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개 이야기

동물들의 왕국 무산(茂山)]

윤 승환 2015. 7. 20. 20:35

원문 출처: 김왕석의 [수렵야화]

 

 

 

 

 

 

[동물들의 왕국 무산(茂山)]

 

 

영국왕실박물관의 연구원인 리치박사와 일본인 와다교수 일행의 학술조사단은 1935년 10월초 만주에서의 동물연구를 끝냈다. 시작한 지 꼭 1년만에 연구를 끝내고 다음 연구지역인 조선으로 건너갔다. 와다교수는 직접 조선총독부와 교섭했는데 총독부는 처음에는 함경북도 무산(茂山)의 삼림에는 후데이센진(不逞鮮人·불온조선인) 등이 드나드는 위험지대라는 이유로 허가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와다교수의 강한 요청에 의해 결국은 허가를 해주었다.

 

소위 후데이센진은 만주의 비적 출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자들이었으며 강도나 살인행위는 결코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이 순수한 학술단체인 동물연구대원들에게 위해를 가할리가 없었다.

 

 

 

 

연구대원들은 두만강을 건너서자 이젠 비적들에게 습격당할 위험이 없어졌다고 한바탕 웃었다. 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큰 강이었는데 북쪽은 만주, 남쪽은 조선땅이었다. 리치박사는 우선 그 강에서부터 만주와 조선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만주의 강은 온통 다갈색의 흙탕물이었으나 두만강은 무섭도록 맑은 물이었다. 깊이가 10 m나 될 것 같았는데도 바닥의 자갈이 그대로 보였다.

 

"뷰티풀, 원더풀 !"

 

리치박사가 감탄사를 연발했으나 맑은 건 강물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먼지가 뿌연 하늘도 수정처럼 맑아지고 있었다. 먼지에 가려 붉게 변색되던 만주의 태양도 본래의 모습대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기후도 달랐다. 세월이 거꾸로 흐르듯 그곳의 기후는 따뜻했다. 만주에서는 이미 여름이 가고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으나 그곳에서는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있는 가을이었다.

 

만주에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가을이니 봄이니 하는 계절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그건 한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그와 엇비슷한 계절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조선에는 여름이나 겨울만큼 긴 봄과 가을이 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름다운 계절이 왔다. 조선인들은 자기들의 땅을 금수강산이라고 부른다는데 리치박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산일대의 산들은 아름답게 단풍이 들고 있었다. 학술상으로 봐서는 그곳은 동만주 일대와 같은 타이가(침엽수 삼림지대)지대였다.

 

 

 

 

 

 

 

 

시베리아의 툰드라(동토지대 ; 冬土地帶)지대

남쪽에 있는 광대한 타이가 남쪽끝이 바로 무산이었다.

 

사실 무산과 서쪽 백두산 사이, 두만강 남쪽 일대에는 수해(樹海)라고 불리는 광대한 침엽수림이 있었으나 거기엔 침엽수가 아닌 활엽수들도 섞여 있었다. 수해 안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있는 혼합림들도 있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그곳의 산과 산림들은 더없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되고 있었다.

 

캡틴 강(姜)은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본에게 조국을 빼앗길 무렵에 조국을 탈출했던 그는 이제 20여년만에 다시 조국땅을 밟게 된 것이었다.

 

캡틴 강은 강원도 출신 포수였다. 강원도에서 대대로 사냥을 해온 집안이었으며 그도 총 솜씨가 뛰어나 20세때 벌써 왕실 어용포수들의 보조포수가 되었다. 나이가 너무 어려 보조라고 불렀지만 사실상 어용포수였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후 조선인들이 갖고 있던 총을 내놓으라고 포고를 하자 총을 갖고 동남아로 탈출했다. 그때 영국 왕실박물관에서 그의 탈출을 도와줬기 때문에 그는 그후 줄곧 영국왕실박물관에서 일을 해왔다.

 

리치박사는 그걸 알고 몇 번이나 그가 고향에 다녀올 기회를 만들어 주려했으나 성사하지 못하고 있던 참에 조선의 무산지역에서 동물연구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리치박사는 박물관장의 재가가 내려졌을 때도 그 사실을 캡틴 강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가 와다교수의 준비가 완전히 끝나고 출발준비를 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 사실을 캡틴 강에게 알려주었다. 캡틴 강이 조국 땅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본 다른 대원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들을 마중하러 나온 윤원술(尹元述) 포수도 정중하게 캡틴 강을 위로하면서 인사를 했다.

 

윤포수는 직업포수가 아니었다. 그는 유복한 지주였으며 사냥은 취미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산 일대의 산림과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윤포수보다 더 잘 아는 포수는 없었다. 그는 무산의 산과 삼림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산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와다교수는 간곡히 그에게 안내를 부탁했다고 한다. 리치박사도 첫눈에 그가 아주 젊잖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만족했다. 리치박사 일행은 두만강을 건너 무산 마을에 도착하면 곧바로 무산령 서쪽 기슭에 설치한 연구소로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윤포수는 그 계획을 변경시켰다. 국경을 넘는 데 수속의 시간이 걸려 그 길로 연구소로 가려면 도중에 야영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았기에 야영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야수들이 위험하다는 말이었다. 범이나 표범들이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겨울잠을 앞둔 불곰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설치고 있는 것이 뭣보다 위험했다. 윤포수는 그런 불곰이 설치고 있는 지역에는 포수들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 년 전 늦가을에 함부로 무산의 삼림 안을 돌아다니던 경성(京城)포수 두 사람이 범에게 참살 당한 후부터 포수들은 10월과 11월에는 무산의 삼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리치박사를 비롯한 다섯 명의 대원들은 그 말을 듣고 긴장했다. 아름다운 무산의 다른 일면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무산은 극동의 황금사냥터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몇 년 전에도 미국의 루즈벨트포수(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카)가 30여 명의 사냥꾼들과 같이 그곳에서 사냥을 했고 영국 런던엽우회(獵友會) 회장인 콜든경(卿) 등 세계의 명포수들이 그곳에서 사냥을 했다. 무산은 동물분포상으로 봐서 구북구(舊北區)의 남단에 속해 있었으나 구북구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대부분이 몰려 있었다. 시베리아나 만주에 비해 기후가 덜 춥고 산들이 높고 광대한 삼림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무산에는 위험한 맹수들도 많았으며 그들에게 희생당하는 사냥꾼들도 적지 않았다. 윤포수는 일행을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넓은 마당과 추녀가 하늘 높이 휘어진 아름다운 기와건물들이 있는 집이었다.

 

 

 

 

리치박사는

그 집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는 개들을 보고 놀랐다.

열 마리쯤 되어보였는데 모두가 눈처럼 흰털들이 나 있었다.

 

귀가 뾰족하고 꼬리가 말려올라간 점은 아이누개와 비슷했는데 그 개는 아이누개의 두배나 될 것 같았다. 큰 놈은 60 Kg이나 된다는 대형 개들이었다. 리치박사는 여러 종류의 개들을 사육하는 전문가였으나 그런 개는 처음 봤다. 일본에는 비슷한 모습의 개들이 있었으나 털 색깔과 체구가 달랐다.

 

"풍산개입니다. 조선사람들이 자랑으로 삼고있는 사냥개이지요."

