다른 지역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양강도의 주민들도 식용견만 키웠던 탓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고장에 풍산개종견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양강도 주민들이 풍산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중국정부는 1983년부터 심전특구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하던 생산책임제’, 이른바 개혁개방을 전국에 일반화했다. 이때부터 중국에 가족, 친척을 둔 사람들이 서로가 오가며 만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 북한에서 쇠절구와 국수분틀이 밀수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고 대신 중국산 담배와 신발이 북한에 들어왔다.

 

중국인들이 밀수 통로를 이용해 살아있는 짐승을 처음으로 요구한 것은 당시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해리서(뉴트리아)였다. 뉴트리아 새끼 한 마리면 중국인들은 노루의 태를 가지고 만든 보약인 녹태고2통씩 주었다. 12개의 환으로 포장된 녹태고한통은 중국인민폐로 22위안, 당시 중국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과 맞먹었다. 그런데 이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값을 주겠다는 동물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양강도 김형권군 광덕리에서 키우던 풍산개원종이었다.

 

1989년 중국의 밀수꾼들은 풍산개 원종을 대대적으로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먼저 제시한 가격이 중국인민폐 8백 위안이었다. 당시 양강도 혜산시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 길림성 장백현 경찰들의 평균 월급이 3백 위안이었다.

 

그때 밀수꾼들이 수소문으로 알아 낸 것이 풍산개의 종견장이 김형권군 광덕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광덕풍산개종견장은 아미산총국 산하로 김정일의 재산에 속해있었다. 경비도 삼엄해 누구도 접근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만약 풍산개에 손을 대면 이는 김정일의 재산을 훔친 것으로 돼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정치범수용소 행을 면치 못하게 돼 있었다. 이렇게 삼엄한 광덕풍산개종견장도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죽던 고난의 행군을 비켜가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시작우량종 관리 유지 못해

 

고난의 행군직전이었던 1993년 여름 이곳 풍산개종견장에서는 원종과 잡종을 비롯해 약 3백여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정전에 대비해 인공수정실과 새끼 보육실에 전기를 공급할 디젤발전기까지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풍산개를 지키던 8호안전부 경비대의 식량공급이 중단됐다. 아미산총국은 풍산개의 먹이보장을 위해 8호 작업반에 소속돼 있던 사냥꾼들을 동원해 산토끼와 산비둘기를 잡아 사료를 보충하도록 했다.

 

여기다 계속되는 정전으로 디젤발전기를 돌릴 수가 없었다. 양강도 소재지인 혜산시에서 풍산군까지 360(90km)인데 그곳까지 실어 나를 기름도 없었다. 고장이나 보수를 위해 불가피하게 발전기를 멈춰야 할 시간이 많았다.

 

결국 인공수정실에서 동결 보존하던 우량종 풍산개의 정자들이 모두 녹아 죽었고, 사료를 공급받지 못한 풍산개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광경까지 벌어졌다. 배급을 못 받는 경비대원들은 출근을 못했다.

 

오히려 돈을 받고 팔기 위해 경비대원들이 몰래 우량종 풍산개의 새끼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풍산개종견장의 간부들과 수의사들은 광견병이 돌아 땅에 매장한 것으로 기록하고 풍산개들 중에서 우량종들을 몰래 빼내 밀수꾼들에게 넘겼다.

 

1998년에 당시에

종견장에 남은 풍산개는 모두 합쳐 24마리였다고 한다.

 

그중에 순혈종은 3마리만 남고 나머지 21마리는 근친교배나 다른 사냥개들과 교배시킨 저질형 잡종들이다. 남아있는 순혈종 세 마리를 번식시켜도 근친교배밖에 되지 않아 우량종을 얻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인공수정실에 동결 보존하던 정자들도 모두 훼손돼 풍산개의 우량종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원종은 경제가 불안해지던 1980년 말부터

국경 통해 중국으로 몰래 팔려나가기 시작

 

1990년대 중반부터 겪었던 고난의 행군으로 하여 북한은 풍산개의 우량종들을 거의 잃고 말았다. 북한주민들은 김정일이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풍산개를 선물로 준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다.

