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출처 : 김왕석의 [수렵야화]
[풍산개와 티베트개]
1927년 4월초 만주 길림성 장백산맥 기슭에 있던 박상훈 포수의 산막에 조선 무산(茂山)에 사는 윤원술(尹元述)포수의 심부름으로 심마니 한 사람이 찾아왔다.
심마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어깨에 메고 왔던 망태기를 풀었다.
망태기 안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왔다. 생후 두 달 반 쯤 되는 하얀 복슬강아지였다. 풍산(豊山)개였다. 조선 사람들이 자랑하는 그 유명한 사냥개였다.
개를 보낸 윤포수는 뛰어난 사냥 솜씨와 훌륭한 사냥개 사육자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조선의 사냥꾼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윤포수는 전해 10월께 만주호랑이 한 마리를 쫓아 장백산까지 들어왔다가 비적들의 습격을 받았다.
비적들은 모두 여섯 명이나 되었으나 윤포수와 오창식이라는 무산포수는 용감하게 응전했다. 그러나 비적들은 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 산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조선인 포수들에게 불리했다. 비적들은 산정에 있던 바위틈에 숨어 산 중복에 있던 포수들을 저격했기 때문에 오포수는 허벅지에 총탄을 맞아 쓰러졌고 윤포수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총소리를 듣고 달려간 박상훈 포수 형제가 비적들의 등 뒤에서 총질을 하는 바람에 비적들은 도망쳤다. 비적들은 그곳에 사는 털보 박상훈 포수의 힘을 알고 있었으므로 부상한 동료를 등에 업고 삼십육계를 놓은 것이다.
박포수는 고국에서 온 포수들을 자기의 산막으로 데리고 가서 열흘 동안이나 간호를 해주었다. 윤포수는 너무나 고마워 사례를 하려고 했으나 박포수는 절대로 받지 않았다. 윤포수가 강아지를 보낸 것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한 것으로 보여졌다. 강아지는 나흘 동안이나 망태기 속에서 불편한 여행을 했는데도 별로 지친 기색이 없었다. 심마니는 그놈이 망태기 안에서도 잘 자라 망태기가 날로 무거워졌다고 농을 했다.
강아지는 망태기 안에서 기어 나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예삿 개가 아니었다. 입이권미(立耳卷尾 ; 귀가 서고 꼬리가 말림)는 그놈의 핏줄을 알려주었고, 눈처럼 흰 털은 그 순수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눈빛에서는 그놈의 강한 기백이 나타나 있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맑은 눈동자였으나 성장하면 독수리의 눈이 될 것이 분명했다. 벌써 무서운 엽욕(獵慾)을 보여주고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검은 색 콧등은 놈이 아주 건강하다는 것을 뜻했다. 무럭무럭 자라날 놈이었다. 넓적하고 두툼한 앞발은 놈이 대형(大型)개라는 것을 뜻했다. 사실 풍산개는 15관(약 60 Kg)에 달하는 큰 개였다. 여덟팔자로 벌어진 뒷발도 놈이 뚝심이 센 개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산악지대인 풍산에 사는 풍산개들은 그런 다부진 뒷발을 갖고 있었다. 박포수는 손바닥을 내밀면서 강아지를 불러봤다. 그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처럼 꼬리를 치면서 달려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의심을 품고 도망가지 않았다. 강아지는 천천히 또박또박 걸어와 박포수 앞에 앉더니 박포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박포수는 감탄했다. 그리고 그놈을 훌륭한 사냥개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윤포수는 강아지와 함께 그놈의 내력과 사육하는 법, 훈련시키는 법 등을 상세하게 적은 편지를 보내왔다. 마치 자식을 먼 곳으로 보내는 어버이 심정 같은 간곡한 편지였다.
윤포수는 직업포수가 아니었다. 그는 수 천석거리를 가진 지주였으나 무산의 산림과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 그리고 사람들과 사냥을 같이하는 개들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는 개들을 사랑했으며 허다한 사냥꾼들이 개들을 빌려달라고 요청해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꼭 빌려주어야 할 사냥꾼 친구들에 대해서는 개들을 빌려주기 전에 이틀 동안이나 개와 같이 지내게 하면서 그들을 부리는 방법을 훈련시켰다. 그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면 뒤늦게 개들의 뒤를 따라가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윤포수는 편지에서 강아지를 [백두]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강아지 백두의 애비는 윤포수가 기르고 있던 사냥개들의 총대(總代)였다. 총대란 무리들의 두목이었다. 그는 열두 마리나 되는 개들을 다스렸다. 위계질서를 지키게 하고 부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조정했다. 그는 또한 주인의 의사를 받아 그걸 부하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총대란 사냥터에서는 중심이 되었다. 싸움의 지휘자이며 주전선수이기도 했다. 부하 개들은 언제나 총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덤비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의 일거일동이 사냥을 좌우했다.
총대는 영도견(領導犬)이기도 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어떻게 사냥을 하느냐를 교육하는 교관이었다. 사냥개를 훈련하는 훈련사들은 그 영도견을 통해서 개들에게 실지 훈련을 시켰다.
강아지 백두의 애비는 총대로서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 명견이었다. 그는 100마리가 넘는 멧돼지를 잡았고 그보다 많은 수의 노루도 잡았다. 그는 또한 네 마리의 범과 여덟 마리의 표범도 잡았다. 백두의 어미 또한 날쌔고 영리한 사냥개였다. 그 암캐는 언제나 두목의 옆에 붙어서 그를 도왔다. 그들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백두는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개였다. 백두가 훌륭한 사냥개의 핏줄을 타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속에는 사람들과 같이 사냥을 할 수 있는 자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사냥개는 아니다. 그 강아지가 계속 부모 밑에 있으면 부모로부터 사냥을 하는 학습을 받을 수 있었으나 부모와 떨어졌으니 그걸 바랄 수는 없었다. 그런 학습은 사람의 손으로 시켜주어야만 했다.
박포수는 우선 가족들에게 담을 다시 쌓아올려 마당을 넓히라고 지시했다. 마당이 최소한 100평쯤은 되어야만 그 강아지가 훌륭한 사냥개로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었다. 박포수는 가족들에게 그렇게 지시해놓고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곰털을 들고 산막을 나섰다.
그는 길림에 사는 지방토호 황대인을 찾아갔다. 황대인은 대궐같은 집에서 열 마리가 넘는 만주개들을 사육하고 있었다. 그 개들은 만주개라고 하지만 사실은 티베트산 개들이었다. 티베트개들은 송아지만한 거구였다. 큰놈은 20관(약 75 Kg)이나 나가는 개들이었으며 체구만큼이나 성질도 사나운 개들이었다.