 

그 개는 만능개였으며 새종류 사냥도 잘하며 주로 멧돼지 사슴 노루 등을 잡는다고 한다. 세 마리가 협력하면 웬만한 멧돼지는 포수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숨이 끊어져 있다는 말이었다. 리치박사는 그 말을 수긍했다. 그럴만한 개들이었다. 개들의 눈빛은 다갈색이었는데 독수리의 눈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그건 사냥욕과 투지가 강하다는 걸 뜻했다.

 

 

 

 

개들의 양어깨 사이는 보통개들보다 좁았다. 어깨가 넓으면 믿음직스럽게 보이지만 그건 적과 격투를 하는데는 방해가 되었다. 적의 가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리는 개에 비해 어깨 폭이 아주 좁았다. 개와 이리를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어깨 폭을 보는 것이었다. 풍산개는 이리처럼 어깨 폭이 좁은 개였다. 그 대신 뒷다리들이 튼튼했다. 풍산개들의 뒷다리는 다부지게 옆으로 벌어지고 있었으며 웬만한 타격을 받아도 쓰러질 것 같지 않았다. 특히 개들의 두목이라는 큰 수컷은 좁은 어깨와 넓은 엉덩이 때문에 전체의 모습이 세모꼴로 보였다.

 

 

 

 

그 개는 수백 마리의 멧돼지와 노루를 잡았으며 여덟 마리의 곰과 두 마리의 표범도 잡았다고 한다. 두목 개는 마치 훈장처럼 전신에 상처자국이 있었다.

 

훌륭한 사냥개였다. 리치박사는 손을 내밀면서 그 개를 불러봤다. 두목 개는 박사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천천히 다가섰다. 꼬리를 흔들면서 아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경계를 하며 으르렁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개는 침착하게 자기를 부르는 낯선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두목 개는 리치박사에게 적의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듯 가볍게 꼬리를 흔들면서 인사를 했다. 리치박사는 두목 개의 몸을 만져봤다. 길고 거친 털밑에 두터운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개들의 출신지인 풍산은 산악지대였으며 높이 2천 m나 되는 고산들이 주위에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란 풍산개들은 늘 산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큰 체구와 두터운 근육, 그리고 떡 벌어진 하체들은 그래서 생긴 것이라는 말이었다. 리치박사는 풍산개들을 1급 맹수 사냥개로 단정했다. 그는 윤포수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여 돌아갈 때 두 마리의 풍산개를 얻어 가기로 했다.

 

 

 

 

조선땅에 들어선 리치박사를

두 번째로 놀라게 한 동물은 이었다.

 

윤포수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박사는 다음날 새벽 산기슭 삼림속에 설치되었다는 연구소로 출발했는데 아침 안개가 걷히고 있는 들판을 보고 놀랐다. 그곳은 수확이 끝난 밭이었는데 수백 수천 마리의 꿩들이 앉아 있었다. 꿩들이 앉아있는 밭들은 페르시아의 주단처럼 찬란했다. 적색 청색 녹색 흰색 등으로 아롱진 지면들은 아침해가 떠오르자 점점 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꿩들이란 정말 아름다운 새들이었다. 색채들이 뚜렷했으나 열대지방의 새들처럼 천한 원색(原色)이 아니었다. 꿩의 아름다움에는 귀부인의 품위가 있었다.

 

꿩들은 사람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자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갔는데 이번에는 하늘을 오색으로 수놓고 있었다. 긴 꼬리의 깃털들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

 

꿩들이 날아올라가는 하늘 상공에는 철새들이 줄을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시베리아나 북만주에서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날아오는 새들이었다. 매년 기러기 오리 고니 등 수천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북쪽에서 날아온다는 윤포수의 말이었다. 조선땅은 동물둘에게 축복받은 땅이었다.

 

무산에 있는 야산 기슭에는 많은 사냥꾼들이 개들을 데리고 꿩사냥을 하고 있었다. 꿩은 비록 근시(近視)이기는 했으나 예민한 청각을 갖고 있는 새였다. 그 청각을 활용하면 사람들에게 쉽게 잡힐 위험이 없었는데도 그 새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그 새는 자기의 보호색과 은신술을 너무 믿고 있었다. 사실 꿩이 숲속에 숨어 있으면 사람의 눈으로는 잘 식별되지 않았으며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도 발견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꿩은 사냥꾼들이 가까이 와도 날아가지 않았다. 그게 그 새의 나쁜 습성이었다. 사냥꾼들은 그런 습성을 이용했다. 사냥개를 사용한 것이었다.

 

꿩은 아무리 은신술의 명수라고 해도 개의 코는 속이지 못한다. 개의 코는 어김없이 숨어있는 꿩을 발견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특히 포인터세터들이 그런 일을 잘했다. 잘 훈련된 포인터나 세터는 재주를 부렸다. 거의 예술적인 경지에까지 도달한 재주였다. 그 개들은 가까이에 있는 꿩의 냄새를 맡으면 우선 몸짓으로 그걸 포수에게 알려준다. 이제부터 수색하겠다는 신호다.

 

사냥개는 그리고 서서히 접근하면서 냄새를 따라 꿩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한다. 그러면 그곳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한발을 들어올린다. 총을 쏠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어리석은 꿩은 그때까지도 자기의 은신술을 믿고 있었으나 개들은 그걸 역이용했다. 사냥개는 꿩들을 너무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꿩이 여러 마리가 있을 경우에는 사냥개는 한꺼번에 다 날리지 않고 한 마리 한 마리씩 날려 올린다. 포수들이 차례로 쏠 수 있게 ….

 

사냥개들이 덤벼드는 시늉을 하면 꿩은 그제야 발각된 것을 알고 후다닥 날아오르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꿩은 몸이 너무 무겁기 때문에 얼마간의 활주가 필요했다. 활주를 한 꿩은 강한 나래질을 하며 몸을 부상시키는데 그런 나래질 소리가 요란했다. 그래서 포수들에게 자기의 위치를 알려준다. 노련한 포수는 그때 벌써 꿩을 발견하지만 서둘지 않는다. 꿩이 무거운 몸으로 날아가려면 아직도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공중으로 솟아올라간 꿩은 일단 공중에서 멈춰 날아갈 방향을 정하려고 한다. 그때가 발포의 기회였다. 포수가 그 기회를 놓졌다고 해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꿩의 몸 색깔은 뚜렷한 과녁이 되었으므로 상당한 거리에까지 날아가도 발포를 할 수 있었다. 노련한 포수는 꿩이 날아가는 속도 등을 감안하여 꿩이 목을 빼고 날아가는 바로 앞에 총탄을 보낸다. 그러면 총탄은 꿩의 머리에 명중된다. 노련한 포수는 살점이 많은 몸통을 상하게 하지 않고 먹지 못하는 머리를 맞힌다.

 

총탄에 맞은 꿩은 그대로 떨어진다. 그러면 사냥개의 다음 역할이 시작된다. 사냥개는 쏜살같이 달려가 꿩을 물고 온다. 꿩이 아직 살아있으면 머리를 물어 죽인 다음 한쪽 날개쭉지와 몸을 가볍게 물고 주인 앞으로 운반한다. 사냥개는 물고 온 꿩을 살며시 놓고 주인을 쳐다본다. '내 재주가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 표정이다. 주인은 그 멋진 재주에 만족하여 사냥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꿩사냥에서는 포수와 사냥개는 일체가 되어 움직인다. 서로간에 미리 약정된 절차에 따라 멋있게 꿩을 잡아 수렵의 본능을 만족시킨다. 꿩사냥은 사냥의 진수를 만끽하게 한다. 세계 각지의 포수들이 꿩사냥을 즐겼다. 특히 조선의 꿩사냥터는 세계의 사냥꾼들이 동경하는 곳이었다. 그때도 무산의 산기슭에는 경성 등에서 온 사냥꾼들뿐만 아니라 멀리 일본에서 온 사냥꾼들도 있었고 서양인도 있었다. 각종 사냥개들은 저마다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그곳은 마치 포수와 개들의 경연장과 같았다.