 

중국서 더 인기언론서 존재가치 소개

 

1980년대 북한의 노동신문은 미국 사냥개 품종과 싸워 이긴 풍산개 수라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북한은 이 개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1980년대 북한 당국이 만든 기록영화(다큐) ‘동물들의 싸움에서는 풍산개들이 무리를 지어 2kg이나 되는 큰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내기도 하였다.

 

그때까지 북한의 주민들은 풍산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러한 풍산개는 오히려 북한보다 중국에서 더 널리 알려졌다.

 

중국의 언론들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출판하는 연변일보연변청년등 신문과 잡지들은 1980년대부터 풍산개에 대해 널리 소개하며 그 존재의 가치를 소개했다.

 

고난의 행군시기는 북·중 사이에 밀수가 가장 왕성하던 시기였다. 당시 중국의 애견인들 사이에서 우량종 풍산개에 대한 수효가 많았다. 풍산개의 우량종 새끼 한 마리의 가격이 중국 인민폐로 1천 위안을 부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중국에 있는 가족, 친척들을 방문하는 북한의 여행자들과 중국에서 북한을 드나드는 장사꾼들은 거액을 부르며 풍산개를 수소문했다. 이렇게 되자 여태껏 그 존재에 관심도 없던 북한주민들도 풍산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풍산개의 원종은 북한의 경제가 불안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국경을 통해 몰래 중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풍산개의 새끼는 8호 안전부에서 경비를 서는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이 아니면 얻을 방법이 없었다.

 

광덕풍산개종견장에서 키우던 풍산개의 종자가 어떻게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외부로 새어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내용이 없다. 분명한 것은 현지 종견장의 간부들과 경비병들이 서로가 협조해야만 종자를 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리하고, 충성심 높아 몸값 천정부지

 

밀수꾼들을 통해 중국에 반입된 풍산개들은 애견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영리함에 있어서 어떤 품종도 따라 올수 없었다.

 

한번 정한 목표는 절대 놓치지 않는데다 자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풍산개의 몸값은 천정부지였다. 풍산개가 한창 밀수되던 1990년대 중국의 사냥꾼들과 애견인들 사이에서는 풍산개 세 마리만 있으면 호랑이를 만나도 무섭지 않다는 이야기가 당당하게 흘러 나왔을 정도였다니 그 인기를 실감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중형견으로 몸집은 작지만 용감하고 민첩한 풍산개의 인기는 중국을 통해 대한민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풍산개를 반입하기 위한 노력도 활발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광덕풍산개종견장에는 300여 마리가 넘는 풍산개들이 있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직원들이 몰래 빼내 밀수꾼들에게 팔아넘기기까지 하면서 1998년에 풍산개는 잡종견까지 다 합쳐서 겨우 21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북한에서 밀수꾼들에 의해 중국으로 넘겨진 풍산개들의 실체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여러 언론들에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풍산개의 원종이 중국을 거쳐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 온 해가 1993년이다. 1993116일자 동아일보 29면에 북한명견 풍산개 한국에 온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당시 동아일보는 북한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견 풍산개가 암수를 다 합쳐 27마리가 들어온다고 보도 했다. 또 이 풍산개들은 생후 2~3개월밖에 안된 어린 종자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드나들며 곡물수입을 하던 애견가 김만수라는 분이 중국 천진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 천인호의 특등실에 태워 한국의 인천항으로 들여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동아일보일제의 통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풍산군일대에서 널리 길러져 풍산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개들은 지금 민간에서 사육이 금지될 정도로 북한당국의 특별대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평양방문 때 선물

 

구입경로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쌍마관광 김만수 대표의 부탁으로 199210월 하순에 중국 조선족 이모씨가 풍산개 종견장에 가서 당시 300여 마리밖에 없었던 풍산개 중에서 이 개들을 구입하여 중국에 들여왔다고 구체적으로 실었다.