영국인들은 그 개들을 티베트 마스티브라고 불렀으나 사실은 영국의 마스티브야말로 티베트 개들의 혈통이었다. 다부진 체구와 뭉뚱한 주둥이들이 흡사했다. 티베트개는 물론 마스티브보다 컸고 거칠고 긴 털을 갖고 있었으며 성질도 사나웠다.
티베트인들은 그 개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유목족인 그들에게는 그 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었다. 그 개는 외부의 침략자들을 막아주는 방패막이었고 양이나 야크 등 가축을 보호해주는 경비견(警備犬)이었으며 산양이나 영양(玲羊) 등을 잡아주는 사냥개였다.
만주의 토호(土濠)들이 그 개들을 사육하는 이유는 주로 경비견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빈번한 전란이 일어나고 비적들의 습격을 받았던 토호들은 그 개들을 사육하여 외적들을 막았다. 그래서 그 개들은 외부사람들에 대해선 덮어놓고 덤벼들었으며 만주의 토호들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 개에게 두려움을 가졌다.
길림의 황대인도 역시 그런 의도에서 티베트개들을 사육하고 있었으나 황대인은 다른 토호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개를 잘 알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박포수는 황대인과는 웅담 녹용 호골(虎骨) 등을 거래하면서 그 집을 자주 방문하다가 그 집의 티베트개 한 마리가 새끼를 낳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비가 두목 개였기 때문에 그 새끼들은 훌륭한 핏줄을 이어받은 새끼들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는 황대인을 방문했다.
박포수는 티베트개가 비록 만주에서는 경비견으로 사육되고 있었으나 그 개의 핏줄에는 사냥개의 그것이 남아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그 개를 구입하여 사냥개로 훈련시킬 생각이었다.
황대인은 박포수가 내놓은 곰털을 보고 감탄했다. 여섯 평쯤 되는 그의 거실에 가득 차는 털이었으며 색깔이나 털의 질에서도 흠이 없었다. 황대인은 박포수에게 값이 얼마냐고 물어봤다. 부르는 값으로 사들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포수는 곰털은 무상으로 진상하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대인은 그렇다면 자기도 무상으로 뭘 주겠다면서 박포수에게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박포수는 더 이상 진의를 숨기지 않고 자기가 풍산개의 새끼 한 마리를 얻었다는 사실과 그 강아지와 함께 티베트개의 강아지도 사육하고 훈련시키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황대인은 웃었다.
그는 집사에게 두 달 전에 태어난 네 마리의 강아지를 모두 갖고 오라고 지시하고 박포수에게 그중 한 마리를 골라 가지라고 말했다. 박포수는 그중에서 암컷 한 마리를 선택했다. 티베트개의 특징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강아지였다.
황대인은 만약 풍산개와 티베트개 사이에 새끼가 생기면 그중 한 마리를 얻는다는 조건으로 그 암강아지를 박포수에게 넘겨주면서 사육과 훈련에 충당하라면서 적지 않은 돈까지 주었다. 그는 과연 개를 알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박포수가 산막에 돌아와 보니 돌담이 다시 쌓여지고 넓은 마당이 만들어져 있었다. 온 가족들이 나서서 사흘 동안에 큰 역사를 해낸 것이었다. 풍산개와 티베트개의 강아지들은 상견례도 하지 않고 싸움부터 시작했다. 장난치고는 너무 거친 싸움이어서 그들은 힘이 빠질 때까지 서로 치고 물면서 뒹굴고 야단이었다.
강아지들은 다음날도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면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차츰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당 한구석에 설치해준 집에서 몸을 붙이고 같이 자야만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박포수는 바로 그 점을 바라고 있었다.
사람도 그렇지만 혼자서 자란 새끼는 방종하여 마구 날뛰거나 그 반대로 위축되어 적극성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두 마리의 강아지들이 같이 자라면 그들은 서로 싸움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각자의 소질을 펼 수 있었다.
[훈련]
풍산개와 티베트개는 공생공존하면서 자랐다. 그리고 함께 훈련도 받았다. 박포수는 훈련을 서둘지 않았다. 그들의 뼈가 굵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강아지들이 생후 넉 달이 되자 박포수는 그들의 장난질에 끼어들었다. 젓가락 길이의 막대기에 줄을 둘둘 만 장난감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었다. 뭣이든 처음 보는 물건들은 입으로 무는 버릇이 있는 강아지들은 그 막대기를 서로 물려고 뺏고 빼앗기면서 뒹굴고 있었다. 박포수는 자신도 그 쟁탈전에 끼어들어 강아지들과 같이 놀았다.
박포수는 다음날에는 막대기에 긴 줄을 묶어 강아지가 그걸 물자 자기 앞으로 당겼다. 강아지들은 막대기를 꽉 물고 막대기와 같이 끌려왔다. 박포수는 막대기를 문 강아지가 자기 앞까지 끌려오자 강아지의 양 뺨을 눌러 강아지의 막대기를 놓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강아지가 좋아하는 마른 고기를 주었다. 3 ∼ 4일 동안 그런 짓을 계속하자 강아지는 막대기를 물면 스스로 박포수 앞으로 달려와 막대기를 놓고 마른 고기를 얻어먹었다. 막대기에 줄을 당길 필요도 없었다.
박포수는 다음부터는 막대기를 멀리 던졌다. 그리고 “갖고 와” 라고 소리쳤다. 강아지들은 서로 다투면서 달려가 막대기를 물고 와서 상품인 마른 고기를 얻어먹었다.
보름쯤 뒤에는 마른 고기를 주지 않고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막대기를 갖고 왔다. 강아지들은 자연스럽게 재주를 하나 배웠다. 박포수는 강아지들이 다섯 달이 되자 그들의 목에 줄을 걸었다. 그 목줄은 사람과 개들의 몸을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연결시켰다. 목줄을 쥔 사람의 의사가 강아지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멈춰!”
걸어가다가 소리치면서 목줄을 잡아당기면 강아지들은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박포수는 마른 고기를 주었다. 2 ∼ 3일 뒤부턴 강아지는 그 재주를 하면 마른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목줄을 잡아당기지 않아도 “멈춰” 라는 소리와 주인의 몸짓만을 보고 딱 정지했다.
그리고 “가!” 라는 소리를 들으면 다시 걸어갈 줄도 알았다.
여섯 달째가 될 무렵에는 강아지들은 “돌아와!” 라는 소리도 알아들었다. 그리고 목줄이 걸려 주인과 같이 걸어갈 때는 반드시 왼쪽으로 가고 억지로 앞서 가려고 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훈련은 7개월이 되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때쯤에는 두 마리의 개는 이미 강아지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애비 어미만큼이나 컸다. 어깨 높이의 키는 두 마리가 비슷했으나 몸무게는 티베트개가 무거웠고 그만큼 힘도 셌다. 하지만 동작은 풍산개가 빨랐으며 싸움을 하면 좀체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체격은 티베트개가 컸으나 풍산개는 수컷이었고 티베트개는 암컷이었기 때문에 두목은 역시 풍산개가 되었다.