 

개들 중에는 풍산개들도 있었다. 풍산개는 날개가 달린 동물보다는 네 다리가 있는 동물을 전문적으로 잡는 사냥개였으므로 포인터나 세터처럼 아기자기한 세기(細技)는 부리지 못했으나 그래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주인을 도와주고 있었다.

 

풍산개는 포인터처럼 숨어있는 꿩에게 바싹 접근하여 포인트를 하는 기술은 없었으나 그래도 숨어있는 꿩들을 공중으로 날려올리고 있었고 총에 맞은 꿩을 물고 오기도 했다. 풍산개는 만능의 사냥개였다.

 

 

 

 

윤포수는 포인터나 세터는

조선의 사냥터에서는 제약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털이 짧은 포인터는 추위를 타기 때문에 한겨울에는 사냥을 못했다. 세터는 털이 길기는 했으나 가시덤불이 많은 한국의 사냥터에서는 그 긴 털이 가시에 걸려 볼품없는 모양이 되고 때로는 피를 흘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사냥개들은 가끔 희생되기도 했다. 사흘 전에도 세터 한 마리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날개에 총상을 입고 달아나던 꿩을 쫓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인 포수가 수색을 해보니 꿩도 개도 없었다. 숲속에 핏자국이 있었고 커다란 고양이의 그것을 닮은 발자국이 있었다. 표범의 발자국이었다.

 

표범은 날개에 상처를 입고 있던 꿩을 잡으려다 개가 쫓아오는 걸 보고 꿩 대신 개를 잡아간 것 같았다. 불쌍한 개는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살육자의 밥이 되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전날에는 포인터 한 마리가 봉변당해 피투성이가 되었다. 상대는 족제비였다. 몸무게가 고작 3 Kg정도밖에 안되는 족제비에게 그 열배나 되는 사냥개가 당한 것이었다. 하긴 족제비란 짐승은 겁이 없는 놈이었다. 족제비는 토끼는 물론 노루에게도 덤벼들어 잡아먹는 악바리였다.

 

포수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오는 포인터를 보니까 그 목에 족제비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개가 족제비를 물고 오는 것이 아니라 족제비가 개의 목줄을 물고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족제비는 포수가 달려오는 걸 보고 개를 놓아주고 도망갔지만 개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목줄을 끊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으나 그 개는 더 이상 그곳에서 사냥을 하지 않으려 했다.

 

만약 그게 포인터가 아니고 풍산개였다면 그 따위 족제비쯤은 앞발로 후려쳐 손쉽게 죽였을 것이었다. 풍산개는 상대가 표범일 경우에도 그리 쉽게 당하지 않았다. 풍산개 큰 놈은 표범과 거의 같은 몸무게를 갖고 있었고 힘도 그만큼 강했기 때문에 표범도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풍산개가 두 마리만 있으면 표범과 대등한 싸움을 벌였고 세 마리면 도리어 표범을 사냥하려고 했다. 윤포수는 실제로 표범이 세 마리의 풍산개에게 쫓겨 나무 위로 피신해 있는 걸 총으로 잡은 일도 있었다.

 

 

 

 

풍산개는 험한 산악지대에서 자란 개였기에 야생짐승과 같은 야성과 투지를 갖고 있었다. 그 개는 야생 짐승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상대가 범이 아니면 별로 겁을 내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포인터나 세터는 날짐승 외에 네다리 짐승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표범과 같은 무서운 맹수가 있는지도 몰랐고 족제비같은 하잘것 없는 작은 짐승이 그렇게 덤벼들줄 몰랐다. 무산은 황금 사냥터였으나 꿩이나 날짐승만을 잡으려는 사냥개들에게는 위험한 사냥터이기도 했다.

 

윤포수는 리치박사에게 그것은 또한 동물학자들에게도 위험한 실습장소라고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원시림 속에 설치된 연구소로 가는 도중에 그들은 불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길이가 40 Cm가 넘는 발자국과 그 반쯤되는 발자국들이었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곰의 발자국이 이어져 있는 잡목림을 피했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곰은 미친 곰이며 범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늦가을의 곰이란 움직이는 것이면 뭐든 잡아먹으려고 덤벼드는 맹수였으므로 윤포수는 곰들이 들어가고 있는 잡목림을 피했다. 리치박사는 그런 윤포수의 행동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연구대원들은 동물들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동물들과 다투는 일은 하지 말아야만 했다.

 

 

 

 

 

와다교수가 마련한 연구소는

침엽수의 원시림 한가운데에 있었다.

 

주위에는 나무들이 울창했고 가까운 곳에 맑은 물이 솟아나오는 옹달샘이 있었다. 그리고 2 Km쯤 북쪽에 가면 두만강의 지류도 있다고 했다. 삼림안은 조용했으나 어디서 딱다구리가 나무를 찍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무에 오르내리는 예쁜 다람쥐들의 모습도 보였다. 연구소는 전에 일본인 산림기사들이 원시림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지어놓은 통나무 사무실을 확장 개조한 건물이었다. 비록 통나무로 지었고 마른 풀로 지붕을 덮은 집이었으나 30평 쯤 되는 건물이었고 별도로 대원들이 잠잘 건물도 있었다.

 

건물에는 튼튼한 문과 유리가 끼어진 창틀도 있었다. 건물 안에는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와 책상 의자 침대 등도 마련되어 있어 임시연구소로 쓰기에는 큰 불편이 없을 것 같았다. 개조하여 쓰여진 노송나무에서는 산뜻한 향기가 풍겨나오고 있었고 난로 안에서 타는 송진 냄새도 나쁘지 않았다. 만주에서 거처했던 흙집보다는 한결 깨끗하고 편리한 사무실이었다.

 

윤포수는 자기집에서 부리던 젊은 머슴 세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들은 지게에 산더미같은 짐을 지고도 묵묵히 걸어왔다. 만주의 일꾼들은 시키는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게으른 사람들이었으나 그곳 일꾼들은 맡은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었다. 조선인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캡틴 강이 그랬고 윤포수와 그의 머슴들도 그랬다. 윤포수는 열흘마다 머슴들을 교체하기로 했으며 새로 오는 머슴들은 그때마다 연구소에 물자를 공급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의 대원들은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의 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리치박사는 그날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다. 범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엄한 소리였다. 리치박사는 고양이과 짐승들 중에서 큰 소리로 우는 건 사자뿐인줄 알았는데 범은 사자보다도 더 힘찬 소리로 울고 있었다. 큰 덩치에서 나오는 무거운 소리였는데 아주 먼곳인 것 같기도 하고 아주 가까운 곳인 것 같기도 했다. 윤포수는 그 범이 있는 곳은 10리(4 Km)나 떨어진 곳이라고 말했다.