 

실제 풍산개 원종을 들여오기 위해 중국의 한 조선족 동포가 위험을 감수하고 김형권군 광덕풍산개종견장까지 직접 가서 종자용 새끼들을 빼냈다는 것이다. 중국을 통해 들여 온 풍산개는 한국의 서울시 등촌동에서 검역을 받았다. 서울 등촌동의 동물검역소에서 위생검역과 순혈종 판정을 받은 풍산개는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만만종견장에서 합법적으로 사육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어 한국에 첫 풍산개종견장이 생겨났고 여기에서 마리수가 늘게 되었다.

 

이후 풍산개들은 경기도 용인시와 강원도 양양, 전라북도 익산시 등에 마련된 종견장들에서 더 크게 확산되어 한국의 천연기념물인 진돗개와 비슷하게 가격도 하락했다. 20006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다.

 

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풍산개 한 쌍을 선물로 주었다. 김정일로선 최선을 다한 선물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처음 들여온 품종이 아니어서 상징적 의미가 컸을 뿐 실제로 대중적인 인기는 끌지 못했다.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의 이름은 자주단결이었지만 남쪽에 와서 수컷은 우리’, 암컷은 두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두리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보내졌고 그 다음해에 새끼를 낳았다.

 

북한의 호위사령부 아미산총국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우량종을 잃은 풍산개는 이렇게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끝]

 

 

 

 

[2015년 약골로 나타난 광덕리의 풍산개들]

 

2015년 북한방송 [조선의 국견]에서 나왔던 북한 광덕 사육장의 풍산개들인데, 1997년 북한방송 [동물들의 싸움]에서 멧돼지를 잡던 풍산개들에 비하여 약골이 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자료들로써 우리는 '1994년 가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풍산 광덕종견장에 최상급 풍산개 종견들이 300마리 정도나 있었지만 1998년에는 풍산 광덕리에 좋은 최상급 종견이 3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김형수 기자의 기사내용이 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993년 남한으로 데려온 풍산개들]

 

아래 동영상은 1993년 11월 6일 MBC뉴스로,

포항에 있는 만만상사에서 중국 조선족 동포들을 통해

두만강을 넘어 북한 풍산의 광덕풍산개종견장에서 강아지들을 구하여

최초로 남한에 들여온 풍산개 강아지들에 대한 뉴스입니다.

 

 

 

 

 

위 동영상은 벌써 25년이나 지난 영상인데... 주목할 것은..

이때 벌써 풍산개가 보호색을 가지고 있고 색깔이 여러가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남한 사회에 정착한 풍산개들]

 

포항 만만상사에서 1차로 들여온 이 개들은 그 이후에 [만만풍산개] [만만개] [일차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 품종이 우수하여 토종개 동호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강원도 철원으로 옮겨져 철원 [코리아풍산개농장]에서 사육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울산 [코리아풍산개농장]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그 백구 일부가 성남에 있는 [신동탄풍산개농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울산 [코리아풍산개농장]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는데, 그래도 울산코리아 농장 덕분에 고구려 시대의 벽화에서 뛰어나온 것 같은 '보호색을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색깔의' 풍산개들 유전자가 전국에 퍼져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구들은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구수리에 있는 [신동탄 풍산개 농장]에서 지금도 철저히 관리되고 있는데, 신동탄풍산개농장에서는 1993년 11월 6일 만만상사에서 데려온 일명 [만만풍산개]들만 육성하지, 다른 개들은 절대로 섞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1976년부터 풍산 [광덕풍산개종견장]을 철저히 관리 운영하여

1994년 가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기 전에는

광덕풍산개종견장에 최상급 풍산개 종견들이 300마리나 있었는데,

 

[고난의 행군] 이후로 풍산 광덕리 풍산개 종견장도 고난의 길을 걷게 되어

1998년에는 최상급 종견이 3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고....

 

2015년 북한방송 [조선의 국견]에 나오는 풍산개들은 약골이 되어 있었는데...

 

지금 남한에서

'1993년 11월 6일 광덕리에서 데려온' 강아지 후손들이

북한우표와 북한방송에 등장하는 최상급 풍산개들을 능가하는 모습들로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구수리에 있는 [신동탄풍산개농장]에서 보호 육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1993년 이후 풍산개 혈통.pp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