어느 날 밤 두 마리가 크게 다투더니 그런 순위가 결정된 것 같았다. 그때쯤에는 그들은 어려운 재주인 “지켜!” 를 배웠다. 먹이를 눈앞에 두고도 먹지 않고 지키는 인내심이었다. 개들은 “지켜” 라는 주인의 명령을 어기면 징계를 받는다는 걸 알고 “좋아!” 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몇 시간이라도 주어진 물건을 지켰다. 역시 풍산개는 영리했다. 풍산개는 주인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을 뿐만 아니라 티베트개가 그걸 어기면 주인 대신에 응징하기도 했다.
그러나 겨울이 오자 풍산개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는 겪어야 할 시련이 있었다. 만주의 혹독한 추위였다. 풍산개도 영하 30도나 되는 풍산, 무산에서 태어나 자란 개였으며 추위에 강한 개였다. 그의 털은 소밀하고 길고 또 거칠었다. 하지만 무산과 만주는 달랐다. 무산의 추위는 영하 40도 이하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만주의 기온은 영하 50도까지 내려갔다.
두터운 피하지방을 갖고 있는 티베트개는 능히 그런 추위에도 견디어 낼 수 있었으나 근육질인 풍산개가 그 같은 강추위를 이겨낼지 염려스러웠다. 박포수는 겨울이 되어도 마당 한구석에 있는 개집 주위에 거적을 덮어주고 집안에 마른 풀을 두껍게 깔아주었을 뿐 달리 보호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개들은 그 집안에서 몸을 붙여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12월 어느 날 밤 폭설이 내렸다. 폭풍과 함께 눈이 밤새 내렸다. 온돌과 난로불을 한꺼번에 때었지만 집안이 추웠다. 박포수는 새벽에 마당에 나가 봤다. 마당엔 눈이 한자나 쌓였고 개집은 온통 눈에 덮여 있었다. 박포수는 아차했다. 그는 급히 큰소리로 개들을 불러봤다. 개집 입구를 덮고 있던 눈벽이 깨어지더니 개들이 힘차게 뛰어나왔다. 풍산개는 눈가루를 털면서 우렁차게 짖고 있었다. 그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일과인 훈련을 기다리고 있었다.
“됐어!”
박포수도 소리를 지르면서 개들과 함께 눈밭에서 뒹굴었다.
“덤벼, 덤벼!”
개들은 짚단 위에 멧돼지 껍질을 덮어씌워 만든 가짜 적에게 돌진하여 물어뜯었다. 날카로운 이빨에 멧돼지 껍질이 푹푹 찢겼다.
“덤벼, 덤벼!”
박포수도 신이 나 가짜 멧돼지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티베트개는 두꺼운 피하지방으로 추위를 견디고 있었으나 풍산개는 격렬한 운동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풍산개는 100평이나 되는 마당이 좁다고 뛰어다니면서 티베트개에게 편안하게 쉴 틈도 주지 않았다. 그들이 생후 8개월째 되던 어느 날 박포수는 덫에 걸렸던 토끼를 마당에 풀어놓았다.
토끼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으므로 재빠르게 도망가고 있었다. ‘덤벼’ 라는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풍산개에게는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왕성한 엽욕(獵慾)이 있었다. 훈련도 시키지 않았는데 풍산개는 무섭게 토끼에게 덤벼들었다. 뒤에서 덮쳐 토끼를 짓누르려다가 실패한 풍산개는 토끼의 앞길을 막으면서 정면공격을 했다. 토끼는 얼핏 몸을 돌리려고 했으나 풍산개의 앞발이 빨랐다. 앞발로 토끼를 때려눕힌 풍산개는 다음 순간에 벌써 토끼의 목줄을 끊어버렸다.
그때까지 공연히 따라다니기만 했던 티베트개도 먹는 데는 빠지지 않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들은 각기 토끼의 뒷다리를 물고 쭉 찢어버렸다. 그때 박포수가 소리쳤다.
“지켜, 지켜! … 먹으면 안 돼!”
개들은 토끼를 슬그머니 놓았다.
“갖고 와! 이리로 갖고 와!”
풍산개가 죽은 토끼의 시체를 물어다 주인 앞에 놓았다. 박포수는 크게 기뻐했다. 개들은 평소 받았던 훈련대로 주인의 명령에 따랐다. 짐승을 잡아놓고 뜯어먹으려는 강한 본능을 억제하고 주인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박포수는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토끼의 내장을 뽑아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먹어! 먹어도 좋아!”
그건 그들이 사냥을 잘 한데 대한 포상이었으며 앞으로의 관례가 될 것이었다. 개들은 그로써 사냥을 잘 하면 주인으로부터 사냥감의 일부를 받는다는 관례에 따르게 될 것이었다.
박포수는 그 다음엔
앞다리 하나가 부러진 멧돼지를 마당에 풀어놓았다.
박포수는 일부러 그 멧돼지를 죽이지 않고 그물을 던져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 방법은 맹수의 어미들이 새끼에게 사냥을 하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쓰는 방법이었다. 사자도 그렇지만 범도 반쯤 죽인 짐승을 새끼들에게 던져 주었다.
멧돼지는 몸무게가 40관(약 160 Kg)이나 되는 놈이었으며 비록 앞다리 하나를 쓰지 못했지만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멧돼지는 마당 구석까지 몰리자 털을 뻣뻣하게 세우고 개들과 대치했다.
티베트개가 멧돼지의 정면에서 덤벼들었다. 적의 한쪽 어깨나 앞발을 물어 옆으로 비틀어 쓰러뜨리려는 작전이었다. 며칠 전 살쾡이와 싸웠을 때도 그렇게 해서 쓰러뜨린 다음 앞발로 짓눌러 목줄을 끊어버렸다. 티베트개는 그 경험을 살려 멧돼지에게 같은 전법을 썼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멧돼지는 살쾡이와 달랐다. 멧돼지는 나직하게 숙이고 있던 대가리를 갑자기 쳐들면서 주둥이와 송곳니로 개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티베트개는 큰 충격을 받고 나가떨어졌다. 다리 하나를 쓰지 못하던 멧돼지였기에 치명상은 입지 않았으나 그래도 가슴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풍산개도 역시 멧돼지의 주둥이에 당해 뒹굴었다. 티베트개보다는 움직임이 빠른 풍산개는 얼른 송곳니는 피했으나 주둥이에 받쳤다. 개들은 그걸로 멧돼지의 주둥이와 송곳니는 무서운 무기이며 멧돼지의 정면에서 함부로 덤벼들다가는 당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개들은 그래도 전의를 잃지 않았다. 여느 개 같으면 깽 하고 꼬리를 말고 도망쳤겠지만 그들은 역시 용맹한 개들이었다. 개들은 이번엔 측면에서 공격을 했다. 양측 측면에서 두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자 멧돼지는 당황했다. 왼쪽에서 덤벼드는 개를 막기 위해 그쪽으로 몸을 비틀자 바른쪽의 개가 덤벼들었고, 그놈에게 반격을 하니 이번엔 왼쪽의 개가 덤벼들었다.