 

윤포수는 범이 자기의 영토권을 확인시키느라 운다고 말했다. 동족인 범이나 곰 표범 이리들에게 자기의 영토 내에서 빨리 물러나라는 경고였다. 물론 경고의 대상 중에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윤포수는 몇 년 전 그 건물에서 삼림실태조사를 하고 있던 일본인 기사들도 그 범의 울음소리에 신경쇠약이 되어 제대로 일을 끝내지 못하고 그곳에서 떠났다고 말했다. 사실 범의 울음소리에는 뭔가 사람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었다.

 

리치박사는 세계 각지에서 뭇 맹수들을 연구한 학자였으나 그도 그날 밤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 범과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범은 리치박사의 흥미를 끌었다. 와다교수도 범에게 흥미를 갖고 있었다.

 

 

 

 

은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가장 강한 동물이었다.

특히 시베리아 만주 조선의 북부에 서식하는 범들은 엄청나게 덩치가 컸다.

 

많은 사람들이 범과 사자가 싸움을 하면 어느쪽이 이기겠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리치박사는 만주에서 범을 연구한 후부터는 주저없이 말했다. 그야 당연히 범이 이긴다는 답변이었다. 사실 몸무게 400 Kg이나 되는 시베리아 범과 고작 200 Kg의 아프리카 사자가 싸움을 한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하긴 사자가 감히 자기보다 두 배나 큰 범에게 덤벼들 것인지가 의문이었지만.

 

리치박사는 전날밤 연구대원들의 잠을 설치게 한 범을 조사하기로 하고 조선범들의 분포와 특징을 윤포수에게 물어봤다.

 

윤포수는 조선범들은 거의 멸종상태에 있으며 그들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은 백두산과 무산 사이의 삼림뿐이라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조선범들을 마구 사냥하고 쫓아버렸다는 것이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범들은 한성(漢城) 주위의 산에까지 돌아다녔으나 일본인들이 그들을 거의 멸종시켰다.

 

일본인들은 범을 해수(害獸)로 규정하여 군인과 경찰관까지 동원하여 몰이사냥을 했다. 그때문에 매년 몇십 마리의 범들이 죽었고 나머지 범들은 백두대간을 타고 북쪽으로 도망갔다. 북쪽으로 이동한 조선범들은 백두산 무산 등의 산림에서 살거나 아예 만주로 넘어가버렸다. 윤포수는 일본인들의 그런 조치는 잘못된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범이 해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범이 산간마을을 덮쳐 인축에 해를 끼친 사실은 인정했으나 그 피해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범에 의한 피해는 대개의 경우 과장되어 퍼져나갔다.

 

사람이나 가축을 상습적으로 덮치는 일부 식인범을 예외로 한다면 범은 함부로 사람에게 덤벼들지 않는 동물이었다. 사람들로부터 먼저 공격을 받았거나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범이 신경과민이 되었거나 몹시 배고픈 상황이 아니면 범은 사람을 피했다. 사실 늘 산중을 돌아다니는 나무꾼들이나 심마니 또는 스님들은 범을 그렇게 겁내지 않았다. 그들은 범쪽에서 사람들을 피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설사 우연히 범과 만났다고 해도 사람 쪽에서 공격하거나 급히 도망가는 따위의 짓을 하지 않으면 범은 사람을 보고도 모른체 했다.

 

물론 식인범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너무 늙거나 불구가 되어 다른 야생짐승들을 사냥할 능력이 없는 범들일 경우가 많았다. 한번 사람을 잡아먹은 범은 그게 버릇이 되어 계속 사람들을 습격했는데 그런 범들은 철저하게 추적하여 잡아야만 했다. 일본군이 들어오기 전의 조선은 대체로 그런 정책을 썼다. 캡틴 강이 왕실어용엽사로 있던 시기만 해도 조선에서는 원칙적으로 범을 잡으면 안되게 되어 있었다. 조선사람들은 범을 산군(山君)이라 부르면서 존경했다. 적이라기보다 벗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조선 사람들은 범을 산군이라 부르면서 존경했으나 그건 만주 사람들이 범을 왕대님이라 부르며 신성시하는 것과는 달랐다. 만주 사람들은 범을 산신령 그 자체로 보고 신격화(神格化)시켜 범이 아무리 횡포한 짓을 하더라도 그 피해를 감수했으나 조선 사람들은 범을 불가침의 성역인 산신령으로는 보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은 인축에 해를 끼치는 범은 주저없이 사냥했다. 원칙적으로는 이유없는 범사냥은 못하게 되어 있었으나 조선의 포수들은 사실상 범사냥을 했다.

 

범을 잡은 포수는 관가에 출두하여 벌을 받게 되어 있었으나 그건 형식에 그쳐 사실은 매를 때리는 시늉만 했다. 범사냥은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었고 예외적으로 인축을 해친 범만은 해수로 간주되어 포수들이 동원되어 사냥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모든 범을 해수로 간주하여 무차별 사냥을 감행했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해서 자기들의 무용을 자랑했고 값비싼 호피(虎皮)를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1920년대에는 조선의 중부와 남부 일대에서는 범이 사라졌다.

 

그 결과 호환(虎患)은 사라졌으나 그 대신 늑대와 멧돼지들에 의해 피해가 속출했다. 범이 없어진 조선의 산림에는 늑대와 멧돼지들이 우글거리게 되었고 그들에 의해 피해가 늘어났다.

 

윤포수는 조선의 중부와 남부의 산간지대에서는 근 10여넌 동안이나 늑대와 멧돼지들의 피해를 받았다고 말했다. 윤포수는 조선에는 대체로 세 종류의 범이 서식한다고 말했다. 반도의 중부 이남의 산림에는 비교적 체구가 작은 범이 서식했고 백두산 주위 산악지대에서는 체구가 크고 털이 긴 범이 서식했다. 그리고 드물기는 했지만 무산 등 한반도 동북 산악지대에는 색깔이 흰 거대한 범들이 북쪽에서 내려와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윤포수는 남부에 사는 범은 조선의 고유종이며 백두산 주변에 사는 범은 만주범과 같은 종류이며 무산에 나타나는 범은 시베리아범 또는 우수리범이라고 말했다.

 

리치박사는 만주에서 이미 만주범 또는 동북호라는 범과 시베리아범 또는 우수리범이라고 불리는 범도 관찰했으나 조선에서만 서식한다는 범은 보지 못했다.

 

그 조선범은 만주범과 종류가 같은 범일까, 아니면 종류가 다른 범일까? 범뿐만 아니라 짐승들은 같은 종류라도 더운 지방에서 사는 짐승보다 추운 지방에 사는 짐승이 체격이 컸다. 추운 기후조건이 그렇게 만든다는 학설이었다.

 

사실 리치박사는 만주에서 연구를 한 결과 추운 북만주에 사는 곰 멧돼지 사슴들은 인도나 동남아 등지에 사는 동족들보다 체구가 한둘레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조선반도의 북쪽에 사는 범과 남쪽에 살았던 범도 같은 종류인데 기후탓으로 몸 크기가 달라졌을 뿐일까. 윤포수는 확답을 피하면서 어젯밤에 울었던 범이 바로 조선범이라고 말했다. 조선범의 발자국은 쉽게 발견되었다. 윤포수가 어젯밤 범이 울고 있던 곳을 정확하게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윤포수의 말대로 그 범의 발자국은 시베리아범이나 만주범의 그것보다 한둘레 작았다. 발자국으로 봐서는 40관(약 150 Kg) 내지 50관(약 200 Kg) 정도의 범으로 보여졌다.