하지만 개들도 멧돼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없었다. 그놈은 뻣뻣한 털과 두껍고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빨이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개들과 멧돼지는 한 시간 동안이나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멧돼지는 물론 개들도 지쳐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었으나 그래도 그들은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긴 면에서도 그들은 합격점을 받을만했다.
그때 박포수가 총을 들어 올리면서 개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돌아와! 돌아와!”
개들은 싸움을 중단하고 돌아왔다. 박포수는 총을 발사했다. 개들은 엄청난 총성과 총구에서 뿜어 나오는 화염을 보고 크게 놀라 펄쩍 뛰어올랐다. 멧돼지는 첫 탄에 벌써 쓰러졌으나 박포수는 2탄 3탄을 쏘았다. 개들에게 총이 뭐라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개들은 그걸 충분히 인식한 것 같았다. 주인이 갖고 있는 그 기다란 쇠붙이는 무서운 무기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개들은 그 쇠붙이가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불을 뿜으며 멧돼지가 맥없이 죽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총을 사용한 훈련이 되풀이 됨에따라 총이 발사되면 멧돼지 뿐만이 아니고 노루나 토끼도 죽고, 나는 꿩까지도 떨어진다는 사실도 배웠다.
개들은 또한 총은 아무리 발사되어도 자기들에게는 해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하고 바로 옆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져도 겁을 내거나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주인이 총을 다루는 자세를 보고 총이 발사되는 시기도 알 수 있게 되었고, 주인이 그런 자세를 하면 주인의 지시가 없어도 얼핏 과녁이 되고 있는 짐승 곁에서 물러날 줄도 알았다. 개들, 특히 풍산개 백두는 사냥개로서의 소질이 이미 갖추고 있는 개였다.
본디 사냥개의 실지 훈련은 영도견 밑에서 영도견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백두는 영도견 없이도 직접 주인으로부터 그걸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백두가 용감하고 영리한 개라고 해도 사냥 훈련에는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한 마리의 개가 사냥개로 완성되려면 적어도 2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2년이 되어야만 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한 성견(成犬)이 되는 법이었다.
박포수도 그때를 기다리면서 꾸준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백두는 모진 만주의 추위를 이겨냈다. 영하 40도의 추위에서도 백두는 얼음덩이가 되어 뛰어다녔다. 입에서 내뿜는 숨이 금방 얼어붙기 때문에 개의 대가리와 털은 온통 얼음덩이가 되었는데도 백두는 짐승을 추적하면서 싸웠다.
[경비견 특성과 사냥개 특성]
백두보다 털이 길고 지방질이 많은 티베트개 타본이 오히려 소극적이었다. 타본은 박포수의 산막 근처 산림에 들어오는 짐승들에게는 사납게 덤벼들어 앞발로 때려누이고 물어죽였으나 원정사냥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놈은 산막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면 자꾸만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건 그놈이 사냥개의 소질보다는 경비견의 소질을 더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졌다.
티베트개도 본디는 사냥을 잘 하는 사냥개였으나 중국 사람들이 그 개를 만주로 데리고 온 후 주로 경비견으로 훈련시키고, 그렇게 사역했기 때문에 어느새 경비견 속성에 길들여진 것 같았다.
따라서 사냥개인 백두와 경비견인 타본은 약간의 마찰을 일으켰으나 그 마찰은 언제나 백두 쪽이 이겼다. 백두가 수컷이고 두목이었기 때문이다.
[멧돼지 사냥]
개들이 생후 1년 3개월이 경과한 다음해 4월.
박포수 형제는 개들을 데리고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 첫 사냥이었다. 그때쯤, 개들은 신체적으로는 완전히 성장한 젊은 개들이었다. 사냥터에 도착한지 두 시간 만에 개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백두는 목줄을 쥐고 있던 박포수를 끌고 가려고 설치고 있었고, 티베트개 타본도 박포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멧돼지의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그동안 박포수는 멧돼지 기름을 먹이에 혼합했고, 멧돼지 기름을 바른 막대기 등을 훈련도구로 삼았기 때문에 개들은 멧돼지 냄새에 민감했다. 박포수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개들의 목줄을 풀어주면서 엉덩이를 쳤다.
“가! 가서 멧돼지를 잡아!”
개들은 달려갔다. 그들이 짖는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박포수 형제도 개들이 짖고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약 5분쯤 달려가고 있을때 앞서 가던 희순포수가 소리쳤다.
“형님, 멧돼지 발자국입니다. 여기 발자국이 보여요!”
개들이 멧돼지의 냄새를 맡고 추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훌륭한 개들이었다. 이제 겨우 한살이 넘은 개들이었는데도 그들은 벌써 멧돼지를 사냥할 줄 알았다. 추적한지 한 시간쯤 되자 저쪽 산 너머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거리가 멀었다. 개들은 사람과 너무 떨어져 있었다. 숙련된 사냥개 같으면 사람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렇게 해야만 위험할 때 주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는 그걸 모르고 멧돼지의 냄새만 맡고 덮어놓고 달려간 것 같았다. 그 개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그건 훈련시킬 방법이 없었다. 실지 사냥을 해가면서 스스로 알아야 될 일이었다. 개들이 짖고 있는 소리로 봐서 그들이 멧돼지를 발견하고 멧돼지와 싸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멧돼지는 40관(160 Kg) 정도의 큰놈이었는데 과연 개들이 그놈을 붙잡아 둘 수 있을까 ? 박포수 형제는 10리나 되는 산길을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개들이 짖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멧돼지의 거친 고함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박포수 형제는 마지막 구릉을 넘어섰다. 바로 구릉 중복에 개들과 멧돼지가 대치하고 있었다.
“잘 한다. 잘 해!”
희순 포수가 소리를 질렀다. 포수들은 총을 쏘아 손쉽게 멧돼지를 잡았다.
[사냥과 경비]
개들은 멧돼지 사냥에 익숙해졌으나 박포수가 살고 있는 장백산맥 서쪽 기슭에는 멧돼지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멧돼지 사냥을 시작한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개들은 엉뚱한 짓을 했다. 그날 산막을 떠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도 개들이 흥분하여 날뛰고 있었다. 냄새를 맡았다는 신호였다. 산막 가까운 곳에 멧돼지가 있을 리가 없었는데 그래도 혹시나 싶어 박포수는 줄을 풀어주었다.