 

윤포수는 그러나 그 범의 체구가 작다고 위험도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며 조선범은 도리어 큰 범들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조선범은 사람들 가까이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선범은 또한 영리하고 기민했으며 만주범이나 시베리아범과 싸워도 결코 지지 않았다. 특히 험준한 산들이 많은 조선땅에서는 만주범 따위엔 영토를 빼앗기지 않았다. 조선범은 바위를 잘 탔으며 바위를 오르내리면서 자유자재로 공격을 가했는데 몸 움직임이 비교적 둔한 만주범은 거기에 당해내지 못했다.

 

"조선범은 바위타기의 명수입니다. 포수들도 그놈에게 어이없게 당하지요."

 

리치박사 일행은 그 범의 발자국을 따라가 봤다. 박사는 조심스럽게 추적하면서 도중에 범의 똥을 발견하자 그걸 갖고 갔던 봉지에 소중하게 담았다. 윤포수는 그런 걸로 뭘하느냐고 짐작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박사는 그 똥을 분석하더니 그 범이 전날 멧돼지를 잡아먹었다고 말했다. 똥 안에 멧돼지의 털이 있었던 것이다.

 

범의 똥에서는 또한 꿩털과 뼈도 나왔는데 리치박사는 범이 죽어있는 꿩을 발견하여 먹은 것이라 생각했으나 윤포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범은 동작이 기민하기 때문에 꿩도 잡아 먹는다고 말했다. 바위나 나무 뒤로 숨어 접근했다가 갑자기 덮쳐 꿩이 높이 날아오르기 전에 잡아먹는다는 말이었다. 정말로 놀라운 짐승이었다. 범은 자그마한 산을 하나 넘고 계곡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산을 오를 때는 천천히 가던 범이 산에서 내려갈 때는 꽤 빠른 걸음으로 일직선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정해 그리로 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리치박사는 산정에서 멈췄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큰 바위 뒤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의 망원경은 영국해군이 사용하는 고성능 망원경이었으며 1 Km 이내에 있는 물건은 어김없이 잡을 수 있었다. 산중턱에서부터 계곡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있던 망원경에 움직이는 물체가 잡혔다. 노란 낙엽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있었다. 그건 노란 낙엽과 같은 색깔이었으나 검은 줄이 움직이고 있었다. 범이었다. 박사는 거기에 망원경의 촛점을 맞춰놓고 조금씩 조금씩 기어내려갔다. 그는 끈기있게 산중턱까지 기어가더니 손으로 윤포수를 불러 망원경을 넘겨주었다.

 

윤포수는 박사가 정해주는 방향으로 망원경을 맞추다가 깜짝 놀랐다. 범이 있었다. 거기서 계곡까지는 500 m 이상이 되었는데도 망원경 속에는 범의 모습이 똑똑하게 보였다. 리치박사의 행운이었다. 자기도 그렇게 쉽게 조선범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 전 그곳에 왔던 미국인 루즈벨트포수는 한 달 동안이나 그곳에 머물면서도 범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리치박사는 도착 이틀만에 범을 볼 수 있었다.

 

범은 전날 먹다 남겨둔 멧돼지 고기를 뜯고 있었다. 알맞게 삭은 멧돼지고기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자기를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리치박사는 그 범은 만주범이나 시베리아범과는 다른 종류의 범으로 봤다. 체격이 작을 뿐만 아니라 모습도 달랐다. 그 범은 정말 아름다웠다. 만주에서 범사냥을 하던 백계 러시아인 포수들이 조선범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만주범은 뚱뚱하고 길고 너덜너덜한 털에 덮여 있었으나 조선범은 비로드처럼 매끄러운 털과 균형잡힌 몸매를 갖고 있었다. 털의 색깔도 선명했다. 샛노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새겨지고 있었다. 인도나 동양권의 범들은 색깔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우중충한데 비해 조선범의 그것은 밝고 선명했다. 그리고 조선범은 만주범에 비해 체구가 작았으나 인도범보다는 컸다. 조선범은 인도범과도 종류가 다른 범들인 것 같았다. 조선범은 독립된 종류이거나 다른 범들과는 구별지어야 할 아종(亞種)으로 보였다.

 

조선범의 관찰은 약 30분으로 끝났다. 멧돼지 고기를 다 먹어치운 범이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피다가 갑자기 긴장했다. 범은 아마도 망원경에서 반사되는 빛을 본 것 같았다. 범은 바로 망원경의 초점을 노려보더니 훌쩍 숲속으로 뛰어들어가 모습을 감춰 버렸다. 리치박사는 범이 멧돼지고기를 뜯어먹던 곳에 가봤다. 멧돼지는 50관(약 200 Kg)이나 될 것 같은 큰놈이었으나 대가리 일부와 발굽만이 남아 있었다. 박사는 그 멧돼지가 끌려온 자국을 거꾸로 추적해 멧돼지가 범에게 습격당한 곳을 찾아냈다. 멧돼지는 엄청 큰놈이었으나 이렇다할 저항도 못한 것 같았다.

 

범은 산중턱에서 계곡에 있던 멧돼지를 발견하고 달아나는 멧돼지의 방향을 보면서 지름길로 덮쳤다. 조선범의 상투적인 사냥법이었다. 범은 멧돼지의 등에 올라타 짓눌러 쓰러뜨린 다음 목줄을 따버린 것 같았으며 피가 한꺼번에 쏟아진 장소가 발견되었다. 과연 무서운 살육자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진 몰라도 연구대원들은 그후로는 조선범을 보지 못했다. 조선범은 멀리 피해버렸으며 그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자기의 영토에 침입한 사람들이 보통내기들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피해버린 것이 분명했다.

 

리치박사는 짧은 관찰시간을 아쉬워했으나 그래도 관찰결과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범의 분비물과 털 그리고 범의 이빨과 발톱자국들이 남아있는 멧돼지의 대가리와 뼈 등을 수집했고 범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발자국 탁본(拓本) 등을 만들었다. 윤포수는 박사가 운좋게 조선범을 볼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으나 박사의 그 다음 일에 대해선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 넓은 원시림 속에서 어떻게 어떤 동물을 찾아낼 것인가.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박사는 넓은 원시림 속을 덮어놓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박사는 삼림속에 있는 뭇짐승의 길을 찾아 그곳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삼림에 있는 짐승길은 뭇짐승들이 공동으로 다니는 큰길과 각기 달리 다니는 작은 길들이 있었다. 큰길은 북쪽으로는 만주, 남쪽으로는 백두대간장백정간, 서쪽으로는 개마고원 백두산 등으로 통하는 대로였고 작은 길은 각종 짐승들이 물이나 먹이터를 찾아다니는 소로였다.

 

박사는 길에 남아있는 발자국 똥 털 등을 조사하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길의 요소요소에 덫을 설치했다. 표본 짐승을 잡을 계획이었다. 박사가 갖고온 덫은 쥐덫만한 크기였으나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졌고 강력한 용수철이 붙어 있었다. 덫에는 많은 종류의 짐승들이 걸렸다. 들쥐 다람쥐 산토끼 등이 가장 많았으나 두 마리의 살모사까지 잡혔다. 만주 같으면 벌써 눈이 내릴 계절이었으나 그곳에는 아직도 뱀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살모사는 남향의 낙엽 밑에 숨어 돌아다니는 들쥐나 다람쥐 토끼 꿩 등을 노리고 있었는데 그들 작은 짐승들뿐만 아니라 큰 짐승도 위험했고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다.

 

 

 

 

살모사는 조선의 산간지대에서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주는 동물들었다.

 

특히 새끼를 낳고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의 살모사는 몸에 영양을 비축하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했고 그만큼 독성이 강하고 피해도 컸다.

 

덫에 걸린 살모사들은 몸길이가 60 Cm 정도의 작은 뱀이었으나 몸서리칠 정도로 징그러웠다. 잿빛 바탕에 암갈색의 둥근 무늬가 있었고 세모꼴의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었다. 붉은 혀를 날름거렸고 그 사이에 긴 독아(毒牙)가 보였다.

 

인도의 코브라는 신경독(神經毒)이었으나 살모사는 출혈독(出血毒)이었으며 그놈에게 물리면 몸이 시커멓게 썩어가면서 죽었다. 살모사는 난태생(卵胎生)이며 그곳 살모사는 매년 초가을에 열 마리 내외의 새끼를 낳는데 살모사가 새끼를 낳는 시기와 장소에는 그들의 천적이 몰려들었다. 무산지역에서의 살모사는 양지바른 잡목림 안에서 새끼를 낳는데 살모사와 같이 덫에 걸린 족제비들이 바로 그걸 노리고 몰려든다고 한다. 인도의 망구우스처럼 한국의 족제비들도 무서운 독사를 없애는데 한몫을 했다.

 

윤포수가 안내한 산기슭 잡목림에는 또 다른 살모사 사냥꾼들이 있었다.

 

리치박사는 처음에 그게 무슨 짐승인지 몰랐으나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어보니까 멧돼지였다. 소만큼이나 큰 멧돼지였다. 와다교수는 멧돼지는 일본에도 서식하고 있었으나 일본의 멧돼지는 아무리 커도 집돼지보다 더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일본의 멧돼지는 50관(약 200 Kg)이 상한선이었다. 그런데 그 멧돼지는 80관(약 300 Kg)이 넘어 거의 1백관(약 400 Kg)에 가까울 것 같았다. 리치박사도 구라파의 삼림지대에 서식하고 있는 멧돼지도 그렇게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주에서도 그런 멧돼지는 보지 못했다.

 

윤포수는 그 멧돼지는 떠돌이 수컷이라고 말했다. 멧돼지는 암컷을 중심으로 가족 단위로 무리지어 사는 짐승이었으나 늙은 수컷들 중에는 혼자서 돌아다니는 놈들이 있었다.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할 의무에서 벗어나 멋대로 방랑하는 놈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멧돼지는 정착성이 강한 동물이었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동물들이었으나 늙은 떠돌이 멧돼지는 그 예외였다. 그놈들은 일정한 정착지도 없이 수백리나 되는 넓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늙은 멧돼지는 오랜 경험에 의해

어느때 어디에 가면 좋은 먹이가 있고 어느곳이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늙은 멧돼지는 장백정간을 서남쪽으로 타고 내려가 백두대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고 했다. 범이나 표범 곰들도 그런 거물급 멧돼지에게는 덤벼들지 않았다. 잡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반격당해 치명상을 입을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늙은 멧돼지가 조심하는 건 오직 총을 가진 포수들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멧돼지들처럼 마을이나 그 인근 밭 가까이는 가지 않았으며, 언제나 깊은 산속이나 삼림 속으로만 돌아다녔다.

 

리치박사 일행은 200 m 거리에까지 접근, 멧돼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건 멧돼지의 위장법이었고 은신술이었다. 그런 놈이 숲속에 엎드려 있으면 사람들은 그걸 흙더미로 오인하고 바로 그 옆을 지나가면서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늙은 멧돼지는 그곳에서 뱀사냥을 하고 있었다. 콧등과 송곳니로 낙엽들을 헤치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는데 밤이나 도토리 따위에는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멧돼지는 살모사를 발견하자 주저없이 덤벼들어 발로 짓밟고 송곳니로 찍어 눌렀다. 살모사는 멧돼지의 발이나 콧등을 물려고 했으나 멧돼지는 그런 저항은 무시했다.

 

멧돼지는 쉽게 뱀의 대가리를 물고 국수처럼 말아 먹었다. 멧돼지에게는 뱀의 독에 대해 면역이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독사에게 물려 죽은 멧돼지가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윤포수가 말했다. 멧돼지는 그날 정오께 살모사 사냥을 중단했다.

 

가장 싫어하는 외적이 나타난 것이었다. 땅꾼이었다. 살모사를 전문으로 잡는 땅꾼 두 사람이 그곳에 나타나 긴 막대기로 낙엽을 뒤적이고 있었다.

 

조선사람들은 살모사를 약용으로 쓰고 있었다. 푹 삶아서 진국을 강장제로 마시기도 했지만 독한 술에 담아 뱀술을 만들어 마신다는 이야기였다. 리치박사도 그후에 살모사 술을 구경했는데 커다란 유리병에 노란 액체와 뱀이 잠겨 있었다. 뚜껑을 따보니 강한 향기가 풍겼으나 박사는 그걸 맛보지는 않았다. 땅꾼들은 윤포수를 보더니 두 손을 모아쥐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윤포수는 지주로서가 아니라 인격자로 대접을 받는 것 같았다.

 

땅꾼들은 아래쪽이 불룩하게 쳐진 쌀자루를 갖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열서너 마리의 살모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역시 땅꾼들은 멧돼지보다는 한 수 위인 살모사 사냥꾼이었다. 윤포수는 그들과 잠시 산이야기를 나누었다. 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땅꾼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땅꾼들은 심마니 세 사람이 불곰을 만나 혼이 났다는 이야기와 사향노루를 잡으려던 포수 한 사람이 살모사에게 물려 죽을뻔 했다는 이야기 등을 했다. 그리고 강 건너에 표범 한 마리가 나타나 그 인근 마을사람들이 겁을 먹고 있다고도 했다.

 

"그 표범을 본 일이 있는가 ?"

"없습니다. 그러나 발자국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고 마을의 개 한 마리가 물려 죽었는걸요."

 

개가 물려죽었다면 그건 살쾡이는 아니었다. 살쾡이가 아무리 사나워도 개를 물어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표범이 나타났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곳은 범의 영토이기도 하고 표범이 감당못할 불곰들이 돌아다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리치박사도 그 이야기에 흥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날 하오 강을 건너 마을로 갔다. 땅꾼들의 말대로 마을사람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윤포수를 보자 호소했다.

 

"나리, 어젯밤 표범이 나타나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물고 갔습니다."

 

좀 이상한 일이었다. 염소 우리 안에는 여러 마리의 염소가 있었는데 표범은 왜 하필이면 태어난지 얼마 되지않은 새끼를 물고 갔을까. 표범은 한끼에 고기 15 Kg 정도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짐승이었다. 그런데 몸무게 10 Kg이 넘는 염소들은 그냥 두고 고작 1 ∼ 2 Kg밖에 안되는 새끼를 물고 갔을까. 연구대원들은 그 표범의 발자국을 추적해 봤다. 표범은 침엽수림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염소 새끼를 뜯어먹었는데 그곳엔 다른 발자국이 또 있었다. 암컷인 것 같았다. 염소 새끼를 먹어치운 표범들은 계속 깊은 삼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리치박사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계속 추적했다.