개들은 달려갔는데, 그날은 풍산개보다 티베트개가 앞장서 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먼저 달려가는 풍산개는 마치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천천히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뭔가 좀 이상했다. 티베트개는 벌써 무섭게 짖고 있었다. 그쪽으로 달려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티베트개가 싸우고 있는 건 멧돼지가 아니었다. 상대는 이리였다. 체구가 큰 삼림이리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덤벼드는 티베트개를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풍산개는 마치 싸움을 구경이라도 하고 있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삼림이리는 달려오는 박포수를 발견하더니 재빨리 도망갔는데 티베트개는 계속 그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러나 이리는 티베트개보다 빨랐다. 티베트개는 산 너머까지 따라갔다가 되돌아왔는데 의기양양했다. 박포수는 그제야 왜 그 티베트개가 이리에게 덤벼들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티베트개는 자기의 영토를 침범한 이리를 쫓아버린 것이었다. 박포수는 그때는 그저 웃고 넘겨버렸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웃고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게 이리였으므로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상대가 이리가 아닌 맹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상대가 범이나 표범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비견은 자기 영토나 집에 침입한 적에 대해서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끝까지 영토나 집을 지키는 것이 티베트나 만주의 경비견이었었다. 범이나 표범에게 물러서지 않고 대항한다면 어떻게 될까?
박포수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티베트개는 산막 주위 500m 이내를 자기의 영토 또는 주인의 영토라고 간주하고 있었다. 놈은 사냥을 하러 갈 때도 자기의 영토를 항상 살피고 있었다. 영토를 침범하여 주인을 해치려는 짐승이 없는지를 거의 신경질적으로 살피고 있었다.
박포수는 어느 날 아침 멧돼지 사냥을 하러 산막을 나서다가 갑자기 티베트개를 쥐고 있던 목줄을 놓쳐버렸다. 티베트개는 긴 목줄을 끌면서 산막 뒤에 있던 잡목림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티베트개는 무섭게 짖고 있었는데, 그 소리에는 살기가 느껴졌다.
그러자 잡목림 안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포수는 풍산개의 목줄도 놓아주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티베트개가 총탄에 맞은 듯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계속 짖고 있었다.
잡목림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 그림자들이 보였다. 총탄이 또 날아와 박포수의 귓전을 스쳐갔다. 박포수도 발포했다. 뒤 따라 오던 희순포수도 발포했고 산막 안에서도 조카 명수포수가 뛰어나오고 있었다. 잡목림 안에 숨어있던 자들은 도망가고 있었다. 두 명인 것 같았다. 박포수는 추격을 하지 않고 개들을 불러들였다.
티베트개는 총탄에 맞아 귀 끝이 좀 잘라졌으나 큰 상처는 아니었다. 박포수는 잡목림 안을 조사했다. 도망간 두 놈은 잡목림의 숲속에 엎드려 산막을 살피고 있었던 것 같았다. 놈들은 산막을 덮치려고 계획한 것 같았으나 개들 때문에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았다. 핏자국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두 놈 중의 한 놈은 총탄에 맞은 것 같았다.
박포수는 그날 사냥을 중지하고 산막을 지키고 있었는데, 정오께 대여섯 명의 중국인들이 찾아왔다. 개척마을 사람들이 고용한 총잡이들이었다. 그들은 두 명의 살인강도들을 쫓고 있었다.
두 명의 살인강도는 하얼빈에서 강도질을 하다가 관헌에 쫓겨 산으로 도망온 놈들이었는데, 산에서도 벌써 네 명의 개척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부녀들을 겁탈했다는 말이었다. 잔인무도한 자들이었으며 우선 저항을 할 만한 남자들을 죽여 놓고 겁탈과 약탈을 했으며 그놈들이 박포수의 산막을 살폈던 이유도 뻔했다. 총잡이들은 두 명이 흘리고 간 핏자국을 보고 박포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들은, 이제 쉽게 놈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핏자국을 추적했다.
그들은 그날 저녁 살인강도들을 잡았다. 강도들은 형제였는데 형이 어깨에 총탄을 맞은 동생을 업고 가다가 총잡이들의 추격을 받았다. 총격전 끝에 형은 사살되고 동생은 생포되었다고 했다. 물론 총잡이들은 그 공으로 개척마을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돈을 받았을 것이었으나 그 공의 일부는 티베트개한테 있었다.
티베트개는 경비견으로서의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티베트개는 산막을 나섰을 때 벌써 자기의 영토인 잡목림에 침입한 사람들의 냄새를 맡고 그들을 쫓아버리려고 달려갔다. 물론 그때 풍산개도 그 냄새를 맡았을 것이나 그 개는 달려가지 않았다. 풍산개가 달려가지 않았던 이유는 그 냄새가 사람의 냄새였기 때문이었다. 사냥개인 풍산개는 짐승이 아닌 사람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경비견과 사냥개는 그런 점에서 달랐다.
경비견은 자기를 지키려는 본능에 의해 움직였고 사냥개는 짐승을 죽이려는 본능에 의해 움직였다. 경비견이 싸워야 할 대상은 자기나 자기의 무리 또는 주인의 영토를 침입한 모든 동물이었으며 그중에는 동족인 개나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냥개가 싸워야 할 대상은 자기나 자기 주인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동물에 한정되어 있었다. 동족인 개나 사람은 먹이가 될 수 없었으므로 사냥개의 적이 될 수 없었다. 경비견과 사냥개는 투쟁 대상뿐만 아니라 싸우는 방법에서도 달랐다.
경비견은 자기방위가 목적이었으므로 적이 자기의 영토 밖으로 도망가 버리면 더 이상 추격을 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경비견의 행동은 수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사냥개는 사냥의 대상을 죽이려고 했다. 사냥의 대상이 어디로 도망가든 추격을 하며 상대를 죽여야만 했다. 그런 면에서 사냥개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였다.
박포수는 티베트개가 침입자를 발견하고 과감하게 덤벼든 점을 크게 평가했으나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고도 덤벼들지 않았던 풍산개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았다. 그 개는 사냥개였기 때문이다. 풍산개도 주인이 자기의 목줄을 놓아주고 쫓아가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들이 적이라는 걸 깨닫고 티베트개에 가세하여 침입자를 쫓아버렸다. 사냥개이기는 하나 경비견의 소질도 갖추고 있는 만능 개였다.
[불곰 사냥]
젊은 개들의 모험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들은 그해 초가을에 엄청난 짓을 했다. 그때 박포수는 개들을 풀어놓고 그 뒤를 쫓아가다가 자기가 큰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개들이 멧돼지의 냄새를 맡은 것으로 알았으나 개들이 쫓는 짐승은 불곰이었다. 뒤늦게 풀밭에 찍혀있는 쟁반만한 발자국을 보고 박포수 형제는 크게 당황했다. 물론 상대가 곰이라는 걸 알았으면 사냥은 중단했을 것이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돌아오라고 호루라기를 불어도 개들이 들을 수 없는 거리였다.