 

그날 하오 늦게 박사는 어느 숲속에서 멈췄다. 박사의 망원경에 큰 고목(枯木)이 한 그루 잡혔는데 그 고목 밑둥에 공동(空洞)이 있었다. 박사는 그 공동에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공동 안에 동물이 있는 것 같았다. 추적하고 있던 두 마리의 표범들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표범이 고목 공동에 들어간다는 건 이상했다.

 

그건 어쩌면 표범이 아닌지도 몰랐다. 리치박사는 공동 속에 들아간 동물의 정체를 알기 위해 끈기있게 관찰하고 있었다. 박사의 그런 노력은 한 시간 후에 큰 대가를 얻었다. 고목나무 공동 속에서 짐승이 나온 것이었다.

 

 "저건 표범이 아니야. 저건 시라소니야. 틀림없는 시라소니야."

 

리치박사는 감탄하고 있었다. 시라소니가 무산에 살고 있다니? 윤포수는 시라소니를 토표(土豹)라 부르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고목나무 공동이나 토굴 안에서 살기 때문이었다.

 

 

 

 

시라소니는 고양이과 동물이었지만

보통 살쾡이와는 달랐다.

 

시라소니는 몸길이 1 m나 되며 표범보다는 작았으나 큰 개만큼이나 컸다. 시라소니는 굵고 다부진 다리와 큼직한 발을 갖고 있었다. 범의 그것처럼 묵직한 앞발이었다. 그게 그놈의 주무기였다. 그 발로 적들을 후려치면 웬만한 적은 그자리에서 죽었다.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었기 때문에 사냥개들도 그 앞발에 바로 맞으면 치명상을 입었다. 시라소니는 맹수였으며 사냥개가 함부로 덤벼들 수 없었다. 시라소니가 사람을 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삼람 안에서는 범 표범 다음가는 살육자였다. 노루 사슴은 물론 멧돼지도 사냥했다.

 

망원경에 잡힌 시라소니는 아름다웠다. 노랑 바탕에 검은 점무늬가 뿌려져 있었으며 쪼뼛한 귀도 멋이 있었고 호박색의 눈동자도 맑았다. 시라소니의 전체적인 모습은 표범을 닮았다기보다 범을 축소시켜 놓은 느낌을 주었다. 꼬리도 표범에 비하면 짧았다. 시라소니는 그 어느 고양이과 짐승보다 순발력과 도약력이 뛰어났다. 시라소니는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2 m 이상을 뛰어올랐다.

 

그래서 시라소니는 꿩이나 산비둘기 등을 곧잘 잡아먹었다. 다른 짐승들에게는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윤포수도 언젠가는 시라소니의 놀라운 재주를 본 일이 있었다. 윤포수는 그때 멧돼지의 발자국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약 10 m쯤 전방에서 장끼 한 마리가 갑자기 요란스런 날개소리를 내면서 뛰어나왔다. 장끼는 이미 활주를 끝내고 날개짓을 하며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장끼가 2 m 이상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을 때 숲속에서 소리도 없이 짐승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짐승은 날개가 없었는데 분명 공중으로 나는 것 같았다.

 

노란 색깔의 그 짐승은 꿩보다 훨씬 빨랐다. 그 짐승은 꿩의 뒷다리를 꽉 물고 땅으로 떨어졌다. 윤포수는 그때까지 그 짐승이 표범인줄 알았는데 그 놈이 땅에 사뿐히 내려앉을 때 꼬리가 아주 짧다는 사실을 알았다. 윤포수는 그제야 그 짐승이 시라소니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쪽으로 달려갔으나 시라소니는 없었다. 어느새 도망가버린 것 같았다. 윤포수는 또한 시라소니가 오소리와 싸우는 장면도 목격했다.

 

 

 

오소리는 족제비과의 동물이었으며

성질이 아주 사나운 짐승이었다.

 

그놈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으며 사냥개는 물론 사람에게도 덤벼들었다. 그러나 오소리가 시라소니에게 덤벼든 것은 너무나 무모한 짓이었다. 시라소니에게는 범처럼 강한 앞발이 있었다. 시라소니는 덤벼드는 오소리의 몸 위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리고 오소리가 돌아서기 전에 앞발로 오소리의 등을 내려쳤다. 두 번 세 번 내려치자 오소리의 몸에서 피가 흘렀고 오소리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라소니는 끝내 추격하여 기어이 오소리를 죽여 물고갔다. 시라소니는 오소리의 천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리치박사는 마치 옛친구를 본 것처럼 시라소니를 보고 반가워했다. 시라소니는 전에 유럽에서도 서식하고 있었다. 꽤 많은 수의 시라소니들이 유럽의 삼림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10여 년 전부터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시라소니는 유럽에서 멸종되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영리하고 사냥을 잘 하는 동물이 왜 유럽에서 멸종된 것일까. 유럽의 사냥꾼들은 그걸 아쉬워하고 있었다.

 

유럽의 시라소니는 멸종되었으나 북미나 캐나다 알래스카의 시라소니는 건재했다. 그곳 시라소니들은 옛날 아시아대륙과 미국대륙의 땅이 붙어있을 때 건너간 동물이었으니 그곳의 환경에 잘 적응하여 상당한 수가 아직도 살고 있다는 리치박사의 말이었다. 물론 원종인 극동의 시라소니들도 시베리아나 북만주의 침엽수림에 서식하고 있었는데 그 일부가 무산에서도 살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과연 무산은 동물들의 왕국이었다.

 

리치박사는 날이 어두워질 무렵 시라소니들이 사냥을 하러 나간 사이에 수색영장도 없이 그들의 가택을 조사했다. 고목의 밑둥에 패어있던 구멍이 입구는 사람이 겨우 기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으나 그 밑은 거의 한평이 될 정도로 벌어지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사냥을 하면 사냥감의 일부를 물고 오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뼈들과 털들 중에는 놀라운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멧돼지의 뼈도 있었고 곰의 뼈도 있었다. 아직 완전히 성장한 멧돼지나 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라소니가 그런 대형동물들까지 사냥할 줄은 몰랐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곳엔 큰 마르모트의 뼈가 있었는데 그 동물은 조선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동물이었다. 주민들이 다르바간이라고 부르고 있는 설치류는 만주나 시베리아 몽고 등에서만 서식하는 동물이었다. 시라소니들이 멀리 만주에까지 사냥을 하러 나간다는 증거는 또 있었다. 만주의 꿩털이 발견되었다. 조선산 꿩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새였다. 시라소니가 매우 부지런한 동물이며 행동반경이 아주 넓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으나 설마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만주에까지 가서 원정사냥을 할 줄이야.

 

리치박사는 시라소니가 그렇게 부지런한 동물이기 때문에 조선땅에서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사는 또한 그 동물이 매우 조심스러우며 밤에만 활동하는 것도 그들이 살아남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포수는 시라소니가 살아남기 어려운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시라소니는 다른 동물들에게 잡혀먹힐 염려는 거의 없었으나 가장 무서운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었다. 만주나 조선 산간마을에 사는 사냥꾼들은 시라소니를 발견하면 그냥 두지 않았다. 시라소니의 아름다운 모피도 탐이 났지만 그보다도 그 고기가 문제였다.

 

대체로 육식동물의 고기란 맛이 없는 법이었고 특히 고양이과 동물들의 고기는 고약한 냄새가 나고 질기고 맛이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과 동물의 고기는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시라소니는 예외였다. 시라소니의 고기는 쇠고기보다도 맛이 있었다. 구워도 좋고 삶아도 좋지만 육회로 먹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윤포수는 몇 년 전에 일본인 삼림기사들이 시라소니의 고기를 육회로 먹는 걸 보고 몇 점 먹어봤는데 아주 연하고 고소했다. 사냥꾼들이 시라소니를 잡으려고 기를 쓰는 건 바로 그때문이었다.

 

윤포수는 앞으로는 사냥꾼들에게 시라소니를 잡지 말라고 충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조선땅의 시라소니가 언제까지 서식할지 의문이었다. 아무튼 리치박사 연구팀이 무산에서 시라소니를 발견하고 그 생태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리치박사는 그곳에서 약 석 달동안 연구를 하다가

날씨가 너무 추워진 1월께는 산에서 내려와 다른 곳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멀리 지리산까지 내려가 조사를 했다.

 

리치박사는 조선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두루 살펴봤다. 그리고 가장 인상에 남은 동물로 무산의 범과 멧돼지 백두산의 검은 담비 설악산의 산양 지리산의 늑대를 들었다. 리치박사는 그러나 한반도 전지역을 통해 가장 조선적인 동물은 꿩과 노루라고 말했다. 꿩과 노루는 한반도 어디에 가도 볼 수 있었으나 리치박사가 말한 조선적인 동물이란 그런 뜻이 아니었다. 가장 조선의 지세나 자연환경에 조화된 동물이며 조선 산림의 대표적인 정착(定着)동물이란 뜻이었다.

 

리치박사는 조선의 사냥꾼들이 가장 많이 잡는 동물이 바로 꿩과 노루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많이 잡혀도 그들은 조선땅에서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자연에 가장 조화되어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잡혀 죽는만큼 번식을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윤포수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리치박사의 말이 옳다고 했다. 그는 리치박사는 역시 세계적인 학자라고 존경했다.

 

사실 조선에서 가장 천대받고 있는 꿩과 노루는 조선 동물을 대표하는 동물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꿩은 그 아름다운 자태 때문에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영국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조선의 꿩을 사로잡아 자기들의 삼림에서 번식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노루에 대해서는 외국사람들은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허리가 활처럼 굽어진 그 자그마한 동물은 겉보기에도 초라했다. 그래서 조선을 방문한 외국의 사냥꾼들까지도 노루에게는 흥미가 없었다.

 

 

 

 

한국의 노루는 세 종류가 있었다.

보통 노루라고 하는 대표적인 종류와

보노루 또는 고라니 라고 하는 보통 노루보다 더 작은 것과,

그와 크기 생김새가 비슷한 사향노루 였다.

 

고라니가 보통 노루보다 다른 점은 노루에게는 자그마한 이 있는데 비해 고라니에게는 그게 없고 대신 주둥이 밖으로 뾰족하게 나온 송곳니가 있다는 점이었다. 리치박사가 그들 노루가 한국의 자연조건에 가장 잘 조화된다고 말한 것은 노루가 사계절에 따라 높은 산 깊은 삼림 또는 인가 부근의 산림을 오르내리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루는 추위나 더위에 강한 짐승일뿐 아니라 그걸 가장 잘 이용하는 짐승이었다.

 

다른 짐승들은 추운 겨울이 오면 되도록 바람을 덜 타고 햇볕이 스며드는 양지바른 곳으로 이용하는데 노루는 반대로 응달진 곳으로 이동했다. 몸에 지방도 없는 동물이었지만 노루는 추위에 강했다. 노루는 겨울에는 그렇게 춥고 그늘진 산이나 삼림속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에 외적들과 멀리 할 수 있었고 사냥꾼들을 피할 수도 있었다. 노루는 여름에는 대담하게 인가 부근의 야산에까지 내려왔다.

 

노루는 여름이 되면 인가 부근 야산에서 대담하게 먹이를 찾고 암수가 교미를 하는 등 부지런한 활동을 한다. 그때는 노루는 무성한 풀밭에 죽은 듯이 엎드려 외적을 피하기도 하고 발각되면 빠른 주력으로 도망간다. 노루는 그렇게 체구가 작은데도 6 ∼ 7 m나 도약하는 짐승이며 그 어느 짐승도 그 주력에는 따라가지 못한다. 만약 노루가 나쁜 버릇만 없다면 그들을 잡을 짐승은 없을 것이었다.

 

나쁜 버릇이란 노루에게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강한 애착심이 있어 도망가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전에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버릇이었다. 노루는 사냥꾼에게 쫓길 경우에도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다가 추격자와의 거리가 2 ∼ 3백 m쯤 떨어지면 정지하여 되돌아갈 궁리를 했다. 물론 사냥꾼은 그때 총을 쏘아 노루를 잡았다. 사냥꾼들뿐만 아니라 범 표범 곰 늑대 살쾡이 심지어는 독수리까지 노루를 잡았다.

 

노루는 그렇게 많이 잡혔으나 그렇다고 모든 노루가 다 잡히는 건 아니었다. 노루는 워낙 수가 많았고 또 은신술의 명수였기 때문에 전체의 수에 비하면 그렇게 많이 잡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많이 잡힌다고 해도 노루는 그만큼 번식을 했다. 노루의 번식력은 놀라웠다. 노루는 평소 암수가 짝이 되어 돌아다닌다. 일부일처의 가족제도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짝이 죽지않는 한 그 짝과 같이 사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기에 노루는 쉽게 교미할 수 있었고 거의 어김없이 임신하여 새끼를 낳았다. 보통 여름에 교미하는데 수태를 확실히 하기 위해 몇번이나 되풀이한다.

 

암컷은 그 결과 수컷의 정자를 자궁에 받게 되는데 정자가 암컷의 자궁으로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난자와 만나 임신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치박사는 암노루에게는 수컷의 정자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난자와 결합시키는 능력이 있거나 아니면 정자와 난자가 결합된 태아의 성장을 필요한 시기까지 억제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리치박사가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암노루의 출산시기가 일정하지 않다는데 있었다. 암노루는 초봄에서 가을까지의 사이에는 언제든지 출산을 했다. 새끼를 키우는 좋은 시기를 선택해 새끼를 낳는 것 같았다. 그래서 노루새끼의 생존율은 높았다. 노루는 1년에 한번씩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새끼는 어미 배에서 떨어지면 몇 시간 이내에 걸어다녔고 며칠 후에는 사람보다 빠르게 뛰어다녔다.

 

리치박사는 생후 3개월쯤 되는 노루새끼 두 마리를 망원경으로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새끼들은 아주 지혜롭고 민첩했다. 새끼들은 응달진 삼림속에서 앞서가던 어미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들 뒤에는 아비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따라오고 있었다. 리치박사는 그걸 보고 감탄했다. 노루 가족이 그렇게 긴밀한 협동생활을 하고 있는 한 그들은 조선땅에서 결코 멸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치박사의 조선동물 조사보고서에는 그 어느 동물보다도 노루에 관계되는 부분이 많았다.

 

 

- (끝) -

 

 

 

 

 

 

 

 

 

 저자소개 : 김왕석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상대를 중퇴했다. 대구일보, 대구매일, 서울신문, 경향신문, 신아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경제과학 심의회의 연구원, 문공부 전문위원을 지냈다. 스포츠서울에 [맹수와 명포수] 경남신문, 강원일보에 [세기의 사냥꾼], 광주일보에 [사냥꾼의 얘기], 대전일보에 [수렵야화]등을 연재했다.