목줄이란 포수와 사냥개의 의사가 소통되는 기구였다. 포수는 개들이 짐승 냄새를 맡았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목줄을 놓아달라고 독촉하더라도 성급하게 목줄을 풀어주면 안 되는 법이었다. 계속 목줄을 쥐고 추적을 하다가 상대가 어떤 짐승이라는 걸 발자국 등으로 확인한 다음에 목줄을 놓아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는 그곳이 멧돼지들이 서식하는 사냥터였기 때문에 개들이 또 멧돼지의 냄새를 맡은 것이라고 속단을 해버렸다. 박포수는 그 개들에게 아직 곰사냥의 훈련을 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개들은 곰 사냥을 할 방법을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개들이 멧돼지를 잡는 방법으로 곰에게 덤벼들면 큰일 난다. 멧돼지는 정면공격을 피하고 측면이나 후면 공격을 하면 맥을 추지 못하는 짐승이었으나 곰은 전후좌우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맹수였다. 멧돼지에게 하는 것처럼 곰에게 바싹 접근하다가 곰의 앞발에 얻어맞거나 잡히게 되면 사냥개는 살아날 길이 없었다. 곰이 앞발로 후려치면 황소의 목뼈도 탈골되는데 개들이 무사할 리가 없었다.
박포수는 비상수단을 강구했다. 그는 동생에게 먼저 가라고 지시해놓고 자기는 공포를 계속 쏘면서 달려갔다. 300여 미터를 달렸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공포는 이산 저산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박포수가 공포를 쏜 이유는 곰을 위협하기 위해서였다. 개 뒤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함부로 개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견제할 생각이었다. 물론 곰이 그 소리를 들으면 겁을 먹고 계속 달아날 염려가 있었으나 그래도 개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나았다.
박포수가 예측했던 대로 곰은 계속 달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 개들은 집요하게 추격하고 있었다. 추적은 서너 시간이나 계속되었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곰과 개들은 이미 땅거미가 깃들이고 있는 어두운 계곡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박포수는 개들이 날이 어두워지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꼭 그렇게 훈련을 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사냥을 했을 때 날이 어두워지면 사냥을 중단하고 개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그 관례에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 개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짖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추격을 하면서 곰과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젊은 개들의 무모한 행동이었다. 가끔 개들이 짖는 소리가 뚝 끊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박포수는 그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혹시 개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들은 잠시 후 다시 짖고 있었다. 위기를 넘긴 것이다. 박포수 형제도 쉬지 않았다. 보통 포수들 같으면 그럴 경우엔 야영을 하다가 날이 밝은 다음 추적을 했을 것이었으나 박포수는 손전등으로 어둠을 헤치며 뛰어갔다. 박포수는 곰을 잡겠다는 생각보다 개들을 구출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박포수는 그렇게 뛰어가면서 그 개들이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삼림 속에서 살고 있던 박포수 집안 식구들에겐 그 개들은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을 무렵 먼저 달려가던 희순포수는 어느 계곡에서 곰과 개들이 싸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개들과 곰은 약 3m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는데 개들은 여전히 요란하게 짖고 있었다. 그러나 밤새 개들에게 쫓긴 곰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곰은 큰 바위를 등 쪽에 두고 이젠 지루한 싸움에 마지막 결판을 내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박포수가 쏜 총성이 또 울려 퍼졌는데 곰은 그 소리를 듣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개들은 총소리를 듣자 용기를 얻은 듯 또 목이 터지라고 짖으면서 곰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염려할 건 없었다. 개들은 덤벼드는 체만 했지 실제로 덤비지는 않았다. 2m 앞까지 육박했다가 날쌔게 몸을 돌려 도망갔다.
개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 곰과 싸우다가 그 거대한 짐승이 멧돼지와 다른 무서운 맹수라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놈에게 잡히거나 얻어맞으면 치명상을 입는다는 것도 알고 그놈과 육탄전을 벌이는 걸 피하고 있었다. 개들은 또한 그 맹수가 자기들보다는 동작이 느리다는 걸 간파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놈이 달아나지 못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그렇게 싸우고 있으면 긴 쇠붙이를 갖고 있는 주인들이 달려와서 놈을 죽일 것이 아니겠는가?
젊은 개들은 이미 사냥개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훈련을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스스로의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희순포수가 달려가자, 개들은 이젠 됐다는 듯이 좌우로 흩어졌고 빈 공간에 곰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곰은 뒤늦게 싸울 상대가 교체된 걸 알고 당황했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곰이 벌떡 일어났다. 곰의 나쁜 버릇이었다. 두 발로 일어나 자기를 크게 보이게 하여 상대를 위압하려는 행동이었는데, 그건 총을 들고 있는 포수 쪽에서 보면 쏘아달라는 말과 같았다.
희순포수는 발포했다. 곰이 가슴팍에 총탄을 맞고 무릎을 꿇었다. 곰은 그래도 다시 일어나려고 했으나 이번엔 뒤따라온 박포수의 라이플 총탄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갔다. 곰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곰이 쓰러지자 개들도 쓰러졌다. 밤새 곰과 싸웠던 개들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으며 혀를 길게 빼고 배를 들먹이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식욕도 없는 듯 박포수가 던져준 곰의 내장도 먹지 않았다.
개들은 한 달 후에도 같은 방법으로 또 불곰 한 마리를 잡았다. 이젠 곰이 어떤 짐승이라는 걸 알고 자신이 생긴 것 같았다. 박포수는 그 후부터는 상대가 멧돼지가 아닌 곰을 발견했을 때도 안심하고 목줄을 풀어주었다. 개들은 곰도 잡을 수 있는 맹수사냥개가 된 것이다.
[호랑이 사냥]
그러나 박포수는 풍산개를 보내준 무산 윤포수의 충고를 잊지 않고 있었다. 개들에게 절대로 범사냥을 시키지 말고 표범사냥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충고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곰이나 멧돼지는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싸움의 주도권을 개가 쥐게 된다. 싸우고 싶으면 덤벼들고 싸움이 불리하면 도망갈 수 있다.
그러나 범과 표범은 개보다 빠르다. 주도권은 개가 아니라 그쪽에서 쥐게 된다. 그들에게는 도망가 봐야 소용이 없었다. 개는 100m를 달리는데 7∼8초가 걸리지만 범과 표범은 5∼6초면 족했다. 그래서 박포수는 개들에게는 범이나 표범사냥은 시키지 않았다.
언젠가 개들이 짐승의 냄새를 맡았다는 신호를 보낸 일이 있었다. 빙빙 돌면서 목줄을 풀어달라고 대가리를 흔드는 동작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 동작이 여느 때와는 좀 달랐다. 여느 때 같으면 개들이 눈이 번뜩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오는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뭔가 조심스러운 태도였으며 어찌 보면 불안한 것 같기도 했다. 박포수는 목줄을 풀어주지 않았다. 목줄을 잡고 그대로 추적을 시켰다.
얼마 안가서 짐승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고양이의 발자국을 몇 십 배나 확대해놓은 것 같은 발자국이었다. 만주 삼림(森林)의 최강자인 대호의 발자국임이 분명했다. 개들은 그곳에서 정지하여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개들은 전에 범을 본 일이 없었다. 그들은 다만 범의 냄새를 맡고 있을 뿐이었으나 벌써 그 짐승이 예사 짐승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집고양이나 살쾡이 따위와는 전혀 다른 괴물이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박포수는 개들의 목줄을 꽉 움켜잡고 되돌아섰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산막으로 돌아갔다. 도망간 것이다. 박포수는 그렇게 함으로써 개들에게 그 짐승은 무서운 짐승이며 사냥을 할 수 없는 짐승이라는 걸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만주에서는 개들을 데리고 범사냥을 하는 포수들이 있었다. 박포수와 잘 아는 사이인 백계 러시아인 라지코프도 그런 사냥꾼이었다. 라지코프는 몇 년 전 초겨울에 박포수의 산막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개의 부대를 인솔하고 있었다. 열두 마리의 개 군단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들이 짖는 소리에 산막은 물론 온 산림이 시끄러워졌다.
라지코프가 데리고 있던 개들은 거의가 잡견이었다. 여기저기서 헐값으로 사들인 개들이었으며 훈련도 제대로 시킨 것 같지 않았다. 사냥개로서 제대로 훈련이 된 개는 두 마리 뿐이었으며 그들이 다른 개들을 이끌고 있었다. 다른 개들은 그저 그 두 마리의 개들이 하는 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라지코프는 박포수의 산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떠났는데, 약 1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전처럼 심하게 시끄럽지 않았다. 열두 마리의 개들이 네 마리로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개들은 라지코프기 등에 메고 있는 호피(虎皮)와 바꾼 것이었다. 그 범은 여덟 마리의 개를 죽였으나 결국 자신도 껍질이 되어버렸다. 라지코프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여덟 마리의 개를 죽인 것은 큰 손실이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호피는 아무리 헐값으로 내놓아도 천원은 받을 것인데 여덟 마리의 개 값은 고작 몇 십원이니까. 저 두목 개들만 살아있으면 밑천은 뽑고 남은 셈이지요.”
라지코프의 범 사냥은 간단했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개들을 풀어 놓았다. 개들은 두목개들을 따라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범의 냄새를 맡으면 추적을 시작한다.
두목개들은 천천히 추적을 했다. 가끔 라지코프가 부는 호각소리가 들리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추적을 했다. 약 500m의 거리였는데, 그런 거리 같으면 범이 반격을 해와도 주인에게 도망갈 여유가 있었다. 개들의 추적을 받은 범은 그 수에 눌려 우선은 도망간다. 개들은 수가 많았으며 옛날 무리생활의 본능이 되살아나 범도 무서워하지 않고 추적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수가 많더라도 그까짓 개들에게 언제까지나 쫓겨 다니기만 할 범이 아니었다. 범이 반격을 시작하자 그때까지 맨 앞장을 서고 있던 두목개 두 마리는 재빨리 달아났으나 나머지 개들은 도피가 늦었다. 범은 우왕좌왕하는 개들을 덮쳐 닥치는 대로 치고 물었다. 범과 개들의 난투가 벌어졌는데, 그 결과는 뻔했다. 뭣보다도 범은 개보다 빨랐다. 개가 아무리 빨리 도망가도 범은 쉽게 개를 잡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힘차게 짖고 있던 개들의 소리가 낑낑하는 비명소리로 변했다. 개들은 두개골이 터지거나 배가 찢겨 죽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라지코프는 범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라지코프는 개사냥에 열중하고 있던 범을 총을 쏘아 잡았다. 사냥은 끝났다. 범 한 마리가 죽었고 개들도 두목개 두 마리만 제외하고 모두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다. 라지코프는 다리가 부러져 낑낑거리고 있는 개 한 마리도 총을 쏘아 죽여 버렸다.
다리가 부러진 개는 소용이 없었으며 그런 잡견 따위는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었다. 그게 라지코프의 범 사냥법이었고, 만주에서 개를 시켜 범을 사냥하는 포수들의 대부분도 그런 사냥을 했다. 하지만 박포수는 그런 사냥 방법을 좋아하지 않았다. 많은 개들을 소모품으로 죽이는 방법은 너무나 잔인했다.
그러나 라지코프도 인간적인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잡견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했지만 영도견 두 마리만은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았다. 라지코프는 틈만 나면 개들의 털 손질을 해주었고 자그마한 상처에도 소독을 해주고 약을 발라주었다.
개들 또한 주인의 지시가 없어도 미리 주인의 눈치를 보고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개들은 주인이 걸어갈 때 목줄이 없는데도 그 옆에 붙어 묵묵히 따라갔고, 주인이 잠을 잘 때 주위에서 경비를 했다. 그 개들은 고리드개였다. 고리드는 북만주에 사는 소수민족이었는데, 수렵을 전업으로 삼고 있었다. 고리드개는 만주의 사냥꾼들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맹수 사냥개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리드족은 자기들이 사육하는 개를 다른 민족들에게 나눠주지 않았으므로 다른 민족 사냥꾼들은 고리드개를 구입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라지코프도 잡은 표범 한 마리를 주고 겨우 두 마리의 고리드개 새끼를 입수했었다.
박포수는 처음 그 고리드개를 봤을 때 풍산개인 줄로 알았다. 고리드개는 그만큼 풍산개와 닮았던 것이다. 하긴 시베리아 만주 한국 일본의 개들은 모두 모습이 비슷했다. 뾰족하게 선 귀와 위로 뻗었거나 말려 올라간 꼬리는 극동 개들의 공통점이었다.
고리드개와 풍산개는 크기가 거의 같았고 하얀 털도 같았으며 콧등이 검은 점도 같았다. 용감한 기상과 다부진 지구력도 닮은 것 같았다. 고리드개가 풍산개와 같은 핏줄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퉁구스족이 고리드족이나 배달민족들과 같은 혈통이고 그 문화가 교류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감안하면 고리드개의 핏줄 일부가 풍산개에 이어져 그게 진돗개와 일본개들로 이어졌다는 가능성도 있을만 했다.
고리드개뿐만 아니었다. 티베트개의 피도 또한 몽고 만주를 거쳐 한국의 개들에게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삽살개 등 거칠고 긴 털을 갖고 있는 개들은 티베트개의 피가 섞인 것 같았다. 비록 몸은 왜소해졌지만 털은 티베트개와 같은 성질의 것으로 보여졌다.
박포수의 풍산개와 티베트개는
생후 2년 쯤에는 아주 강한 사냥개가 되었다.
그들은 그때쯤 상대에 따라 다양한 사냥을 했다. 사슴이나 노루는 포수들이 오기 전이라도 자력으로 물어 죽였고, 멧돼지도 작은 놈일 경우에는 포수들의 수고를 덜어 주었다. 그러나 멧돼지의 큰 놈이나 곰에게는 위험한 도전을 하지 않고 포수들이 올 때까지 붙잡아 두기만 했다. 그들을 죽이는 일은 포수에게 맡겼다.
개들은 범이나 표범 사냥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들이 발견될 때마다 주인이 목줄을 잡고 되돌아가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나중엔 스스로 범이나 표범의 냄새를 맡으면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런 행동으로 위험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개 측에서 싸움을 피해도 상대가 덤벼들면 어찌할 수 없이 싸워야만 했다. 개가 범을 사냥하는 경우가 아니라 범이 개를 사냥하는 경우였다. 개들은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범이 접근해오면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나 때로는 그게 안 될 경우가 있었다. 강한 바람이 등 뒤에서 앞쪽으로 불어대는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개는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 있는 범의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반면 범은 개의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었다. 범이 개를 먼저 발견하면 위험해진다. 범이나 표범은 개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박포수가 우려했던 일이 그해 가을에 일어났다.
그때 개들은 멧돼지를 쫓고 있었으나 추적은 지지부진했다. 강한 바람이 등 뒤쪽에서 앞쪽으로 불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개들은 지그재그로 걸어가면서 멧돼지의 냄새를 맡으려고 했다. 개들은 어느 바위산 기슭에서 산중턱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박포수는 산기슭에 펼쳐져 있는 침엽수림 안에 있었다. 그런데 만주범 한 마리가 산 위쪽 바위틈에서 개들을 먼저 발견했다. 만주범은 그곳에 엎드려 개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들은 그걸 몰랐다. 그들은 멧돼지 추적에만 열중하면서 산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개들은 범이 숨어있는 곳에서 불과 30m쯤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으나 범은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범은 바람 때문에 개가 자신의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앞서 가던 풍산개는 범의 냄새를 맡지 못했으나 그 개는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풍산개는 그 발자국을 보고 범이 가까이 있다는 걸 알았다. 풍산개는 재빨리 몸을 돌려 산기슭 쪽으로 도망갔고 티베트개도 그 뒤를 따라갔다. 물론 범은 개들을 추격했다. 그 산은 꽤나 경사가 급한 바위산이었기 때문에 산기슭에서는 위쪽을 잘 볼 수가 없었다.
박포수는 개도 범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바위 사이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더니 두 마리의 개가 뛰어나왔다. 개들은 그대로 박포수의 옆을 지나가 버렸는데 방금 개들이 뛰어나온 바위 사이에서 범이 뛰어나왔다 범은 뛰어나온 여세를 몰아 그대로 박포수에게 덤벼들었다. 총을 쏠 수도 없었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범은 이미 20여m 앞까지 육박하고 있었는데 박포수의 총은 안전장치가 걸려 있었다. 총을 들어 올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길 시간 여유가 없었다. 박포수는 아찔했다. 열 마리가 넘는 범을 잡은 그였지만 그때는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범을 피해 주인 옆을 빠져나갔던 풍산개가 되돌아서 범에게 돌진했다. 티베트개도 또한 범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그들은 주인의 위기를 알아차리고 주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개들의 그런 역습을 받고 범이 당황했다. 범은 얼핏 공격목표를 바꿨다. 이미 사람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도약을 하고 있던 범은 공중에서 몸을 돌렸다. 풍산개는 그대로 범에게 덤벼들었고 범과 개는 부딪쳤다. 범과 부딪친 풍산개는 질주하는 차에 받힌 것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다가 땅바닥에 뒹굴었다. 풍산개는 움직이지 못했다.
범도 그 충돌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범은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박포수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지지 않았다. 소총을 어깨 위에 올리고 발포했다. 불과 4∼5m의 거리였으므로 총탄이 빗나갈 리가 없었다. 대가리에 총탄을 맞은 범은 주저앉았다.
그때까지 박포수의 옆에서 으르렁거리던 티베트개가 덤벼들었는데도 범은 저항하지 못했다. 범이 치명상을 입고 죽었다는 걸 확인한 박포수는 저쪽 마른 풀 위에 쓰러져 있는 풍산개 쪽으로 달려갔다. 풍산개는 눈을 감고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 박포수는 풍산개가 죽은 줄로 알고 와락 껴안았는데, 개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박포수는 얼른 개의 심장을 주물러주었다 아주 약했지만 심장의 고동은 멈추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살아있어, 아직도 살아있어!...”
풍산개는 얼마 후 슬며시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멍하니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 물체가 뭣인지를 알아차렸다. 개는 주인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걸 알고 안심하는 것 같았다. 박포수는 개가 몸을 자기에게 맡기는 것을 느꼈다. 풍산개는 이렇다 할 외상은 없었으며 범과 부딪쳤을 때 입은 충격으로 약간의 피가 입과 코에서 흘러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풍산개는 범의 앞발에 맞은 것이 아니고 단지 어깨와 어깨가 부딪쳤을 뿐이었다.
“됐어, 이젠 됐어!”
사실 사람도 개도 구사일생을 했다. 범이 갑자기 덤벼들었을 때 그 개가 아니었더라면 박포수는 죽었을 것이었다. 개가 도망가다가 되돌아서 범에게 덤벼든 행동은 사냥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냥개란 짐승을 포수 앞으로 유인해주면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이었다. 짐승과 싸우는 일은 포수가 맡아 할 일이었다. 그 풍산개도 평소에 그렇게 훈련을 받아왔고 또 훈련을 받은 대로 행동했다. 그런데도 풍산개가 범에게 덤벼든 것은 분명히 주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풍산개뿐 만이 아니고 티베트개도 주인의 옆에 붙어 주인을 경호하고 있었다.
박포수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그 개들을 단순한 사냥개로 부리지 않았다. 그들은 박포수에게는 생사를 같이 해야 될 친구들이 되었던 것이다.
[끝]
출처 : 김왕석의 [수렵야화]
'대가만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풍산개 복실이 드디어 산이를 만나다! (0) | 2016.07.25 |
---|---|
풍산개 복실이 드디어 장가 가다..ㅎㅎ (0) | 2016.07.15 |
풍산개 복실이 20개월 때 (0) | 2015.10.23 |
[부산] 풍산개 교배신청 받습니다 (1) | 2015.08.09 |
풍산개 종견 복실이 (0) | 2015.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